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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⑫·마지막회

‘부용진(芙蓉鎭)’금기(禁忌)의 기억,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부용진(芙蓉鎭)’금기(禁忌)의 기억,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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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진(芙蓉鎭)’금기(禁忌)의 기억,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영화 ‘부용진’ 포스터.

거리로 나선 농촌 여성

예전에는 중국을 여행할 때 기차가 가장 편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고속도로가 속속 뚫리면서 중국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장사에서 고속도로로 1시간 정도 달리니 벌써 사오산 톨게이트다. 내년 9월이면 마오쩌둥 생가 앞까지 고속도로가 날 것이란다. 톨게이트에서 생가까지 2차선 도로로 한참 가는데, 1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여자들이 길가에 양산을 들고 듬성듬성 서 있다.

운전기사가 “뭐하는 여자들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점심 무렵이라 식당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려는 호객꾼이려니 했는데, 둘러보니 주위에 그럴 만한 식당이 없다. 알고 보니 50위안, 우리 돈으로 6000원가량을 받고 몸을 파는 아가씨들, 중국어로 ‘샤오제(小姐)’란다. 기절할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아가씨들 뒤로 허름한, 우리로 치면 여인숙 같은 건물들이 있다. 시골 경제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이렇게 거리로 나서는 농촌 여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샤오제라는 말은 아가씨, 미스란 호칭으로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사라졌다가 마오쩌둥 시대가 끝나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가 열리면서 부활했다. 마오쩌둥 시대는 남녀 사이에 성적 구별이 없는 ‘무성(無性)의 시대’였다. 남성 같은 여성, 일 잘하고 힘세고 피부가 까만 여성이 제일이었다. 그 시절엔 남녀 모두 ‘퉁즈(同志)’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가 시작되면서 여성을 가리키는 호칭이 생겨났는데, 바로 샤오제다. 샤오제는 무성의 시대가 끝나고 유성(有性)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 음식점 종업원을 부를 때 ‘샤오제’라고 하기가 조심스럽다. 남쪽 지방일수록 특히 그렇다. 술집 접대부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부르는 호칭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대낮에 대로상에서 공공연하게, 그것도 마오쩌둥 생가로 통하는 길에서 샤오제들이 버젓이 영업을 해도 되는 것일까. 단속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운전기사가 4자 대구(對句)로 답한다. “지방보호, 개혁개방!” 지방경제를 위해 단속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개혁개방 시대가 아니냐는 것이다.



마오쩌둥에 대한 엇갈린 평가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역설하면서 “파리, 모기가 들어오더라도 창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 파리, 모기가 들어와도 유분수지, 지금 중국엔 파리, 모기가 너무 많아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중국인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범죄와 부정부패, 사회 비리는 늘어나고 농민과 노동자는 좀처럼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가운데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1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배로 치솟아 횡재하는가 하면 부동산 개발 때문에 하루아침에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거지 신세가 된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신좌파가 등장하고, 개혁개방,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정당성과 방향을 둘러싼 새로운 사상논쟁이 베이징 지식인 사회와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후진타오도 사정이 다급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화해 사회’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뿐 아니다. 농촌을 살리려는 ‘신농촌 건설’을 추진하고, 사회주의 가치와 목표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사설이 ‘인민일보’에 자주 실리면서 이데올로기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흔히 중국의 문제는 농촌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개혁개방의 향방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미래가, 중국의 내일이 농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길가에 늘어선 ‘샤오제’들을 보면서 절감한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그늘이 짙어가고,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요즘 들어 마오쩌둥을 찾는 사람, 마오쩌둥을 기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야말로 중국 농민에게는 황금시대였다는 농촌 현장 보고서들이 나오기도 한다. 1992년 마오 탄생 100주년 이후 또다시 마오쩌둥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요즘 중국에서는 이른바 ‘홍색 여행’이 유행이다. 공산 혁명의 성지(聖地)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절반은 관에서 주도하고 절반은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그 홍색 여행의 출발지는 대개 최초로 공산 소비에트가 건설된 징강산(井岡山)이거나 마오쩌둥의 생가다. 지난 6월30일에도 85차 홍색 여행단이 마오쩌둥 생가에서 발대식을 치렀다.

마오쩌둥 생가는 위치가 참으로 좋다. 앞에 호수가 있고, 뒤로는 작은 산이 있다. 별장 터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무더위 속에서도 생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송곳처럼 찌르는 햇살 아래서 20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사람이 적은 편이란다. 마오쩌둥의 아버지는 쌀장사로 돈을 벌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이 꽤 넓다. 돼지도, 소도 키울 정도로 부자였다. 마오쩌둥은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오의 아버지는 아들이 일을 배우고 장사하기를 바랐지만, 마오쩌둥은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집 앞에 있는 서당은 마오가 어려서 고전을 공부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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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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