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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듀! 월드컵

허진 전 대표팀 언론담당관이 지켜본 2006 월드컵

프랑크푸르트의 영광 라이프치히의 환희 하노버의 울분

  • 허 진 駐독일대사관 참사관, 2002 월드컵 대표팀 언론담당관

허진 전 대표팀 언론담당관이 지켜본 2006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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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로비로 내려온 핌 베어벡 코치(현 감독)와 홍명보 코치도 ‘재회 수다’ 자리에 합류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의 동정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그만이었고, 오로지 이 중차대한 시기에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웃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분할 만한 것이었다. “여기에 히딩크 감독만 있으면 다 모이는 건데” 하고 누군가가 2002년을 회상했다.

한바탕 수다를 끝내고 숙소를 떠나려는 순간 2층 발코니에 서 있던 이천수와 설기현을 보았다. 나는 “내일이 경기하는 날인데 빨리 안 자고 뭐 하냐”며 마치 2002년 그때처럼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로비로 내려오려는 그들을 말리며 서둘러 숙소를 빠져 나왔다. 마음은 이미 2층으로 뛰어올라가 회포를 풀고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내일이 토고전 아닌가.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토고전이 시작될 때 경기장 분위기는 마치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프랑크푸르트에 옮겨놓은 듯했다. 그러나 경기 초반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플레이하던 대표팀은 뜻밖에 선제골을 먹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중을 기하는 것도 좋지만 비교적 약한 상대는 사전에 거세게 제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기(氣) 싸움에서 나약한 자세를 취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후반 적절한 시기에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져 경기 흐름을 반전시켰지만, 후반에 경기 종료 시간을 15분 이상 남겨놓은 상태에서 볼을 돌리며 지연시킨 행위는 두고두고 비난의 도마에 오름직했다. 어렵게 얻은 승점 3점을 고이 간수하자는 생각에, 무리한 전진배치로 토고의 역습을 초래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수세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결과론이지만 그때 한 골이라도 더 격차를 벌려놓았더라면 스위스전을 좀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리라.



토고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지만 공수와 미드필드 간격을 단 한 번도 맞추지 못하는 지리멸렬한 팀이었다. 경기 종반, 토고가 결국 3패할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혹시 우리가 2승을 하고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프랑스전의 분위기는 묘했다. 관중 모두가 그간의 언론 평가를 액면 그대로 믿는 탓인지 ‘레 블뢰(Les Bleus·푸른색) 군단’을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노쇠한 팀으로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휘슬이 울리자 프랑스팀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2002년 치욕의 예선 탈락, 졸전 끝에 2006년 대회 지역예선을 겨우 통과한 그 너덜너덜한 프랑스가 아니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신검합일(身劍合一)’된 11명의 무사가 우리 진영을 마음대로 유린하는가 싶더니, 세계 최고 포워드인 앙리에게 완벽한 골을 허용하는 비참한 서막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이 순간 프랑스는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 그 한 골로 승부가 날 것이라고 착각한 점이다. 어차피 ‘검기(劍氣)’ 싸움에서 진 한국은 비에라와 마클렐레, 튀랑과 갈라스가 버티고 있는 정면을 돌파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후반전부터는 양 옆구리를 쑤시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기엔 노도와 같은 공격이었으나 프랑스엔 측면을 간질이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 막바지에 여러 차례의 크로스를 어렵게 받아내던 조재진이 정확히 박지성 앞에 볼을 떨어뜨려주었고, 그 공은 별 희한한 곡선을 그리면서 골망으로 빨려 들어갔다. 셰브첸코나 크레스포의 슛처럼 호화찬란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골은 골이었다. 승점 4점. 원정대회 최고 승점이자 지난 대회 미국전 직후와 같은 기록이었다. 아아 대한민국.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나.

라이프치히 경기장의 다수 관중은 프랑스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90분 내내 미친 듯이 울부짖는 붉은악마의 응원에 주눅들어 응원다운 응원 한번 해보지 못했다. 나는 흐뭇했다.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우리 선수들이 기특했고, 경기 내내 대표팀을 응원하는 우리 관중의 끈기에 혀를 내둘렀다. 경기가 끝난 후 한 프랑스 관중은 우리 가족에게 다가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한국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불굴의 정신력과 대표팀에 대한 한없는 애정, 이런 건 프랑스에 없다는 의미였다. 자고로 외교관은 이런 맛에 산다. 오오 대한민국.

드디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스위스전. 나는 스위스가 토고전에서 보여준 아마추어적인 실수, 엉성한 공격력, 최근 메이저 대회 참가 경험 부족 등으로 미뤄보아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계산했다. 승점차, FIFA 회장의 조국팀에 대한 심판의 봐주기 판정, 응원단 규모의 차이 같은 객관적 조건은 분명 불리했지만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간 국내외 언론이 최근의 경기 결과만을 근거로 프랑스를 얕잡아보고 스위스를 과대포장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우려는 만일 이번에도 우리가 선제골을 먹는다면 이길 가능성이 없으리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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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진 駐독일대사관 참사관, 2002 월드컵 대표팀 언론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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