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여 동안 18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전국 대학병원을 포함한 병원 수백 곳, 의사, 간호사 등 전문인력 수백 명이 동원된 조사의 결과물임에도 이 자료는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월드컵과 외환은행 매각 감사 등 굵직굵직한 뉴스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같은 자료를 보고 쓴 기사인데도 제목이 다르다. ‘수혈로 8명 간염 감염’, ‘나쁜 피 수혈로 17명 간염 감염된 듯’. 8명과 17명.
이 같은 혼란은 질병관리본부의 보도자료 내용이 모호한 데서 비롯됐다. 보도자료엔 “조사대상 수혈자 중 간염 검사 양성자는 모두 89명으로 이중 8명은 수혈로 인해 B형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고, 감염은 되었으나 수혈로 인한 것인지 명백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가 9명”이라고 되어 있다.
B형이나 C형간염은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병으로 자식에게도 물려질 수 있고, 보균자의 경우 취업에서도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전염병. 따라서 정부의 이번 감염사고 조사 발표는 적십자사의 보상이나 손해배상 소송에 있어 가장 확실한 근거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선 분명한 표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딱 부러진 추가 해명이 나오지 않자 이번 조사가 총체적으로 ‘엉터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감염자 수의 고의적 은폐 또는 누락, 수혈자 조사대상 축소, 조사비용 부담의 부적정 등의 의혹이 꼬리를 물고 쏟아졌다.
‘부적격 혈액’ 유출 6만7691건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이 같은 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은 2004년 3월28일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 때문이다. 감사원은 당시 적십자사가 2000년 4월1일 이전 혈액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간염 의심자’ 2만1200명의 혈액 6만7691건을 1999년 4월1일부터 2004년 1월7일까지 수혈용으로 출고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조사대상 헌혈 혈액을 2000년 4월1일 이전으로 한정한 것은, 혈액관리법에 ‘부적격 혈액’을 수혈용으로 공급하면 안 된다는 금지조항이 1999년 4월1일에 제정되어 2000년 4월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 부적격 혈액은 헌혈자에 대한 적십자사의 혈액선별검사(EIA검사) 결과 단 한 번이라도 간염 양성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혈액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그 시점 이전에 간염 의심자로 판명된 사람의 혈액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감사원이 간염 양성 판정이 나온 이들을 ‘감염자’나 ‘환자’라고 부르지 않고 ‘의심자’라고 칭한 것은 적십자사의 EIA 검사가 그만큼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적십자사가 헌혈자를 대상으로 하는 EIA검사는 잠복기에 있는 간염 바이러스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데다, 헌혈자의 상태와 시약(試藥)에 따라 검사 결과가 천차만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