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봄 가을 날씨처럼 선선한 여름을 짧게 보내고 나면 일년 내내 겨울인 사할린. 1869년부터 러시아에서 추방된 죄수와 혁명가들이 이주해 살던 사할린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표현대로 ‘슬픔의 틈새’였다. 그랬던 이곳에 때아닌 봄꽃이 피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매장량이 많다는 가스와 석유 덕분이다.
러시아산 대게와 보드카를 빼면 특별히 내다팔 것도 없는 사할린에 세계 최대의 석유자본이 몰리자 땅값, 물가, 인건비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러시아 지역학을 공부한 뒤 9년 동안 모스크바와 사할린에서 생활한 홍기정 코리코 이앤씨 과장은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선 아파트 시세를 보자. 2년 전 24평 아파트의 임대료는 월 500달러(50만원)였으나, 지금은 1500달러(150만원)를 호가한다. 리모델링한 아파트는 웃돈까지 얹어줘야 구할 수 있다.
생활필수품인 설탕 1kg과 빵 한 덩이는 500원, 밀가루 1kg은 800원쯤 한다. 한국의 물가수준으로 보면 비싼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와 비교해 18%가 올랐다는 상인들의 설명을 듣고보니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가늠할 수가 없다. 휘발유 1ℓ가격은 1000원, 경유 1ℓ는 700원가량. 유전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석유 가격도 나날이 오르고 있다.
어둠침침하던 사할린에 이렇듯 생기가 도는 이유 중 하나는 값비싼 외제차의 유입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20여 분 동안 벤츠 S-600, 4륜구동 도요타 랜드크루저, 현대차 산타페 등이 줄지어 달리는 광경을 봤다. 홍기정 과장은 “사할린 주민의 월급이 상당히 올라 외제차를 구입하는 중산층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수영장이 딸린 특A급 호텔은 아니지만, 내부 시설이나 잠자리만큼은 1급 수준으로 보이는 시내 중심의 메가호텔. 신종철 코리코 이앤씨 사장이 운영하는 이 호텔의 객실요금은 스탠더드형이 하루 19만원, 스위트룸은 34만∼48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를 좀 넘는 가난한 나라치고는 엄청나게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