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시나리오Ⅳ 북한 급변사태시 주변국 개입 상황도

평양, 中 진주 요청할 듯…韓 독자주도 못하면 美 중심 유엔 신탁통치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11-06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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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에서의 정변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 이후 북한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면, 주변국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이러한 시도를 차단하고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려면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 급변사태를 공개 논의하는 작업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1997년 통일정책연구소 내부 학술지인 ‘북한조사연구’에 실린 이기동 당시 연구위원의 ‘북한 급변사태시 외부세력 개입 가능성’은 그 구체적인 준비방안을 점검한 사실상의 최근 논문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현실성이 높은 주요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시나리오Ⅳ 북한 급변사태시 주변국 개입 상황도

    1992년 2월17일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에서의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은 주변국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주제였다. 주변국들은 북한 급변사태를 동북아 질서의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착수했다.

    역사적으로도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 확보는 항상 주변국의 국가이익과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이 지역에서 ‘힘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변국들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단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주변국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확보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물론 주변국들간의 주도권 경쟁은 탈법적이고 무원칙적인 경쟁이 아니라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국제법이 명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해석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정치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 급변사태 발생에 따른 외부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대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북한의 급변사태란 정권과 체제의 정상적 운영이 마비된 상황, 즉 무정부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에 사회적 대혼란이 일어나더라도 김정일 정권의 사회통제력이 건재하다면 이를 급변사태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이 남한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는 상황, 나아가서 주변국의 국가이익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이들이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즉 북한의 급변사태란 ‘남한 및 주변국에 중대한 안보위협으로 작용할 만한 무정부상태’를 의미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제법에서는 무정부상태를 불완전 무정부상태와 완전 무정부상태로 나누어 취급하고 있다. 불완전 무정부상태란 기존 정부가 중앙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이에 대항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반도(叛徒)단체가 기존 정부와 투쟁하는 내란 상태에 있는 경우, 혹은 기존 정부는 붕괴됐으나 이를 대체하기 위한 둘 이상의 반도단체가 각기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호 투쟁하는 내란 상태를 말한다. 이에 비해 완전 무정부 상태는 기존 정부가 중앙 통제력을 상실하고 이에 대항하는 반도단체가 전무하거나, 기존의 정부가 붕괴됐으나 이를 대체하기 위한 반도단체 상호간의 투쟁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남한의 독자적 개입 가능할까?

    원칙적으로 국제법상 모든 국가는 불완전 무정부 상태일 경우에는 개입할 수 없다. ‘국내문제 불개입 원칙’을 준수해야 하므로 내전에 개입할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즉 ‘일국의 내란에 대한 자위적 개입’, ‘정통정부의 요청에 의한 개입’, ‘국제연합에 의한 제재를 위한 개입’은 적법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개입의 정도와 방법이 어디까지인지는 모호하지만 실질적인 개입의 폭은 국제법의 틀 안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완전 무정부상태는, 그나마 불완전한 정부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국가의 부재’ 또는 ‘국가의 소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주변국들 또한 붕괴된 국가의 영역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없어지게 된다. 완전 무정부상태에 있는 지역에 대한 주변국 등 외부세력의 개입은 국제법상 아무런 저촉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외부세력의 개입은 이를 완전 무정부상태로 볼 것이냐 불완전 무정부상태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개입을 원하는 측은 완전 붕괴로 규정하고, 그렇지 않은 측은 불완전 붕괴로 규정할 것이다. 중앙적인 판단권자가 없는 국제사회의 현실로 볼 때 완전 붕괴냐 불완전 붕괴냐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강대국 중심의 파워게임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논의가 여기까지 전개되면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당연히 한국 정부가 배타적인 개입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역사적 당위성과 지리적 인접성 등 다양한 근거와 함께 한반도와 주변 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또한 이러한 맥락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제법적 측면으로 살펴볼 때 이 같은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전적인 지지를 얻어 공인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이해관계, 나아가서 남북간 법적 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형식적으로 보면 남북한은 현재 각각 유엔 회원국이며 국제적으로 별도로 공인된 주권국가다. 남북한 관계 또한 국제법상 국가간 관계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 급변사태에 따른 한국의 개입은 주변국들의 개입과 국제법적으로 변별성을 갖기 어렵다. 즉 불완전 무정부상태이면 일국의 내란에 대한 타국의 불간섭 의무에 따라 개입이 불가능하고, 완전 무정부상태일 때만 개입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제2조의 규정에 따라 북한의 내부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지고 있다. 또한 남북한 모두 유엔 회원국이므로 유엔헌장 제2조 4항의 영토보존 원칙과 무력불사용 원칙에 의거해 한국 정부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배타적인 권리가 없다.

    북한의 불완전 무정부상태에서 합법적 개입이 가능한 세 가지 예외적인 경우(북한 당국이 한국군에 개입을 요청하는 경우, 북한의 무력공격에 대한 한국군의 개입, 유엔에 의한 개입)나 북한이 완전 무정부상태로 규정되는 경우에도 남한의 독자적 군사개입은 불가능하다. 현재 남북한이 처한 상황이 평화상태가 아니라 정전상태이며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엔군의 일원으로 개입할 수 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방위가 목적이므로 북한의 선제공격이 없는 상황에서 한미연합군이 북한에 진출하는 데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으로

    북한이 완전 무정부상태에 이르렀을 때, 한국이 앞서 설명한 제약을 극복하고 단독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으로 환원하는 일이다. 다음으로는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개입한다는 명분을 축적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 남한 근로자의 북한 주재를 적극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북한이 무력도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한의 개입이 가능한 경우는 인도적인 차원의 개입과 자국민 보호 차원의 개입뿐이다. 이 가운데 인도적인 개입은 오히려 주변국들의 개입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외국민의 주재 비율이 낮은 북한의 현실을 감안하면, 남한 근로자를 다수 주재하도록 함으로써 북한 거주 외국인들 가운데 한국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 자국민 보호 차원의 개입과 관련해 비교적 배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오래 전부터 북한 유사시 자국민 소개방안을 신중히 모색해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북한의 급변사태는 한민족의 문제이므로 민족자결권에 입각해 한국의 단독 개입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적극 전개해나갈 필요가 있다. 유엔과의 관계에서는 각각 독립된 주권국가지만 남북한 양자관계에서는 상호 독립주권국가로 승인한 적이 없으므로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는 논지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남북한 사이에 각종 협정이 체결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투자보장협정과 같은 문서를 체결할 경우 이를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한 부속합의서 형태로 체결하는 한편, 동시에 국회의 비준절차를 거침으로써 ‘동서독 통일조약’과 같이 국제법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한은 양자의 관계를 ‘특수한 내부관계(special interim relationship)’로 규정한 바 있지만, 이 특수관계의 성격에 대해서는 명백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간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과 경제교류는 민족 내부간의 거래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 남북관계는 한민족 차원의 관계라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한국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화하려는 태도를 보일 경우 북한의 적극적인 반대할지라도 남한은 국회의 비준절차를 거침으로써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북한을 조약화에 찬성하는 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한국 정부의 민족자결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동시에 민족자결권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견해도 있다. 만약 조약으로 인정된다면 국제법에 선행하기 때문에 남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제2조의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에 따라 북한의 완전 무정부상태에도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 무정부상태가 조약체결 당사자인 국가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논리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선행작업이 성사된다 해도 국제사회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한국 정부의 독자적 개입권을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의 변화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각국 입장에 따라 한국의 독자 개입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남한의 독자적 개입이 끝내 관철되지 못할 경우 주변국들의 개입은 어떻게 이뤄질 것이며, 그에 대비해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일까.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주변국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해보자. 최근 동북아지역에 대한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가 일본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한계에 부딪치고 있음을 감안하면,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각국은 힘에 기초한 경쟁적 또는 일방적 개입보다 각국 사이의 협조적 개입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정치적 측면만 살펴볼 때 이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의 협조적 개입이다. 일본의 경우 미일동맹의 틀에 묶여 있어 북한의 급변사태에 제한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유럽 확대와 국내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세력균형질서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축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다른 축으로 형성 된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대한 유일한 견제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미국의 독자적 개입을 제약할 것이다.

    사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저해하고 미중간의 세력균형을 깰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너무나 첨예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의 급변사태라는 ‘뜨거운 감자’ 앞에서 각국은 어느 일방이 먼저 손을 대기보다 상호협조를 통해 ‘식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중국의 일방적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급변사태를 맞은 북한 당국이 전통적 우호국가인 중국의 독자적인 개입을 요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견제로 중국의 대규모 군사 개입은 어렵겠지만 합법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고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중간의 협조적 개입이 이뤄지려면 개입의 성격, 범위, 기간을 둘러싸고 흥정과 타협을 통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양국 군대의 위상과 성향에서 나타나는 극명한 차이로 인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접경지역에 미군이 진주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중간의 협조적 개입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는 가능한 유형으로 상정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제약요인이 많다.

    유엔 다국적군 파견 가능성 높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한국의 단독개입이 좌절될 경우 가장 유력한 국제사회의 개입 시나리오는 유엔에 의한 개입이다. 실제로 유엔은 소말리아, 르완다 등에서 발발한 내전에 개입해왔으며, 유엔헌장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폭넓게 해석하고 활동하는 추세에 있다. 더욱이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유엔의 개입은 미중간의 협조적 개입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한다.

    우선 유엔은 평화유지활동(PKO·Peace-Keeping Operations)과 같은 제도화된 개입방식과 개입규범을 보유해 별다른 장애물 없이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다. 더욱이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모든 회원국에 개방돼 있고, 유엔이 작전지휘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미군의 주둔에 대한 중국의 반대나 미군 주둔에 따른 중국군과의 마찰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러나 평화유지군(PKF·Peace-Keeping Forces)의 파견은 국제법상 분쟁지역 정부나 지역내 관련 당사자(the other parties involved)의 요청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유엔이 무력을 동원해 개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인 다국적군은 평화유지군과 달리 분쟁지역 정부나 관련 당사자의 공식적인 요청이 없더라도 개입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는 6·25전쟁이나 이라크사태처럼 ‘선제공격’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유엔 안보리가 북한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 통제불능상태의 국제적 위험성을 주목해 군사적인 강제조치로 다국적군 파견을 결정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유엔에서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동북아지역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의 참여가 관건이다. 다국적군의 지휘책임을 미군이 담당할 경우 중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있지만, 유엔 차원의 개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전개가 한국 입장에서 그리 반가운 것이 못 된다는 점이다. 주변국들이 북한 급변사태를 완전 무정부상태로 규정할 경우 이는 주변국의 개입을 국제법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주변국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또한 완전 무정부상태로 규정돼 유엔이 개입할 경우 신탁통치체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중구난방 개입’ 막으려면

    따라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서 특정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국제사회가 이 상황을 완전 무정부상태로 규정하지 않도록 하는 데 일차적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불완전 무정부상태에서는 정통 정부가 명백히 존재하므로 국가 소멸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여전히 유엔 회원국의 자격을 보유하게 되어 신탁통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우선 주변국이 유엔을 거치지 않고 개입하는 경우와 관련한 대책을 살펴보자. 이 경우 정부는 무엇보다 미국과 사전협의를 통해 ‘북한 급변사태시 가이드라인’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미연합사의 역할과 기능 등을 포함하는 한미공조의 지침서로 활용돼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개입하는 상황을 방지함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빌미로 중국이 개입할 명분을 제거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개입할 때는 반드시 한국과 사전협의를 거치고 한국이 필히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한국 배제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적 대책과 더불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해 주변국들이 이를 완전 무정부상태가 아닌 불완전 무정부상태로 규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지역에 기존 정부에 대적하는 조직적인 당국이 존재(existence of rival organized authorities)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명백히 인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3국을 통해 특정 반도단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도단체에 대한 지원은 국제법에 저촉되는 사안이므로 공식화할 수는 없으며, 특히 1개 반도단체만을 지원하기보다는 만약을 대비해 복수의 반도단체를 선택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북한 당국의 요청으로 중국이 개입할 경우에 대비해 정부는 북한의 대중(對中) 식량 및 원유의존도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북 식량 및 유휴 에너지 지원을 증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이 중국 외교정책의 핵심사안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이미 지지했음을 강조해 중국도 ‘하나의 한국’ 원칙을 지지해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만약 북한 급변사태시 중국의 개입이 기정사실이 될 경우 북한지역의 시장경제화가 중국에 경제적 이익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북한지역 재건 프로그램’을 미리 중국 정부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유엔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이러한 상황전개는 분명 주변국의 일방적 혹은 협조적 개입 시나리오보다 한반도 통일에 유리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단독 개입 징후가 나타날 경우 한국 정부는 유엔에 의한 개입으로 방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은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적절히 활용해서 미국의 단독 개입이 예상될 경우에는 중국의 견제를 부추기고, 중국의 단독 개입이 예상될 경우에는 미국의 견제를 요청함으로써 결국 유엔의 개입에 의한 해결이 관련 당사국들에게 공동의 이익이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유엔이 북한에 개입한다면

    또한 안보리의 결정이 지연되거나 교착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 결의안(국제연합군의 북진 인가)에 의거해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없어도 북한의 내란에 개입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현재의 국제연합군은 사실상 한미연합군으로 구성되어 있어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므로 이들을 연합군에 동참시키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자위대의 직접 군사활동을 배제한 후방 지원 차원에서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유엔이 강대국의 주도권 아래 놓여 있음을 감안하면 유엔 차원의 개입이 결정된 이후에도 몇 가지 사항에 유의해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다국적군과 평화유지군 가운데 어느 형태로 개입할 것이냐의 문제를 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평화유지군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평화유지활동은 유엔의 직접적인 명령을 통해 수행되지만 다국적군의 활동은 대개 일국의 주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칫 일국의 영향력이 극대화하거나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평화유지군 파견에는 분쟁지역 정부나 관련 당사자의 요청이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북한지역에 친(親)남한 혹은 친서방적 반도단체를 미리 수립하거나 기존의 단체를 이러한 성향으로 유도해뒀다가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엔에 평화유지군을 요청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작업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효과를 거둬 안보리가 북한지역에 대한 평화유지군 파견을 결의하면 한국 정부는 이에 적극 참여의사를 밝혀야 하며, 인원과 장비제공에서 가능한 한 중심역할을 맡아야 한다. 특히 유엔 평화유지단의 기능 중에는 분쟁지역의 자유로운 선거 실시와 관계 있는 지원(Electoral Assistance)이 포함돼 있다. 이 선거는 향후 북한의 민주화나 남북한의 정치통합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선거감시단에 최대한 한국인들을 많이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선거법에 대한 자문, 선거조직, 선거감시 등에도 한국 자문단과 감시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한국의 선거제도와 이질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중 견제할 레버리지

    급변사태를 관리하는 문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안의 성격이 급박한 만큼 그 처리 역시 신속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에 대비해 정부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라는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로 유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국들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이나 현실상의 국제정치 논리는 보여주고 있다.

    둘째, 이러한 노력이 배타적이거나 고립적으로 이뤄지면 오히려 주변국들의 개입을 부추기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이고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존 한미공조체제의 틀 속에서 대비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현실적인 영향력을 감안하여 중국과의 관계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이나 중국이 독자적으로 사태를 주도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레버리지(leverage)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이를 장차 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국제법이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틀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국제법을 이용해 한반도 통일에 불리한 주변국의 개입을 제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법의 틈을 이용해 한반도 통일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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