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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마지막회

손님을 식구처럼, 손님은 집주인처럼

  • 김광화농부 flowingsky@naver.com

손님을 식구처럼, 손님은 집주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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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달 전북 무주에서 보내오는 편지를 즐겁게 읽는 기쁨을 잠시 접어둬야 할 것 같다. 1년5개월 동안 ‘몸 공부, 마음 이야기’를 연재해온 김광화 선생이 잠시 쉬고 싶다는 뜻을 비쳐왔다. 김 선생은 “중독이다 싶은 ‘신동아’ 글쓰기를 중단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초쯤 ‘자기 빛깔이어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재로 새 연재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욕도 드러냈다. 그가 보내온 올해 마지막 편지엔 손님을 맞는 농부의 부지런하고 섬세한 마음이 들어 있다.
손님을 식구처럼, 손님은 집주인처럼

집에서 손님을 맞다가 다른 집에 손님으로 가면 그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해성이가 시연하는 태극권 자세를 지켜보았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산골 마을에는 손님이 부쩍 많아진다. 동네 집집이 보지 못한 차가 서 있거나 낯선 얼굴이 보인다. 아랫마을 할머니네는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왔는지 시끌벅적하다. 귀농한 사람들 집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손님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원하기도 한다. 농사일을 체험한다거나 땅이나 집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 해서 들르기도 한다. 어떤 분은 삶의 전환이나 자녀와의 소통 문제 같은 ‘철학적인’ 문제를 갖고 오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 손님도 전국에서 찾아온다. 부담 없이 오고 가는 이웃들도 있다.

우린 지금 ‘열려 있는 구조’에서 산다. 도시에서 집은 사생활 영역이다. 특별한 손님이 아니면 집 밖에서 만나고 대접한다. 반면 산골은 손님이 집이나 논밭으로 곧장 온다. 작은 시골집에 손님이 오면 어른이든 아이든 식구가 다 함께 손님을 맞게 된다.

손님에게 까다로운 까닭

산골에서 고요히 살다가 손님이 오면 반갑다. 생활에 긴장을 주기도 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해주기도 한다. 바쁜 농사철에 일손을 거들어줄 때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이 흐트러지거나 손님이 가고 난 뒤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손님이 온다고 하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많이 한다.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 씀씀이다. 아내는 마당이 지저분하지 않은지, 뒷간 냄새는 어떤지, 아이들 방은 정리가 되었는지 마음을 쓴다. 자고 갈 형편이면 이부자리는 물론 음식 대접도 마음 쓰인다. 아이 손님까지 있다 보면 더 그렇다.

그러나 손님은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어 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길 원한다. 이따금 고성방가로 그동안 쌓인 억압을 풀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잠을 못 이루고 우리 식구 생활의 리듬은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전에는 누가 온다면 선뜻 그러라고 했다. 이제는 손님보다 식구가 먼저다. 손님 처지에서는 조금 서운할 수도 있지만 “식구들과 의논해보겠다”고 말한다. 처음 만나는 이라면 손님이 누구인지, 왜 오고 싶어 하는지도 묻는다. 그리고 우리 식구가 손님을 함께 맞듯 손님 또한 되도록 가족과 함께 상의해서 오기를 권한다. 부모는 원하지만 아이들이 마지못해 따라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힘들다. 먹는 것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관계에서도 자주 부딪치곤 한다. 그러나 손님 식구들이 모두 원해서 방문하는 경우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낯설지 않고 친근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있지만 손님에게도 좋은 계기가 되리라, 서로 ‘상생’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번은 경북 상주로 귀농한 두 가정이 함께 오겠다고 했다. 어른 넷에 아이가 다섯. 돌 지난 아이부터 중학생까지 있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셨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은 꽤 놀라는 눈치였다. 아이들은 부모가 가면 당연히 따라온다는 생각이었을 게다. 우리가 바라는 ‘절차’를 거치다 보니 방문 예정날짜보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막상 만난 자리는 풍성했다. 우리 식구와 처음 만났지만 그 시간만큼은 대가족이 된 것처럼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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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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