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인터뷰〉 ‘핵 무장론’으로 돌아선 ‘비핵화 선언’ 주역 박철언 전 의원

“북한이 끝내 핵 포기 안하면 ‘ 자위적 핵무기 개발권’ 요구해야”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11-06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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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핵, ‘핵우산’치고는 너무 멀리 있다”
    • “전작권 협상 중단하고 美에 ‘한국 내 핵 재배치’ 요청하라”
    • “통일의 조건은 ‘한반도 비핵화’ 혹은 ‘남북한 핵 보유’”
    • “한국은 ‘핵 인질’, 누가 누구를 ‘포용’한다는 건가”
    •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집착하면 소탐대실”
    • “北,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공포 느껴 비핵화 선언”
    〈인터뷰〉 ‘핵 무장론’으로 돌아선 ‘비핵화 선언’ 주역 박철언 전 의원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로 불리며 1991년 남북한 비핵화 선언을 주도한 박철언(朴哲彦 ·63) 전 의원은 9월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핵화선언 재고해야-한미연합사 해체하면 우리도 핵개발 주장해야’라는 글을 올렸다. 남북 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전직 장관급 인사가 ‘한국 핵 무장론(論)’을 편 것은 처음이다.

    9월7일에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핵 보유론을 주장했다. 조 전 대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한미연합사 해체로) 핵우산이 날아가버린 한반도에서 한국은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핵무장한 김정일 정권의 공갈 협박을 상대해야 한다. 인접 적국(敵國)이 핵무기를 개발한 상황이 되면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든지 아니면 적의 속국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선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일본 핵 무장론을 폈다. 그는 “미국의 핵우산 보호와 별도로 일본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9월21일 세종연구원 주최 국가전략포럼에서 정성상 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일본도 핵무장을 할 경우에 대비해 한국도 핵개발 카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월9일, 북한이 마침내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일부 야당 의원은 국회에서 한국 핵무장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 핵실험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한국의 핵무장 이슈에 불을 지핀 박철언 전 의원(한국복지통일연구소 이사장)을 10월11일 서울 강남구 한국복지통일연구소에서 만났다.

    ▼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이라면 왜 이런 일을 강행했을까요.

    “북한의 최고 목표는 핵 무장을 하면서 김정일 체제도 보장받고, 서방의 경제지원도 얻는 것입니다. 최저의 목표는 체제 보장과 경제지원입니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 핵을 영구 폐기시키면서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일단 이번에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했으므로 하나의 목표를 성취한 셈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본, ‘아시아의 영국’으로 부상할 듯”

    ▼ 그렇다면 북한 핵실험에 따른 한국, 중국, 일본의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될까요.

    “가장 곤경에 빠진 쪽은 한국입니다. 한국과 중국은 2002년 10월부터 불거진 2차 북핵위기에 안이하게 대처함으로써 결국 이번에 북한의 핵무장과 맞닥뜨리게 된 셈입니다. 한국은 뚜렷한 대응력도 없이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된 사실상의 유일한 국가가 됐으니 최악의 상황에 빠졌고,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으니 난처하게 됐다고나 할까요.

    전통적으로 ‘고립주의’를 표방해온 미국은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그리 답답할 게 없습니다. 일본은 오히려 핵 무장이나 군사대국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요.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파트너로 삼은 만큼 이번 기회에 유럽-대서양에서의 영국과 같은 역할을 일본에 맡겨 중국을 견제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일본의 핵 개발을 용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수입니다.”

    열린우리당에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와대도 두 가지 대북사업을 당장 중단하지는 않기로 했다. 여권은 남북정상회담을 유효한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은 이런 대응방식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북한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터뜨린 이상, 대북 포용정책은 그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우리에겐 상호주의에 입각해 생존을 지켜 나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핵의 인질이 됐습니다. 군사력에서 북한은 이제 한국을 압도합니다. 누가 누구를 포용한단 말입니까. 북한은 포용정책을 비웃고 있을 겁니다. 핵실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반쯤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다음날 다시 원래 자리로 가더군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은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어 중단하기에는 아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사업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제재에 보조를 맞춰야 해요. 북한이 40년 숙원인 핵을 가진 상황에서 이를 포기하도록 유인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자칫 남한 내부의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남아 있습니까.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공인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의 특성상 1970년 이후 핵실험에 성공한 인도나 파키스탄도 핵 보유국으로 공인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이 세계 9번째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위기의 장기화가 주는 ‘만성 피로’

    ▼ 북한의 핵 보유는 한국의 안보, 경제 등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까요.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주식시장도 안정돼 있다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는데요.

    “단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겠죠. 이미 2002년 2차 북핵위기 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경제의 평가절하)’가 이뤄졌습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한국에선 핵 인질로 끌려다니는 ‘위기의 장기화’가 초래될 것입니다. 이는 경제에 만성적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외교적 해결이 난관에 부딪힐 경우 해외 투자가 줄고 경제에 주름살이 질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핵 공갈을 치면서 우리의 체제를 흔들려 할 겁니다.”

    ▼ 정부는 일단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핵 보유국에 재래식 전력으로 맞선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은 안보에 커다란 위험요소가 생겼습니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국제적 공동보조를 통해 북한을 강하고 분명하게 압박해 핵 포기를 유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동시에 체제인정 및 경제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북미회담과 6자회담을 해나가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에 딴죽을 걸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제재에 앞장서도 곤란합니다. 북한과 감정적으로 대립할 필요는 없습니다.”

    ▼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엔 응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번 사태로 가장 피해를 보게 된 나라는 한국입니다. 한국은 이제 미국에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북한 핵실험은 필연적으로 한국의 국방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은 대화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B’를 마련해두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의원은 보다 직접적인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주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은 미국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요.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이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꼼꼼히 챙겨보겠다’고 하는 등 정부는 아직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한미연합사 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한국의 안보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는 환수 논의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지금도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고 하던데요. 이런 논리에 따르면 안보 불안이 크지 않은 것 아닌가요.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북한의 핵은 지척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사일, 비행기, 장사정포 등 한국에 핵무기를 손쉽게 떨어뜨릴 수 있는 운반체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핵우산이 된다는 미국의 억지력은 한반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한국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하면 안 되지요. 국민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그런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안이한 자세입니다. 수천km 떨어진 태평양의 핵으로 코앞에 있는 북한 핵을 커버할 수 있겠습니까.”

    〈인터뷰〉 ‘핵 무장론’으로 돌아선 ‘비핵화 선언’ 주역 박철언 전 의원

    박철언 전 의원은 “한국은 북한 핵을 폐기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 선언 실효(失效) 선언해야”

    ▼ 그렇다면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미국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번 북한의 핵실험으로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효력을 상실하게 됐습니다. 42차례나 북한측과 비밀리에 접촉하며 이 선언을 이끌어낸 당사자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부는 적절한 시기에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실효(失效)했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도 미국 핵무기 재배치 등 다음 단계의 액션을 취할 수 있고, 그래야 안보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국은 미국 핵무기를 국내에 들여오도록 미국과 논의해야 합니다.”

    미국 핵의 한국 배치는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과의 긴장 고조는 불가피하며 국내에서도 이념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박 전 의원은 “미국의 핵우산은 공짜가 아니다. 북한 핵실험으로 핵우산의 필요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미국은 상당한 비용을 한국에 요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핵우산은 핵전쟁에 대한 예방적 차원, 방어적 차원의 개념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남북한 간의 무력충돌이 발발할 경우 ‘약속된 핵우산’이 실제로 작동할 것인가의 문제는 순전히 미국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안이다. ‘핵우산’이 유사시 한국의 안보를 완벽하게 보장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TV 토론에서 “현재 한국과 미국의 신뢰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한국에 대한 미국민의 호감도도 떨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경우 방사능에 오염된 한국의 전쟁터로 자식을 보내는 데 동의할 미국민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며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미국의 핵우산 보호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핵우산의 불완전성에 기인한다.

    ▼ 박 전 의원께선 이미 북한 핵실험 이전에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했습니다. 당시엔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경우의 안보 공백 보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논리였는데요.

    “한국은 북한 핵을 폐기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재와 대화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겠죠.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한국은 독자적 핵무장이 필요합니다.”

    ▼ 미국의 핵우산과는 별도로 말인가요.

    “북한이 핵 보유국인 이상 미국의 핵우산만으로는 한국의 안보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습니다. 한국은 비정부차원에서 먼저 ‘북한이 끝내 핵을 계속 갖겠다고 한다. 북한이 핵을 사용할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우리가 이대로 생존을 북한에 맡겨야 하겠는가. 우리도 자위적 핵무기 개발권을 행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메시지를 미국 등 우방국과 국제사회에 던져야 합니다.”

    “핵우산만으로는 보장 안 돼”

    한국은 NPT체제에 가입해 있고, 세계 12위권의 대외개방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으며, 북한과는 달리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활동하는 나라이므로 독자 핵무기 개발 및 보유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한국이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조차 용인하지 않고 있다. 핵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 핵실험에 대한 감정적 반응, 이상론(理想論)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 한국의 핵무장 당위성은 어느 정도 있는지 몰라도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입니다.

    “한국은 NPT체제를 존중하면서 핵무기 비확산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국제사회의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분명해진다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한국은 NPT체제에 계속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당연히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국이 NPT체제를 절대로 이탈할 수 없으며 핵개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생존은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다소간의 외교, 경제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포의 균형에 의한 평화”

    ▼ 한반도 비핵화 균형이 깨진다면 동북아시아에서 핵도미노 현상으로 지역평화체제가 커다란 위협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남북한 통일도 어려워진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면 동북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완화되고 평화와 신뢰의 무드에서 남북한이 주변국들의 양해를 구해 국가연합 등 통일의 단계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의 핵 보유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상황이라면, 한반도에서 북한만이 핵을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남한과 북한이 모두 핵을 갖는 것이 더 낫습니다. ‘비대칭’에 의한 상시불안보다는 ‘공포의 균형’에 의한 평화가 더 낫다는 것이죠. 일본과 대만까지 핵보유국이 되어 동북아시아 모든 국가가 핵을 갖게 되는 상황에서도 ‘공포의 균형’은 작동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핵으로 이니셔티브를 가진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 통일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통일의 가능성에선 남·북한이 모두 핵을 갖는 것이 북한만 핵을 갖는 것보다 낫습니다.”

    박 전 장관은 ‘북한과 관계 속의 한국’ ‘미국과 관계 속의 한국’이 아닌 ‘한국 그 자체의 운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듯했다. 이런 그의 기조는 햇볕쟁책 지지론자와 반대론자에 대한 동시 비판으로 이어졌다.

    ▼ 북한 핵실험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핵 문제를 오히려 악화했다는 견해도 있고, 반면에 대북 포용정책은 나름대로 유용성이 있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대북 포용정책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 특별선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91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민족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공동번영의 시대를 열어보자는 것이 당시 대북 포용정책의 취지였습니다.

    나는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철저한 상호주의를 관철했습니다. 우리가 가면 그쪽이 다음번에 반드시 오도록 했습니다. 고향방문단이나 예술단 행사도 적어도 서울·평양에서 하도록 했습니다. 현금지원, 뒷거래 없이도 남북한은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이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실제 운용과정에서 일방적인 대북 유화정책으로 변질된 겁니다.”

    ▼ 북한이 1991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한 것은 국제정세의 영향도 있었던 것 아닌가요.

    “소련의 붕괴로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미국이 핵무기로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남북한 비핵화선언을 이끈 동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남북한 간의 상호주의, 공동번영의 정신이 구현된 것도 사실이지요.”

    “친미 일변도 야당, 답답하다”

    ▼ 야당이 제시하는 대북정책 및 북핵 해법에 대해선 어떤 견해입니까.

    “노무현 정부는 감성적 민족주의를 접어야 합니다. 야당과 보수층도 친미 일변도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야당은 대단히 각성해야 합니다. 야당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 같습니다. 국민은 야당이 미국의 이익이나 처지만 대변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 박 전 의원께서 남북 문제에 관여할 때 미국과도 자주 접촉했습니까.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도 했고…. 내가 반미주의자는 아니죠. 공산권과의 수교를 이끌어낸 북방외교, 남북비핵화선언 등의 실무 작업을 수행할 때 미국측은 여러 번 내게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난 일부러 피했습니다. 일단 자리를 만들면 너무 자세한 내용까지 얘기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미국측이 찾거든 꼭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죠. 미국에서 ‘좀 오라’고 해서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워싱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꼬박 설명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죠.”

    그는 “친미 일변도의 태도도 위험하다”는 견해를 누차 밝혔다.

    “정말 답답합니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야당은 누구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닙니다. 1994년 서명한 제네바합의는 북한도 어겼지만 미국도 위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때는 올브라이트가 북한을 방문하고 조명록이 백악관을 찾으면서 북-미 간 상당히 진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의 ‘악의 축’ 정책 이후 악화일로를 걷더니 2차 북핵위기를 맞았습니다.

    정부가 미국을 신중하게 대하고 야당, 시민단체, 언론은 미국을 향해 할 말은 다 하는 나라가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됐습니다. 야당은 미국이 듣기 싫은 얘기는 한마디도 안합니다. 그러니 극우친미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부도 문제고 야당도 문제입니다. 야당은 미국에 ‘왜 그런 수작 부리느냐’고 따질 건 따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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