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터뜨린 이상, 대북 포용정책은 그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우리에겐 상호주의에 입각해 생존을 지켜 나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핵의 인질이 됐습니다. 군사력에서 북한은 이제 한국을 압도합니다. 누가 누구를 포용한단 말입니까. 북한은 포용정책을 비웃고 있을 겁니다. 핵실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반쯤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다음날 다시 원래 자리로 가더군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은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어 중단하기에는 아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사업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제재에 보조를 맞춰야 해요. 북한이 40년 숙원인 핵을 가진 상황에서 이를 포기하도록 유인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자칫 남한 내부의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남아 있습니까.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공인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의 특성상 1970년 이후 핵실험에 성공한 인도나 파키스탄도 핵 보유국으로 공인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이 세계 9번째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위기의 장기화가 주는 ‘만성 피로’
▼ 북한의 핵 보유는 한국의 안보, 경제 등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까요.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주식시장도 안정돼 있다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는데요.
“단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겠죠. 이미 2002년 2차 북핵위기 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경제의 평가절하)’가 이뤄졌습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한국에선 핵 인질로 끌려다니는 ‘위기의 장기화’가 초래될 것입니다. 이는 경제에 만성적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외교적 해결이 난관에 부딪힐 경우 해외 투자가 줄고 경제에 주름살이 질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핵 공갈을 치면서 우리의 체제를 흔들려 할 겁니다.”
▼ 정부는 일단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핵 보유국에 재래식 전력으로 맞선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은 안보에 커다란 위험요소가 생겼습니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국제적 공동보조를 통해 북한을 강하고 분명하게 압박해 핵 포기를 유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동시에 체제인정 및 경제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북미회담과 6자회담을 해나가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에 딴죽을 걸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제재에 앞장서도 곤란합니다. 북한과 감정적으로 대립할 필요는 없습니다.”
▼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엔 응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번 사태로 가장 피해를 보게 된 나라는 한국입니다. 한국은 이제 미국에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북한 핵실험은 필연적으로 한국의 국방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은 대화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B’를 마련해두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의원은 보다 직접적인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주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은 미국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요.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이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꼼꼼히 챙겨보겠다’고 하는 등 정부는 아직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한미연합사 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한국의 안보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는 환수 논의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지금도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고 하던데요. 이런 논리에 따르면 안보 불안이 크지 않은 것 아닌가요.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북한의 핵은 지척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사일, 비행기, 장사정포 등 한국에 핵무기를 손쉽게 떨어뜨릴 수 있는 운반체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핵우산이 된다는 미국의 억지력은 한반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한국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하면 안 되지요. 국민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그런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안이한 자세입니다. 수천km 떨어진 태평양의 핵으로 코앞에 있는 북한 핵을 커버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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