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사할린은 ‘제2의 두바이’

건설, 유통, 레저산업 휩쓰는 ‘돈바람’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6-11-07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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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토(凍土)로 알려진 러시아의 극동, 사할린 경제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수백억달러를 쏟아 붓는 다국적 석유개발업체들 덕분이다.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매장된 석유와 가스를 찾아 들어오는 외국인들 덕분에 경제 개발붐이 한창이다. ‘제2의 두바이’가 될 조짐을 보이는 사할린에서 ‘황금’을 캐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사할린은 ‘제2의 두바이’
    마치 이웃집 드나들 듯 사할린을 오가는 이근택 CS토탈 사장은 최근 사할린의 급속한 발전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9월19일 인천공항을 출발, 비행기로 2시간30분 만에 사할린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연신 감탄사를 날렸다. 불과 몇 달 만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새 도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할린의 주도(主都) 유즈노 사할린스크시(市)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신종철 사장은 “9월말 세계적인 에너지 세미나가 사할린에서 열려 도로를 정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봄 가을 날씨처럼 선선한 여름을 짧게 보내고 나면 일년 내내 겨울인 사할린. 1869년부터 러시아에서 추방된 죄수와 혁명가들이 이주해 살던 사할린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표현대로 ‘슬픔의 틈새’였다. 그랬던 이곳에 때아닌 봄꽃이 피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매장량이 많다는 가스와 석유 덕분이다.

    러시아산 대게와 보드카를 빼면 특별히 내다팔 것도 없는 사할린에 세계 최대의 석유자본이 몰리자 땅값, 물가, 인건비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러시아 지역학을 공부한 뒤 9년 동안 모스크바와 사할린에서 생활한 홍기정 코리코 이앤씨 과장은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선 아파트 시세를 보자. 2년 전 24평 아파트의 임대료는 월 500달러(50만원)였으나, 지금은 1500달러(150만원)를 호가한다. 리모델링한 아파트는 웃돈까지 얹어줘야 구할 수 있다.

    생활필수품인 설탕 1kg과 빵 한 덩이는 500원, 밀가루 1kg은 800원쯤 한다. 한국의 물가수준으로 보면 비싼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와 비교해 18%가 올랐다는 상인들의 설명을 듣고보니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가늠할 수가 없다. 휘발유 1ℓ가격은 1000원, 경유 1ℓ는 700원가량. 유전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석유 가격도 나날이 오르고 있다.



    어둠침침하던 사할린에 이렇듯 생기가 도는 이유 중 하나는 값비싼 외제차의 유입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20여 분 동안 벤츠 S-600, 4륜구동 도요타 랜드크루저, 현대차 산타페 등이 줄지어 달리는 광경을 봤다. 홍기정 과장은 “사할린 주민의 월급이 상당히 올라 외제차를 구입하는 중산층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수영장이 딸린 특A급 호텔은 아니지만, 내부 시설이나 잠자리만큼은 1급 수준으로 보이는 시내 중심의 메가호텔. 신종철 코리코 이앤씨 사장이 운영하는 이 호텔의 객실요금은 스탠더드형이 하루 19만원, 스위트룸은 34만∼48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를 좀 넘는 가난한 나라치고는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나 석유개발 사업자들이 몰려들면서 이 호텔은 공실률이 극히 낮다. 주 고객층은 러시아 정부 고위관료, 모스크바 사업가, 석유개발업자, 일본과 한국 관광객 등이다. 신 사장은 “지난 7∼9월 객실점유율은 90%가 넘었다”고 말했다. 사할린에 오면 이 호텔을 이용한다는 이근택 사장이 “호텔 방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보면 과장은 아닌 듯싶다.

    유전 덕분에 활기가 넘치는 사할린에는 연간 5000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사업가가 새로 유입되고 있다. 특히 건설업체의 진출이 활발하다. 지난해엔 미국과 터키 건설업체가 대거 진출했다. 석유개발업자와 인부들이 기거할 주택, 아파트,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수요를 보고 들어오는 것이다.

    30년 일거리 쌓여

    사할린의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엔 CS토탈이란 회사가 있다. 증권시장에 상장하지 않아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쉘이나 엑슨모빌처럼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에는 잘 알려진 회사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독특하다. 간단히 말하면 석유 메이저가 원유를 끌어올려 시장에 판매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석유개발 사업은 철저히 분업화돼 있다. 우리가 흔히 석유 메이저라고 부르는 업체는 석유가 어디에, 얼마만큼 묻혀 있는지를 탐사하는 것이 사실상 하는 일의 전부다. 원유를 뽑아올리는 플랫폼(공장)은 중공업 기술이 뛰어난 한국이, 해저(海低)나 땅에 구멍을 뚫는 드릴 작업은 인도나 필리핀이, 육상에서 원유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은 일본이 맡는 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석유 시추부터 채유(採油), 운송까지 수많은 분야의 사업체가 끼어들고, 대규모 인력이 동원된다. 한 유전에서 원유가 소진될 때까지 통상 30년을 보는데, 이 기간에 유전을 관리할 인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석유업계는 이 모든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줄 전문 업체가 필요한데, CS토탈은 이 비즈니스를 맡고 있다. 이 회사는 석유개발에 필요한 장비는 물론, 전문 인력을 제공하고 이들의 숙소, 식사, 차량 제공과 월급의 세금계산까지 해준다고 하니 석유업계의 ‘원스톱 서비스 업체’라고 할 만하다.

    CS토탈은 2005년부터 쉘과 함께 사할린 제2석유개발지구에서 플랜트(원유생산설비)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거대한 플랫폼을 바다 한가운데 세우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2만t급의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인선박 두세 척이 플랫폼을 끌고 당기며 안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CS토탈은 지난해 150억원을 들여 1만3000마력의 시추 보조선을 구입했다.

    이 회사의 직원은 대부분 삼성, 현대, 대우 등 대기업 조선업체 출신이다. 이근택 CS토탈 사장은 석유 메이저들이 앞다퉈 바다 밑에 매장된 석유를 개발하고, 국내 조선 3사(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가 이 시장에 뛰어들자 사업의 기회를 발견했다. 석유개발에 관련된 전문 인력은 영국의 인력회사와 연계해 지원하고, 이들이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원활하게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벌인 것이다.

    인력지원 및 관리에서 비롯된 사업은 이제 석유 메이저들과 함께 유전개발에 참여해, 시추에서 석유수송까지 관여하는 수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근택 사장은 “내년 하반기부터 사할린 제3지구에서 석유를 개발하는 BP와 함께 일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게 되면 향후 30년간 일할 거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2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650억원을 예상한다.

    토지 사유화 바람 타고…

    사할린에 진출한 국내 업체 중 코리코 이앤씨의 성공사례는 눈길을 끈다. 이 회사는 유즈노 사할린스크에 ‘메가’라는 브랜드를 걸고 백화점, 건설자재 할인점, 호텔, 보안업체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할린 직원만 1000여 명에 달해, 4인 가족 기준으로 4000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코리코 이앤씨 신종철 사장은 7년 전 우연한 기회에 사할린을 방문했다. 지금은 사업 파트너가 됐지만, 당시 알고 지내던 고려인 부부를 만난 신 사장은 이 부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통적으로 사할린의 구멍가게는 도둑을 막느라 손님이 직접 물건을 고를 수 없게 돼 있다. 유리창 너머로 손님이 사고 싶은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상점 주인이 물건을 내주는 식이다.

    신 사장은 이를 오픈형 슈퍼마켓으로 개조해 운영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고려인 부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부터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7년 전 이 슈퍼마켓은 사할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오픈형 슈퍼마켓이었다.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상품마다 전자꼬리표를 붙였다. 계산하지 않고 나갈 경우, 경보가 울리게 한 것. 이 기술은 한국으로부터 들여왔다.

    사할린은 ‘제2의 두바이’

    CS토탈 이근택 사장(왼쪽)과 신종철 코리코 이앤씨 사장. 이 사장은 석유업계의 원스톱 서비스로, 신 사장은 현대화 된 유통업으로 사할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처음엔 고려인 부부마저 반대하는 등 주위의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이미 오픈형 상점 붐을 목격한 신 사장은 사할린에도 곧 변화가 시작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의 기대대로 슈퍼마켓은 사할린 주민에게 인기를 끌었다. 시내 곳곳에 오픈형 슈퍼마켓을 열었고, 큰돈은 아니지만 꼬박꼬박 현찰이 유입돼 비즈니스의 기반이 단단히 다져졌다.

    “북한인보다 고려인이 낫다”

    2001년부터 러시아는 물론 사할린까지 토지의 사유화 바람이 불었다. 신 사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할린 주요 지역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할린 법에 따라 50년 동안 임차하는 형식이지만, 개발의 붐을 탄다면 임차권마저 돈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 신 사장은 슈퍼마켓을 통해 번 돈을 백화점을 짓는 데 쏟아 부었다.

    그는 시내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상점이 없다는 데 착안, 그가 짓는 5층짜리 백화점에 에스컬레이터를 놓았다. 이 소식은 시내 곳곳에 퍼져 화제가 됐고,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지하 식당은 시내 대표적인 음식점으로 자리잡아 주민의 회식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또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건물을 준공하자, 여기저기서 백화점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구멍가게 주인에서 어엿한 백화점 주인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백화점을 짓는 과정에서 신 사장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인력난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백화점 건설 초기엔 기술력도 있고 말도 통하는 북한 인부들을 데려다 일을 시켰다. 러시아 이민국을 통해 북한 인부 120명을 수입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측에 수천만원을 수수료로 건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북한 인부들은 현장에 도착하자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불만만 털어놓았다. 사회주의권에서 일하는 방식이 신 사장 눈에 찰 리 없었다. 이들을 데리고 올 때 지급한 돈을 고스란히 손실로 처리하고, 인부들을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신 사장은 의사소통이 다소 어려워도 중국인과 고려인을 중심으로 인부를 모집해 일을 맡겼다. 이들은 북한 주민처럼 사회주의권에서 성장했지만 약속한 일은 완수했다. 수년 동안 일하면서 신뢰도 쌓여 지금은 신 사장의 얼굴만 봐도 어떤 지시를 하는지 알 정도가 됐다.

    백화점에 이어 건설자재와 인테리어 제품을 판매하는 할인점을 세울 때도 중국인 인부들의 팀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세운 건설자재 할인점은 사할린 주민의 필수 쇼핑 코스가 됐다. 러시아인은 스스로 집을 수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유통업을 운영하면서 신 사장이 맞닥뜨린 또 다른 문제점은 러시아인의 근무 태도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탓에 의욕을 갖고 일하는 직원을 찾기 힘들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옆에서 난리가 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았다. 일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유전개발업체 주머니를 노려라

    신 사장은 슈퍼마켓과 백화점, 그리고 건설자재 할인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한 대가를 인센티브 형태로 지급했다. 직원들이 스스로 개선의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바꾸도록 유도했다. 매달 실적이 뛰어난 우수사원과 고객에게 친절한 미소를 짓는 사원을 선정, 시상했다.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 회사 유니폼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신 사장은 “러시아 직원을 잘 관리하려면 사장이 직원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어느 나라든 겪어야 하지만 러시아에서 유독 심한 관료주의의 폐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일례로 정부로부터 사업 허가를 받는 데, 짧게는 6개월에서 1년씩 걸리기도 한다.

    호텔을 건설하기까지 고질적인 관료주의에 시달린 신 사장은 준공 허가를 받을 때는 다소 과격하다싶을 만큼 저돌적으로 공략했다. 준공 검사가 통과되기도 전, 정부 부처의 담당 공무원을 초청해 호텔을 구경시켜주고,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 따라가 승인 도장을 받는 식이었다. 이를 통해 6개월 남짓 걸릴 일을 36시간 만에 끝냈다. 그는 러시아의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비결을 이렇게 귀띔했다.

    “러시아의 고위 공무원에게 신임을 얻으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줘야 합니다. 예컨대 사할린 주지사의 경우 자신의 힘으로 도시를 발전시키고 싶을 겁니다. 내가 비록 백화점을 짓고, 호텔을 세웠지만 이 모든 것이 주지사 덕분에 가능했다는 쪽으로 소문이 나도록 했죠. 그렇게 하면 그의 목적도, 내 목적도 달성되는 것입니다.”

    신 사장은 슈퍼마켓과 백화점에서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현금을 밑천으로 객실 210여 개를 보유한 호텔을 최근에 완공했다. 처음부터 호텔 짓는 데 뛰어들었다면 2년 동안 그를 짓누른 자금압박에 손을 들고 말았을 것이다. 결국 사할린에서 보낸 지난 7년은 호텔을 짓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던 셈이다. 사할린 출장에 동행한 조상현 한국기술투자 기업투자부 과장은 “작은 수도꼭지(슈퍼마켓과 백화점에서 나오는 자금) 여러 개가 단단하게 받쳐줘 외부 투자자들이 일단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신 사장은 앞으로 골프장을 지어 종합레저타운을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할린 곳곳에는 일본인이 지은 호텔이나 상점 건물이 많다. 엑슨모빌이나 쉘 등이 사할린에 들어오기 전 일본 업체들은 일찌감치 이곳의 사업 가능성을 알아봤다. 그러나 운명이 엇갈린 탓인지, 사할린에 개발할 유전이 없다는 엉뚱한 판단을 내리고 일본인들은 대거 철수했다. 유전이 없는 사할린은 ‘속 없는 찐빵’이라고 여긴 것.

    일본인이 ‘버린’ 사할린의 북동쪽에서 다국적 석유회사 엑슨모빌이 거대한 유전을 개발하자 일본은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 때문에 쉘이 제2의 유전을 개발하자 일본 업체가 줄줄이 들어와 투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신 사장의 경쟁업체들은 일본 업체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레저타운을 건설하려는 신 사장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사할린에 들어온 한국 기업들은 거액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유전개발에 뛰어들기보다는 유전개발업체의 호주머니를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위험도는 낮추되 돈은 확실하게 벌겠다는 계산이다.

    이미 쉘로부터 8억달러짜리 원유생산설비 2기를 주문받은 삼성중공업은 지난 6월, 1차 설비를 납품했다. 삼성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사할린 유전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해양 플랫폼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륙 진출의 전진기지로

    리조트와 아파트 건설업체로 잘 알려진 풍림산업은 사할린 진출을 최초의 해외 진출 사례로 기록하고 있다. 2002년 유즈노 사할린스크에 석유 메이저 쉘의 본사 건물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때부터 사할린에 눈을 돌린 풍림은 2004년 엑슨모빌이 발주한 데카스트리 항만 오일 터미널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액은 2700억원에 달한다. 이 공사는 지난 여름 완공돼 엑슨모빌에서 뽑아낸 석유를 수출하는 항구로 자리잡았다.

    풍림의 기술력이 석유업계에 알려져 올 2월에는 쉘의 자회사 ‘사할린 에너지 인베스트먼트’에서 발주한 공사를 따냈다. ‘브수터 스테이션’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공사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압력을 높이는 공사다. 수백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파이프를 통해 가스를 보내다보면 중간 중간에 압력이 떨어져 가스를 밀어내지 못한다. 이 부분을 승압시켜 가스를 수출항까지 보내는 것이다. 이 공사비용은 1600억원에 달한다.

    사할린은 ‘제2의 두바이’

    <B>1</B> 시내 어디서나 노트북을 켜놓고 일하는 사할린 주민들이 눈에 띈다. <B>2</B> 삼성전자 노트북을 놓고 업무를 보는 할인점 매니저. <B>3</B> 추운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라 보드카를 사려는 손님들로 여직원의 손길이 바쁘다 .

    120명의 직원과 용역사원을 보내 수년 동안 사할린에서 공사하면서 겪은 어려움도 많았다. 처음 진출하다보니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박동우 해외사업부 이사는 “기온이 영하 30∼40℃까지 떨어지는 동절기엔 눈을 치우는 데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며 “겨울이 길어 공사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이사는 “사할린엔 무한한 지하자원이 있어 이를 이용한 사업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사할린을 풍림의 해외진출 전진기지로 삼겠다고 밝혔다. 사할린 섬의 성공을 바탕으로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다.

    대우건설은 2004년에 진출해 사할린 남부의 해안가에서 ‘LNG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할린 북부 유전에서 뽑아 올린 천연가스를 남부 해안가의 LNG 플랜트에서 액화시키는 시설을 짓고 있다. 사할린에서 만난 대우건설 엔지니어는 거대한 체구와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무척 탄탄해 보였다. 그는 “이번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나야 추후 개발하는 유전사업에도 대우건설이 참가할 수 있다”며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고 했다.

    대우건설도 사할린에 처음 진출한 탓에 예상치 못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규제 사항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 절차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할린 현장소장 서현우 상무는 “처음엔 차를 운전하다 경찰에 붙잡혀 하루 종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에선 ‘쁘찌보이리스트’라는 운행일지를 갖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털어놨다. 서 상무는 단순히 사업기회만 보지 말고 러시아 현지 법규와 문화적 특성에 대해 사전에 철저히 알아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처녀지’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제 막 개발의 붐을 타고 있는 곳이라면 갖가지 난관이 있게 마련이다. 투자에 따른 위험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해외진출을 조심스럽게 타진하던 한 중견 건설업체와 숱한 해외진출을 통해 산전수전 다 겪은 대형 건설업체가 사할린을 ‘찍었다’면, 거기엔 뭔가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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