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보건복지부 수혈감염 조사는 의혹투성이

빼고, 줄이고, 숨기고…헌혈자, 수혈자 함께 울렸다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6-08-14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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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염 수혈감염은 8명? 17명? 혹은 29명?
    • 조사대상 수혈자 6만7691건에서 4371건으로 축소
    • “가슴 때려 상처 입히고 ‘옛날에 다친 것’이라 우기는 꼴”
    • 용역 조사기관 내부문건, 수혈 감염자수 ‘은폐’ 흔적
    • 수혈자 중 간염 감염자 발견하고도 ‘조사거부 확인서’ 받고 종결
    • 조사비용 12억2200만원, 애꿎은 헌혈자 주머니에서 충당
    보건복지부 수혈감염 조사는 의혹투성이
    6월19일은 이른 새벽부터 눈과 귀가 무척 바쁜 하루였다. 새벽엔 독일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프랑스와 일전을 치렀고, 오전엔 감사원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관련 감사결과가 발표됐다. 언론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있을 때 보건복지부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복지부 브리핑룸에서 대한적십자사 수혈감염 사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배포된 보도자료의 제목은 ‘부적격 혈액 수혈로 인한 B·C형 간염 감염자 조사결과’.

    2년여 동안 18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전국 대학병원을 포함한 병원 수백 곳, 의사, 간호사 등 전문인력 수백 명이 동원된 조사의 결과물임에도 이 자료는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월드컵과 외환은행 매각 감사 등 굵직굵직한 뉴스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같은 자료를 보고 쓴 기사인데도 제목이 다르다. ‘수혈로 8명 간염 감염’, ‘나쁜 피 수혈로 17명 간염 감염된 듯’. 8명과 17명.

    이 같은 혼란은 질병관리본부의 보도자료 내용이 모호한 데서 비롯됐다. 보도자료엔 “조사대상 수혈자 중 간염 검사 양성자는 모두 89명으로 이중 8명은 수혈로 인해 B형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고, 감염은 되었으나 수혈로 인한 것인지 명백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가 9명”이라고 되어 있다.

    B형이나 C형간염은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병으로 자식에게도 물려질 수 있고, 보균자의 경우 취업에서도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전염병. 따라서 정부의 이번 감염사고 조사 발표는 적십자사의 보상이나 손해배상 소송에 있어 가장 확실한 근거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선 분명한 표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딱 부러진 추가 해명이 나오지 않자 이번 조사가 총체적으로 ‘엉터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감염자 수의 고의적 은폐 또는 누락, 수혈자 조사대상 축소, 조사비용 부담의 부적정 등의 의혹이 꼬리를 물고 쏟아졌다.

    ‘부적격 혈액’ 유출 6만7691건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이 같은 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은 2004년 3월28일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 때문이다. 감사원은 당시 적십자사가 2000년 4월1일 이전 혈액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간염 의심자’ 2만1200명의 혈액 6만7691건을 1999년 4월1일부터 2004년 1월7일까지 수혈용으로 출고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조사대상 헌혈 혈액을 2000년 4월1일 이전으로 한정한 것은, 혈액관리법에 ‘부적격 혈액’을 수혈용으로 공급하면 안 된다는 금지조항이 1999년 4월1일에 제정되어 2000년 4월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 부적격 혈액은 헌혈자에 대한 적십자사의 혈액선별검사(EIA검사) 결과 단 한 번이라도 간염 양성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혈액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그 시점 이전에 간염 의심자로 판명된 사람의 혈액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감사원이 간염 양성 판정이 나온 이들을 ‘감염자’나 ‘환자’라고 부르지 않고 ‘의심자’라고 칭한 것은 적십자사의 EIA 검사가 그만큼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적십자사가 헌혈자를 대상으로 하는 EIA검사는 잠복기에 있는 간염 바이러스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데다, 헌혈자의 상태와 시약(試藥)에 따라 검사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적십자사의 EIA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해도 1년이 되기 전에 다시 검사하면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정부가 2000년 4월1일부터 부적격 혈액을 수혈용으로 절대 출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도 이처럼 적십자사의 EIA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데다 간염 의심자의 혈액이 출고돼 수혈자를 감염시키는 사례가 외국에서도 빈발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적십자사의 자체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적십자사는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발표되기 한 달 전인 2004년 2월26일, 간염 의심자의 부적격 혈액이 수혈용으로 공급돼 8명의 수혈자가 간염(B형 3명, C형 5명)에 감염된 사실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날 적십자사는 “2000년 4월 이후 EIA검사에서 간염 양성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간염의심 헌혈자 845명 중 66명이 실제 감염자였고, 이들의 혈액이 74회에 걸쳐 수혈용으로 공급돼 이 같은 수혈감염 사고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적십자사가 2000년 4월 부적격 혈액의 유출이 법으로 금지된 이후에도 2004년 1월까지 간염 의심자의 혈액을 수혈용으로 공급하다 수혈사고를 일으켰다는 얘기다.

    당시 적십자사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다 ‘주간동아’(424호)가 이를 특종 보도하자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털어놓았다. 이후 서울중앙지법은 적십자사의 자체조사를 바탕으로 적십자사 혈액원장을 비롯, 직원 19명을 업무상 과실치상의 혐의로 벌금형에 처했다.

    가난이 죄?

    부적격 혈액 6만7691건이 유출됐다는 감사원의 충격적인 감사결과가 나오자 복지부는 곧바로 부적격 혈액 유출로 인한 수혈감염 조사에 착수했다.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이번에는 수혈감염 조사의 주체를 적십자사가 아닌 질병관리본부로 정했다.

    수혈감염 조사의 주관 기관이 된 질병관리본부는 제주도 시범조사와 수혈자의 의무기록을 통한 1단계 조사(연세대 의대 등 13개 의대 참여)를 거쳐 지난해 11월21일 혈액검사기관인 A사에 2단계 조사용역을 맡겼다. 조사는 대상 수혈자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하고 채혈한 후 간염 감염자임이 확정되면 혈액을 공급한 간염 의심 헌혈자를 추적해 진짜 간염 감염자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지난 4월 A사의 조사용역이 끝났지만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조사결과 발표를 계속 미뤘다. 공무원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혈감염 자문위원회’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발표를 미적거리던 질병관리본부가 6월19일 발표한 조사 결과는 이런 내용이었다.

    ‘수혈자 중 간염 검사 양성자는 89명이었고 그중 8명이 B형 간염에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감염은 되었으나 수혈로 인한 것인지 명백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가 9명(B형 7명, C형 2명)이었다. 수혈감염 인과관계를 판정한 결과는 확정군이 2명(B형), 추정군이 6명(B형 6명), 의심군이 2명(C형), 배제불가군이 7명(B형)이었다.’

    수혈감염 판정기준상 확정·추정군은 수혈감염이 ‘확인된 경우’로, 의심·배제불가군은 수혈로 인한 감염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로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확정·추정군을 수혈감염 ‘입증’으로, 의심·배제불가군을 ‘불입증’으로 가른 기준은 수혈자의 수혈 전 간염 감염 여부였다. 즉, 헌혈자가 현재 간염에 걸려 있거나 간염을 앓은 흔적이 있고 수혈자가 수혈 전에 간염을 앓았다는 증거가 없으면 확정·추정군, 수혈 전 간염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의심·배제불가군이 되는 것이다.

    수혈 이전에 간염에 감염된 사람들은 당연히 수혈 감염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이는 수혈 이전에 운 좋게 간염 검사를 한 사람은 수혈 감염자로 ‘확인’받고, 간염 검사를 했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한 번도 간염 검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수혈 감염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것으로 분류된다는 의미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수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명이 위독한 급성 환자들인데, 병원에 간염 검사 결과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해당 기록을 찾아내려는 조사 주체의 의지가 부족했거나 해당 병원의 의무기록 관리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해당기관이 수혈자의 감염이 수혈에 의한 감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간염 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계층이 대부분인데, 이런 식으로 기준을 정한다면 가난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며 “이는 가슴을 때려 간에 손상을 입혀놓고 ‘네가 예전부터 간이 안 좋았지 않냐’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혈자 간염 검사결과 양성자로 판명된 89명 중 수혈 전에 간염에 걸린 증거가 없는 12명이 수혈 감염자 판정군에서 통째로 제외됐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수혈 이후에 간염에 감염된 것은 확실하지만 이들에게 혈액을 준 헌혈자의 혈액을 채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혈 감염자에서 배제됐다. 이들에게 혈액을 준 12명의 헌혈자 중 1명은 행방불명이고, 7명은 조사 자체를 거부했으며 4명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었다. 정식 조사기간 5개월 외에 1개월이 더 주어졌지만 질병관리본부나 조사용역기관 A사는 해외 거주자에 대한 조사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고려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수혈감염 조사는 의혹투성이
    판정에서 사라진 12명의 감염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은 “이들 헌혈자는 과거 적십자사의 EIA검사에서 1회 이상 간염 양성 판정을 받은 ‘간염 의심자’로, 행불자나 조사거부자는 앞으로 채혈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당연히 간염 감염자로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12명의 수혈자를 수혈 감염 피해자로 보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전 의원은 또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이들을 감염 판정군에서조차 제외한 것은 수혈 감염자 숫자를 고의로 은폐, 축소하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동아’가 입수한 질병관리본부의 내부 문서도 전 의원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용역조사기관 A사가 지난 3월10일 질병관리본부 실무자, 전문가 등과 함께 실시한 ‘수혈감염 2단계 전국조사 전문가 워크숍’ 자료에 따르면 “헌혈자의 추가 채혈이 불가능한 경우 헌혈자는 문제의 혈액 채혈 당시 감염이 있었던 것으로 간주한다”고 되어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12명의 수혈자는 수혈 전 감염 사실이 없고 헌혈자는 감염자인 것으로 인정돼 확정군이나 추정군이 되어야 옳다. 이 자료에선 또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타 국가에 비해 너무 높은 수혈 후 감염률을 보고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대목도 보인다.

    이런 지적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측은 “앞으로 헌혈자의 추가 채혈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래도 채혈이 되지 않으면 ‘판정 불가군’으로 분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내부 문서에 따르면 ‘판정 불가군’은 헌혈자의 채혈 여부와 무관한 개념으로, 이번에 발표한 수혈감염 판정군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기준이다.

    전 의원은 “질병관리본부의 논리대로 한다면 수혈자가 수혈 이후에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져도 헌혈자 조사만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혈감염 인과성이 없는 게 된다. 이 조사가 헌혈자의 혈액이 간염 의심 혈액이기 때문에 시작된 점을 감안할 때 질병관리본부의 이런 태도는 조사의 취지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조사대상 줄이기 급급

    당초 감사원의 감사 결과 드러난 간염 의심 헌혈자의 수는 적십자사가 자체적으로 밝혀낸 2000년 4월 이후 간염 의심 헌혈자(845명)의 25배가 넘는 2만1200명이었고, 이들의 혈액(부적격 혈액)이 유출돼 수혈된 건수는 적십자사 조사 결과(2550건)의 26배가 넘는 6만7691건이었다. 적십자사는 유출된 2550건의 부적격 혈액에서 8명의 수혈 감염자를 찾아냈다.

    산술적으로 따진다면 이번 조사 결과 밝혀진 수혈 감염자의 수는 적십자사가 발표한 것보다 25∼26배 이상인 200명 수준이 되어야 한다. 헌혈자, 부적격 혈액 유출건수 등 모든 변수가 적십자사 발표 수치보다 25∼26배가 넘기 때문이다. 감염자 숫자가 산술적 예상 수치와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질병관리본부의 몇 단계 조사과정을 거치면서 수혈감염 조사대상(유출된 부적격 혈액 건수)이 6만7691건에서 4237명으로 줄었기 때문.

    우선 질병관리본부는 유출된 부적격 혈액 중 적십자사의 EIA검사에서 1회 간염 양성 판정을 받은 후 6회 이상 음성 판정이 나온 헌혈자의 혈액 3만5377건을 제외했다. ‘6회 이상 음성이 나오면 간염 감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자체 결론을 내렸기 때문. 그 후 연세대 의대에서 실시한 1단계 의무기록 검토 조사에서 ‘동일한 수혈자에게 중복 수혈된 혈액’ 등 총 1만6000여 건이 제외됐으며, 통계청과 행정자치부 조사에서 사망자, 연락처 부재자 등 5100여 명이 제외됐다. 그래서 정해진 이번 2단계 조사의 최종 조사대상자 수는 1만343명.

    그런데 A사의 조사과정에서 1만343명의 41.1%인 4255명이 혈액검사를 거부하거나 조사에 응답하지 않아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일이 벌어졌다. 최종적으로 혈액검사 결과가 확보된 4237명보다 검사를 거부하거나 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연락을 받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부적격 혈액 수혈로 간염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는데 채혈 검사를 거부하거나 아예 응답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4000명을 넘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의문은 질병관리본부와 A사가 작성, 조사 대상자에게 배포한 ‘수혈 감염조사 안내문’을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온다. 안내문 어디에도 ‘당신이 간염이 의심되는 혈액을 수혈받았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지 않다. 더욱이 부적격 수혈로 인해 감염 우려가 있다는 점, 수혈 감염자로 판정되면 적절한 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등 대상자에게 채혈 검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안내문이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 ‘본 조사는 귀하께서 과거 수혈을 받으셨는데, 이후 어떤 문제점은 없으신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입니다’라는 문장이 조사 취지를 설명하는 내용의 전부. 따라서 대상자들은 이번 조사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무료 건강검진 안내서쯤으로 인식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와 A사는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기록 조회결과 수혈 감염 조사대상자 김모(58)씨가 수혈 이후 간염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을 발견했지만, 김씨가 ‘조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채혈 검사를 하지 않은 채 모든 조사를 종료했다. 김씨의 경우 헌혈자가 간염을 앓고 있거나 앓은 흔적만 있다면 수혈 감염자로 확인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실제 수혈감염자가 아닌 사람에게 미리부터 필요없는 걱정을 하게 할 가능성이 커 안내문구나 조사자의 설명에서 부적격 혈액을 수혈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며 “거부자나 무응답자 중 앞으로 조사에 응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추가 조사를 하겠다”고 해명한다.

    솔직하고 공정하게

    하지만 조사 대상자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려고 부적격 혈액 수혈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6월19일 기자회견은 왜 했을까. 조사 거부자이든 조사를 받은 수혈자이든 언론 보도를 접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부적격 혈액 수혈자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 아닌가.

    조상대상 줄이기와 관련, 연세대 의대가 주관한 1단계 조사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각 병원에 산재한 의무기록을 중심으로 이뤄진 1단계 조사에서 3374건이 의무기록 자체를 구하지 못했거나 의무기록에 수혈자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적십자사는 혈액을 출고할 때 반드시 출고대장에 해당 혈액이 어느 병원으로 출고됐는지를 기록한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는 병원이 휴·폐업해 의무기록을 구하지 못해 477건, 병원에 수혈장부가 없어 2051건, 의무기록에 수혈자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846건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수혈장부나 의무기록은 기록이 누락되거나 장부가 없어질 경우 의료법에 따라 처벌받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조사과정에서 이에 대한 고발은 한 건도 없었다. 결국 3374건에 해당하는 수혈자들은 수혈감염 조사도 받아보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가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어처구니없는 일은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이런 ‘엉터리 조사’의 비용을 수혈감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헌혈자의 주머니에서 충당했다는 사실이다. 조사 주관기관은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로, 2단계 용역조사기관을 공모한 것도 그곳이었다. 계약 당사자도 질병관리본부와 A사. 그런데 용역비용 12억2200만원을 지급한 곳은 적십자사였다.

    적십자사는 복지부가 비용 부담을 요청하자 울며 겨자 먹기로 ‘헌혈환부적립금’에서 돈을 꺼내 지급했다. 헌혈환부적립금은 적십자사가 혈액을 의료기관 등에 공급하고 받은 돈(혈액수가)의 일부를 적립했다가 나중에 헌혈증서를 가져오는 환자들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헌혈증서 적립금’. 쉽게 말해 적십자사가 헌혈자의 혈액을 팔아서 번 돈이자 결국 헌혈자에게 되돌아가야 할 돈이다. 헌혈환부적립금은 이미 2004년부터 고갈돼 그해 7억2000만원의 누적적자를 봤고, 2005년에는 은행으로부터 18억5000만원을 빌려서 적자를 메울 만큼 사정이 어렵다. 부적격 혈액 유출의 책임자인 복지부와 적십자사가 남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혈액을 내준 헌혈자에게 비용부담을 뒤집어씌운 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고경화 의원(한나라당)은 “이번 조사는 연구활동이 아니라 정부가 수혈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행한 정책사업이므로 헌혈환부적립금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아는 복지부가 조사비용을 헌혈자의 돈으로, 그것도 빌려서 지급하도록 한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2003년 중반부터 시작돼 3년을 끌고 있는 부적격 혈액 유출과 그로 인한 수혈감염 논란. 복지부는 언제쯤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비록 정부의 권위에 생채기가 난다 해도 ‘솔직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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