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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한류 이미지 부각
장나라가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2004년 9월 중국 드라마 ‘은색연화’에 출연하면서부터지만 중국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라고 한다.
“데뷔하기 전부터 일본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그 무렵엔 일본 진출이 유행이었거든요. 그런데 왠지 끌리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데뷔 후 대만과 중국에 팬클럽이 생겨 몇 번 공연을 갔는데 그곳 분위기가 저랑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활동할 준비를 한 거죠.”
대개 한류 스타들은 국내에서 주로 활동하고, 중국이나 일본에선 일회성 이벤트를 갖는다. 장나라 역시 처음부터 중국에 ‘올인’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다보니까 점점 재미있어지고 욕심도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준비했다. 무엇보다 ‘외국 뜨내기’가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임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드라마 ‘은색연화’ 출연료와 관련 공연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해 ‘따뜻한 한류’ 이미지를 심는 한편, 중국 1집 앨범 ‘이장(一張)’ 발매 때는 중국 신인가수들과 함께 무대 인사를 하며 ‘특별손님’이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또한 여느 중국 가수들처럼 광활한 중국 대륙 곳곳을 누비며 30개가 넘는 지역에서 콘서트 투어를 했다.
“우리는 방송국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다 전국방송이라 방송활동만 열심히 해도 되잖아요. 중국은 안 그래요. 베이징과 상하이 방송에 나왔다고 전국에서 다 아는 게 아니에요. 저도 첫 음반을 내면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 기자들을 다 모아놓고 발표했지만, 한 달 뒤 광둥성 광저우에 갔더니 제 팬들조차 음반 나온 걸 모르고 있었어요. 그 정도로 넓고, 각 지역이 독립적이에요. 다 돌아다니며 방송에 나가고, 공연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 결과 2집 앨범 ‘얼장(二張)’이 나왔을 때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사인회장에서는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바람에 산소용접기로 창살을 절단하고 빠져나와야 했다.
▼ 이젠 정상에 섰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중국에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최고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적어도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하겠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한창 사랑을 받을 때도 쟁쟁한 선배들에 비하면 저는 올챙이였을 뿐이에요.”
▼ 어느 정도가 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나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때 중국 CCTV1에서 ‘춘절완회(春節晩會)’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데, 정말 ‘별 중의 별’들만 출연해요. 대만, 말레이시아 같은 중화권 국가의 톱스타도 출연하기 힘들어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대단한 프로그램이거든요. 중국인은 춘절이면 무조건 이걸 봐야 해요. 춘절 기간 내내 폭죽 터뜨리고 놀다가도 이 프로그램 하는 시간이 되면 모두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봐요. 여기 출연할 정도는 돼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