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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대구의 고흐’ 성기열 화백

“나는 어둠으로 빛을 찾고, 지우면서 확장한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이글거리는 대구의 고흐’ 성기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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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대구의 고흐’ 성기열 화백

묵화를 그리려면 오랜 사색이 있어야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은 색깔이 없다”고 말한다.

밤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밤 호랑이가 낮 호랑이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소리를 없애고 모습을 줄일 때 오히려 큰 목소리가 들리고 무서운 이빨이 보이는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예수의 외양은 생략하고 그의 깨달음만 크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묵화의 마력(魔力)이다.”

지난 4월 중순 서울역에 있는 한 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의 그는 머리만 동동 떠서 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머리 쪽에 많은 기운이 몰려 있고, 아래는 상대적으로 허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어릴 적 별명이 ‘세로 삐죽이’였다”고 밝혔다.

그는 “그 별명은 치명적이었고 그로 인해 상당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다”고 토로했다.

열등과 오만으로 비빈 ‘비빔밥’

열등감만큼이나 뚜루를 강하게 감싸고 돈 기운이 오만함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대구 제일은 전국 제일이다”란 말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실력이 있으면 중앙에 알려질 것이고, 중앙에 알려지면 대구에 있어도 중앙 사람이 된다. 꼭 중앙으로 나가야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뚜루는 중앙에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그런대로 명자(名字)를 날려왔다. 특히 인기가 좋았던 것이 ‘성운사’란 이름으로 그려댄 호랑이 그림이었다. 호랑이해가 다가오면 대구지역의 신문들은 성운사의 호랑이 그림을 먼저 받아가기 위해 경쟁을 벌이곤 했다.

뚜루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화가가 된 사람이다. 자기 재주로 그림을 배우며 입에 풀칠도 해야 했기에 그의 삶은 매우 고단했다. 이 고단함이 단순해진 그의 묵화 속에 은근히 배어 있어,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돈오와 점수, 열등과 오만, 불교와 기독교, 하고픈 일과 현실 생활 간의 갈등과 조화는, 부침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느껴본 것이기 때문이리라.

뚜루는 경북 영천군 화산면에서 3남2녀의 오누이 중 한가운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버섯도 자라지 않는 민둥산에 둘러싸여 푸른 것이라고는 저 멀리 보이는 팔공산뿐이었다고 하니 무척 척박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형제는 그림을 즐겨 그리며 성장했다. 그런데 그가 중3이고 형이 고3이던 해 아버지가 중풍을 맞으면서 형제의 학업은 막을 내렸다.

굶어죽는 이가 있던 시절에 아버지가 쓰러졌으니, 형제는 제 손으로 제 입 풀칠을 책임져야 해야 했다. 신체가 허약했던 그는 육체노동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터라 신문에 난 침구학원 광고를 보고 침구학(鍼灸學) 통신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세칭 ‘침쟁이’, 일명 ‘의원(醫員)’소리를 들어가며 환자를 찾아다녔다. 아버지가 풍을 맞았기 때문인지 그는 중풍 환자를 잘 고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이틴의 나이였지만 벌이가 괜찮아 그는 근사한 국산 양복까지 맞춰 입고 다녔다. 그러나 ‘의원은 아무리 잘해도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의술은 내가 생각한 승부처가 아니다’란 것을 깨닫고 침통을 장롱 깊숙이 집어넣었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필생의 승부처로 돌아오기로 작심했다. 하지만 호구지책(糊口之策)도 다급했으므로 초상화를 그리는 환쟁이가 되었다.

“박수근 화백도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나도 10여 년을 초상화 그리며 보냈다. 나는 다른 데서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자기 진열장에 걸어놓을 견본을 그려달라고 할 정도 인기가 좋았다. 지금 사는 집도 그때 번 돈으로 마련한 것이다.”

동생의 죽음

이러한 때 ‘머나먼 땅’ 월남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백마 부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동생이 전사했다는 것이었다. 가방 끈이 짧아 그는 갈 수 없었던 목사의 길을 가보라고 신학교에 보내준 동생이 한 줌 재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미래이기도 했던 동생을 차마 그냥 떠나보낼 수 없어 정성껏 동생의 초상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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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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