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도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많았지만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빨라 혼란스러운 경우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그렇다.
과학으로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느낀 만큼 대안을 모색하느라 신(新)과학운동이니 인지과학이니 하면서 4차원 세계를 탐닉하고 있다. 종교도 객관적인 신의 세계에서 주관적인 나의 내면을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통제와 권위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이 우선시되는 위대한 정보기술(IT) 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문화 쪽에서는 개인의 영성(靈性)을 추구하는 경향이 유행한다.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역사가들은 중세 신의 시대를 암흑기라 부르지만, 지금은 차원을 달리한 새로운 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변화의 흐름과 본질에 대한 통찰 없이 현상에 대한 대처방법만 난무한 탓에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 물질 위주의 세계관, 과학만능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정신세계의 도래가 새로운 화두가 된 이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없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사물만을 탐구하는 자연과학, 인체를 생리와 해부학적으로만 연구해온 의학, 인간을 감정 위주로 분석한 심리학, 몸 자체만의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 등이 엄청난 파장을 맞아 변화를 모색하는 시대인 것이다. 좀더 고차원적으로 이야기하면 시간과 공간, 주관과 객관, 정신과 육체의 분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고감도 느낌의 세계관’이 앞으로의 시대를 주관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나와 남의 구분이 없는 세계, 대상이 주관과 합치는 세계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느낌의 세계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과거 우리 선조가 행한 수련으로 영성을 진화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분명 동물적 삶의 패턴을 바꾸는 영성의 시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삼각 깃대는 天地人 사상의 산물
신라시대 박제상이 쓴 ‘부도지(符都誌)’에는 우리 선조의 영성 위주 생활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땅의 젖을 먹었으니 치아가 필요 없었고, 기(氣) 수(水) 화(火) 토(土)를 넘나들었으니 생의 한계가 없었으며, 뜻으로만 통했으니 말이 소용없었다.’
우리 조상이 영성시대의 삶을 영위하는 수련을 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것이 신선도, 풍류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라는 이름으로 종교가 됐으며, 한국에서는 태권도, 유도 등 무술의 형태로, 최근에는 기수련 등으로 깨달음의 세계를 위한 공부(중국말로는 ‘쿵푸’)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무술을 통하든 수련을 통하든 명상을 통하든 정신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한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스포츠 열풍은 심신(心身) 수련의 전통이 되살아나는 조짐이다. 몸과 마음을 무의식인 절대세계와 연결하고 싶은 본성의 작용이 스포츠로 녹아든 것이다. 마라톤·조깅·등산은 하체를 움직여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테니스나 배드민턴은 손의 감각으로 하는 운동이며, 공으로 하는 축구·야구·배구는 전신감각 개발운동으로서 몸 위주의 스포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