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서초

뜨거운 개발 이슈 품고 ‘패권’ 탈환 시동

  • 봉준호부동산 컨설턴트 drbong@daksclub.co.kr

    입력2006-11-08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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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시대에 방배동, 서초동 고급 주택단지를 중심으로 ‘강남 부동산’을 이끌었으나 압구정동, 대치동 아파트촌을 앞세운 강남구에 패권을 넘겨준 서울 서초구. 그러나 이제 반포주공 재건축, 강남역 인근의 대규모 삼성타운·롯데타운 조성, 정보사령부 부지 이전 등 휘발성 높은 개발 이슈를 갈고닦으며 잃었던 권좌에 재등극할 기세다.
    서초
    1993년. 산꼭대기에 5층짜리 소형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16평형, 방 2개에 화장실 1개. P는 이 자취방 같은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진공관식 전축에 레코드판을 걸고 베토벤의 곡을 듣곤 했다. 한 잔, 두 잔…, 소주에 맥주를 타서 몇 잔의 ‘소맥’을 마셨다. 늘 웅장하다고 느껴지던 베토벤의 곡은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강남의 불빛만큼이나 화려하고도 슬펐다.

    10년 후인 2003년 6월. P의 집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 A는 새 직장을 얻어 고향인 대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왔다. 그는 이곳저곳 집을 알아보다가 서초동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얻게 됐다. 50평형 전세 4억원. 아름다운 중앙공원 언덕배기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A는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이 아파트가 예전 P의 ‘자취방’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장에서 고독이 뚝뚝 떨어지던 집, 빨간 불빛이 반짝이던 구형 진공관 전축, 10년 전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던 강남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A의 머릿속에 오버랩됐다.

    브랜드의 효시, 서초래미안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2번지. 16∼20평형 1080가구, 1976년식 서초극동아파트는 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1998년 말에 재건축을 시작했다. 제법 유명했던 ‘극동’ 대신 ‘서초래미안’이라는 새 간판을 내걸었다. 용적률 319%를 적용받아 최대 27층짜리까지 나오도록 빽빽하게 고층으로 지었더니 1129가구로 늘어났다.



    새 아파트는 수요가 가장 많다는 34·39·44·50평형으로 이뤄졌다. 이 중 34평형은 2000년 4월 서울시 3차 동시분양에서 17가구 분양에 4185명이 청약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4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신호를 울린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서초래미안’은 삼성건설이 종전의 삼성아파트 대신 ‘래미안’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새롭게 포장해 선보인 최초의 아파트였다.

    ‘1000가구, 1만5000평’은 건설사와 건축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구수와 평수이다. 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아 분양이 잘될 뿐 아니라 단독시공으로 자사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적정 크기의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기 때문. 2000년 초 삼성은 이곳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걸고 분양가 규제를 벗어나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꿈을 키웠다.

    서초래미안의 1층은 바로 밑 삼익아파트의 7층 높이에서 시작한다. 언덕 위의 급한 경사로는 노인들이 걸어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경비실에서는 차량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정문부터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려 눈을 녹이는 힘든 작업을 밤새 해야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해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오르내리기 불편해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도 지녔다.

    강남역이 가깝고 1만5000평의 넓은 땅 에 중대형 평수만 지어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구릉지여서 설계자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결국 아파트 단지는 기울기 차이를 고려해 3단으로 나뉘어 설계됐다. 아름다운 중앙광장과 상가, 분수대, 운동시설을 한데 모아 전 세대의 공유공간으로 삼으려던 당초 계획은 이렇듯 땅의 높낮이로 인해 틀어졌다. 아파트 동(棟)과 동 사이의 이격거리가 방해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동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의 로열층은 테헤란로의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특급 전망을 갖췄지만 남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의 로열층에선 삼익아파트의 낡은 옥상이 내려다보였다. 이런 경우 매수 희망자라면 어떤 아파트를 선택해야 할까. 입주 3년 후. 분양시점에 비슷하던 동향, 남향 아파트 가격은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2006년 10월 현재는 동향 50평형이 13억원, 남향 50평형이 16억원으로 3억원 차이가 난다. ‘전망’을 압도하는 ‘남향’의 경쟁력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평당 1억원 아파트

    서초

    1980년대 명품 주거단지로 손꼽히던 서초동 ‘롯데빌리지’. 80평형 이상으로만 이뤄진 ‘더 미켈란’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세계 최고급 아파트의 가격은 얼마쯤일까.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더없이 호화로운 아파트도 300평형이 300억원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의 대표 아파트는 평당 1억원을 향해 달려간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중과, 세무조사 등 각종 규제만 없었다면 상승 탄력은 계속 이어져 주요 지역 새 아파트들이 평당 1억원을 넘겼을지 모른다. 현실의 각종 규제가 서울 아파트 평당 최고가격을 7000만원선에 붙들어 매고 있지만, 모든 여건을 감안할 때 수년 내에 평당 1억원짜리 새 아파트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서초구는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표적인 재건축 지역이다. 2000년 들어 곳곳이 초고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5층 이하 저층 아파트의 개발수익률이 높아 보였다. ‘선수’들은 그중에서도 저밀도 단지라는 원천적 규제가 해소된 반포주공 1·2·3단지가 수혜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가운데 1973년식 반포주공 1단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도로변 상가조합원의 반대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야 대형 평수를 제외한 22평형 1500가구에 대해 재건축 협상이 시작돼 현재 진행 중이다. 상가조합원과 어렵게 합의하고 조합설립을 준비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상가와의 분쟁이 마무리되는 동안 정부는 임대아파트 의무비율, 기반시설부담금 및 개발부담금제 등 각종 규제를 만들어냈다.

    이보다 몇 년 앞서서 주민 동의를 이끌어낸 반포주공 2단지와 3단지는 개발 기대감으로 상당한 이익을 냈다. 2~3년 사이에 6억원짜리 아파트가 18억원이 됐다. 허물기 직전의 일부 2, 3단지 아파트들은 국내 최초로 평당가 1억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5년 봄, 동·호수 추첨이 끝나고 대형 평형 당첨이 확정된 이들 낡은 아파트가 16평형은 16억원, 18평형은 18억원을 넘어섰다.

    반포주공 3단지 16평형을 가지고 79·89·91평형을 신청한 사람들과 반포주공 2단지 18평형 소유자로서 72평형, 81평형대 아파트를 배정받은 수백명이 우선 큰 부자가 됐다. 이들로부터 이 아파트를 평당 1억원씩 주고 16억, 18억원에 산 사람만도 이미 1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8억에서 10억원의 추가부담금을 순차적으로 내고 2009년 상반기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결국 평당 3000만원 정도에 동·호수가 확정된 신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매입한 셈이다.

    그렇다면 2010년, 입주 1년쯤 지나면 이 아파트의 가격은 얼마 정도에 형성될까. 분양권을 산 사람들은 평당 5000만원까지는 순조롭게 가리라고 희망한다. 강남지역에 신규 공급물량이 끊긴 데다가 늘어나는 세금, 넓고 새로운 대형 아파트 단지 효과, 그리고 아파트 분양가의 연이은 고공행진을 감안한 추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의 계산대로 반포주공 3단지 91평형이 평당 5000만원, 즉 45억5000만원에 이를 경우 조합설립 당시의 원주민은 엄청난 재건축 투자 수익을 챙기게 된다. 조합원들은 과감하게 대형 평형을 선택해 1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평당 1억원에 분양권을 산 매입자들조차 대형 단지가 완성된 후에 누리게 될 갖가지 메리트에 부풀어 있다.

    간발의 차이로 온갖 재건축 규제를 피해가고 개발 이슈와 맞물려 아파트 투자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반포주공 2단지와 3단지에는 용적률 80%, 5층짜리 저밀도 아파트를 용적률 270%, 32층으로 풀어준 행정관청이 일등공신이며 은인이 아닐까.

    삼풍의 추억

    1995년 6월29일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훗날 서초구 부동산시장에도 타격을 주었다. 서초동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1990년대 국내 최고가 아파트였던 삼풍아파트는 바로 옆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삼풍백화점과 교대역, 법원단지를 끼고 고급주택단지를 형성한 삼풍아파트는 총 2390가구로 당시 최고의 건설회사인 현대건설과 우성건설이 공동시공했고, 1986년 분양해서 1988년 입주했다. 백화점은 우성건설이 시공하다가 삼풍건설산업에 넘겼다.

    숲을 연상시킬 만큼 나무가 울창한 단지 내 도로와 명문 학군, 고급 백화점, 34·50·62·64평형 등 중대형으로 구성된 대단지 효과가 한 시대의 최고가 아파트를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주민편의시설로 지어진 지상 5층, 지하 4층의 강남권 최고급 삼풍백화점은 소공동 롯데본점에 이어 백화점 매출액 전국 2위를 달렸다. 나날이 늘어나던 고객과 매출액은 무리한 증축과 불법개조, 형식적 준공검사와 허술한 안전점검이 빚은 엄청난 사고로 하룻밤에 과거의 무상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붕괴 사고 이후로 삼풍아파트는 하한가를 맴돌며 한동안 매수자가 없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삼풍은 예전의 랭킹을 회복하기 힘들었다. 사고의 아픈 기억 때문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최고급 상업시설이던 백화점이 다시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기 힘들다.

    사고 전 삼풍백화점은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처럼 고급 주거지에 위치해 부동산 가격상승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 백화점이 성장하면서 삼풍아파트 가격도 올라갔다. 2000년 10월, 옛 삼풍백화점 고객을 타깃으로 문을 연 신세계 강남점은 신세계백화점 전체 점포 중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서초·잠원·반포·양재·방배동은 물론, 과천에서도 구매력 있는 고급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면적 6870평의 삼풍백화점 터는 1년 반 동안 공지로 남아 있다가 1996년 11월, 서울시가 상업지역으로 공개매각해서 ㈜대상의 몫이 됐다. 대상은 외환위기 때문에 백화점과 금융센터를 지으려던 당초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고, 대림건설을 시공사로 택해 37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인 ‘아크로비스타’를 지었다. ‘최고급 조망’이란 뜻의 아크로비스타는 분양 당시부터 삼풍백화점 사고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애썼으나 결국 미분양 상태로 상당 기간을 보냈다.

    다행히 2003년 이후 불어닥친 주상복합 열풍으로 미분양 재고는 소진됐다. 언덕배기 위에 푹 꺼진 자리, 삼풍백화점 터라는 핸디캡을 만회하고자 대림산업은 구조공사에 신경을 썼다. 아크로비스타가 완공돼 입주할 당시에는 A·B·C동이 차별화되어 가격이 형성됐다. A·B동은 삼풍백화점 자리, C동은 옥외주차장 자리로 구별되어 C동이 훨씬 비쌌다.

    삼풍아파트 거주자에게 아크로비스타가 달갑지만은 않다.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생기면서 교대역에서 고속터미널로 이어지는 도로는 만성적인 교통체증 지역이 됐고, 앞을 가로막는 고층 아파트에 조망권을 빼앗기면서 일견 고갯마루 주택가에 숨어 있는 특색 없는 아파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삼풍아파트는 복도식 34평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준비했고, 이 때문에 시세는 상승세를 탔다.

    아크로비스타 입주 후 2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도 이제 희미해진 듯하다. 택시를 타고 “삼풍백화점 자리로 가자”고 하면 못 알아듣는 기사가 적지 않고, ‘삼풍백화점 자리였냐 아니냐’가 더는 시세를 결정짓는 기준이 아니다. 동(棟)이 아닌, 조망권에 따라 전세가와 매매가가 재편성되고 있다.

    삼성·롯데타운 조성

    지금 서울과 수도권의 중심은 강남역이다. 2000년 이후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강남 아파트값을 서너 배씩 끌어올렸고 그 여파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군데군데 공지가 많던 강남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특급지역으로 변모했다. 사람들은 강남역에서 약속을 하고 금융권의 PB센터도 강남역을 중심으로 몰려든다.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역까지 쭉 뻗은 강남대로는 강남구와 서초구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1988년까지 강남구에 속해 있던 서초구는 강남구의 급격한 팽창에 따라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분리됐다. 강남역은 강남구와 서초구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의 인구와 서쪽으로 서초동 정보사에 이르는 아파트 밀집지역 인구가 만나는 중심점이다.

    2010년이면 강남역에 특급전철 신분당선이 연결된다. 신분당선은 2010년에 강남역에서 분당 정자역까지 개통하고, 2015년에는 북쪽으로는 용산역까지, 남쪽으로는 수원 인근의 광교신도시까지 이어진다. 2020년이면 수원 도심을 통과해 호매실까지 연장될 계획이다.

    신분당선은 기존 지하철보다 역 수가 적고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철도노선이어서 제법 쓸모 있는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혜택지의 대표적인 곳이 강남역 주변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하철역이 강남역인데, 신분당선까지 개통하고 나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지하철역이자 번화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초

    서초동 정보사로 뻗은 도로. 2009년이면 정보사 부지를 통과하는 장재터널이 완공될 예정이다.

    1999년 6월, 강남역 인근에서 최초로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을 넘어선 아파트가 나왔다. ‘서초가든스위트.’ 당시 비싸야 6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격을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1000만원대로 올려놓은 최초의 프리미엄 아파트였다. 삼성건설이 강남역 삼성전자 직원아파트 부지에 72∼107평으로 이뤄진 서초가든스위트를 신축하자 언론매체들은 한동안 이 ‘사건’을 떠들썩하게 다뤘다.

    “21억원? 금을 발라놨나?”

    1999년 6월2일, 이 아파트의 최고층 펜트하우스인 2301호, 107평형 가격을 빗댄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일반분양 최초로 100평을 넘기고, 파인애플 조각 모양의 평면을 갖춘 펜트하우스의 평당 분양가는 1970만원. 서초동에서 삼성이 만들어낸 신기록 중 하나이다.

    서초구의 발전을 장담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 삼성타운 조성공사이다. 삼성은 이미 선정해둔 강남역 땅 7500평에 2008년 말 완공을 목표로 초대형 빌딩 3개를 짓고 있다. 32·34·44층 높이의 고층빌딩 3개동은 총 연면적이 11만9500평에 달하고 국내 최고기업 본사 이전이라는 초강력 이슈로 주변 아파트 값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진흥아파트는 오직 삼성타운에 대한 기대만으로 2006년 상반기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한 아파트가 됐다.

    서초동은 롯데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지역이다. 롯데는 1980년대 최고의 주택이던 단독형 빌라 롯데빌리지로 주택업계에서 명성을 얻었고, 교대 인근에 지은 프리미엄 아파트 ‘롯데캐슬84’로 아파트 브랜드 시대를 선도했다. 롯데는 서초동에 몰려 있던 연립단지를 차례로 재건축해 고급 주택단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롯데캐슬 파크·포레스트·스파·리버티 등 나열형으로 나가는 아파트 이름은 조금 어렵지만 새롭고도 재미있다.

    롯데가 시공한 롯데캐슬 클래식은 강남역 개발계획과 교보타워, 지하철 9호선 개통에 대한 기대감과 맞물려 성공한 재건축단지다. 또 롯데건설 본사가 잠원동 설악상가에 위치한 이점을 기반으로 설악아파트 재건축과 잠원동 최대 단지 한신2차 재건축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강남역이 뜨면서 최고의 입지라는 서초동 주거지역, 롯데칠성 부지 1만200평에 쏠리는 이목 또한 뜨겁다. 롯데는 당연히 이곳에 강남권을 타깃으로 한 최고급 백화점을 지으려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단계까지 가려면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한 상업지역으로 용도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교통영향평가 등 인·허가 과정도 녹록지 않아 지금도 행정관청과의 협상이 진행 중인 초고층 잠실롯데타워의 경우와 비슷한 진통을 겪어야 할 것 같다.

    국내 최고가 공동주택

    정보사에서 서울고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 서초동 세무사회관 뒤 서리풀공원자락 2500평 녹색 언덕 위에 국내 최고가 공동주택인 트라움하우스가 있다. 230평형 펜트하우스로 호가는 120억원가량이다. 이 연립주택 한 채의 보유세는 올해 5000만원이 부과되고, 2009년 예상 보유세는 1억5000만원이다.

    같은 시각, 세상은 분양원가 공개로 시끄럽다.

    “도대체 얼마나 남기기에 새 아파트가 이렇게 비싼가?”

    “왜 분양가는 매번 올라가는가?”

    “정부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3억원짜리 아파트를 팔면서 건설사와 정부, 서민이 논쟁하는 주제들이다. ‘고분양가’는 건설사와 분양업체가 주택을 팔 때마다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1998년, 아파트 분양가는 분명 자율화됐지만 수년간 진행된 ‘부동산가격 급등’과 ‘분양가 폭리’라는 사회적 이슈 앞에 분양주택들은 간접 규제를 받고 있다. 분양승인을 받으려면 분양가 결정과정에 지방자치단체와 승강이를 해야 하고, 그 사이 서민들은 볼멘소리를 쏟아낸다. 고분양가는 예외 없이 주변 집값을 올리고, 올라간 집값은 다시 새 아파트의 분양가를 올린다. 결국 분양가 자율화는 원가연동제와 채권입찰제의 부활을 거쳐 다시 ‘표준건축비+땅값’이라는 ‘분양가 규제시대’로 가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는 19가구 이하의 주택, 다시 말해 ‘빌라’의 전성시대가 올 수도 있다.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아파트 가격을 잡고 있던 1997년까지 돈 있는 사람들은 고급 빌라와 단독주택에 살았다. 당시엔 아파트보다 훨씬 더 좋은 집이 빌라였기 때문이다. 19가구 이하의 연립주택은 고급 빌라라는 이름으로 분양가 규제를 안 받고 소리 소문 없이 비싸게 잘 팔렸다. 빌라업자들은 돈을 벌었고 수요자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수입재로 치장된 내부시설에 만족했다. 적은 가구수의 명품주택들은 아파트처럼 대중화된 주택이 아니어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갈 수 있었고 은밀히 거래됐기에 사람들이 알지도 못했다.

    최근 들어 강남에 우후죽순으로 몇십억원을 호가하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등장하고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가 공개되면서 최고가 공동주택들의 랭킹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매년 4월경 공시가격이 발표되면 D주택 서초동 사무실엔 기자들의 취재요청 전화가 엄청나게 걸려온다. 늘상 국내 최고가 공동주택은 D주택이 시공한 서초3동 트라움하우스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트라움 3차 180평이 30억원에 가까운 공시가격으로 아파트 부문 1위를, 2006년에는 트라움하우스 5차 230평형이 연립주택으로 공동주택 1위를 차지했다. 공시가격은 40억원. 시세는 공시가격의 2∼3배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주택법상 아파트는 5층 이상의 공동주택을 뜻하고 연립주택은 4층 이하의 공동주택을 의미한다. 트라움 3차는 1개동 5층 이상으로 아파트에 속하며, 트라움 5차는 A·B·C 3개동으로 구성된 4층 이하로 연립주택에 속한다.

    트라움하우스는 연이어 공시가격 최고가 주택으로 발표되면서 세상에 알려져 관심거리가 됐지만, 수년 전부터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은 은밀히 귀족형 고급주택을 샀다. D주택은 1차, 2차, 3차, 5차의 트라움하우스를 성공리에 분양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상류층은 왜 이렇게 값비싼 19가구 이하 빌라를 선호할까.

    “비싼 값어치를 한다”

    첫째는 말 그대로 가구수에 비해 돈 많은 사람이 많은 까닭이다. 아무리 비싸도 그에 상응하는 수요가 있기에 팔리는 것이다. 상류층은 투자가치보다 주거가치, 사용가치를 우선해 매력적인 집을 산다. 트라움 5차 230평형 소유자는 올 연말까지 보유세로만 5000만원을 내야 하고, 매달 수백만원의 관리비를 내고, 또 한번 사면 잘 팔리지 않는 집인데도 개의치 않는다.

    둘째는 상품가치가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유층이라도 사려는 주택의 질이 판매가격만큼의 값어치에 못 미치면 구매하지 않는다. 견본주택을 보고 나서 집을 사는 사람들은 이 정도는 줘도 괜찮겠다는 특별한 안목으로 가격을 인정하고 거래를 만들어낸다.

    서리풀공원에 둘러싸인 데다, 대형 아파트 5배의 평수에 넓은 방도 8개에 달하고 화장실 4개, 가구당 주차대수 6대, 천장고 3~4m, 수십평의 개인 테라스, 수입자재, 초대형 드레스룸, 산이 바라다보이는 조망권, 카드키를 대야 자기집 층으로 올라가는 특수한 엘리베이터, 최고급 조경, 숲 속의 옥외수영장, 웅장한 로비, 성곽 같은 석조 외벽 등 아파트가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하고 명품스러운 요소들을 고루 갖췄다.

    시행사 겸 시공사인 D주택은 서초동 교대 앞에서 1994년 트라움하우스 1차 90평형 4층 고급빌라 16가구를 시작으로 1996년엔 서리풀공원 옆에 2차 90평형 12층 19가구를 분양했다. 2002년에는 3차 19가구를 163평형, 185평형 1동짜리로 지어서 분양했고, 2004년에는 바로 옆에 5차 18가구를 171평에서 230평형으로 지어서 분양했다. 매차 분양가는 거의 2배로 올랐으며 그 가격은 부유층에 순조롭게 먹혀들었다.

    트라움하우스에서 나와 우회전해서 서울고 방향으로 5분쯤 내려가면 롯데빌리지를 재건축한 ‘더 미켈란’이 나온다. 80~99평형 67가구의 빌라형 아파트 더 미켈란은 2003년 서울 5차 동시분양에서 분양가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99평형 분양가는 평당 3125만원으로 총액 30억9386만원이다. 이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내 동시분양사상 최고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지하 1층, 지상 14층 규모의 한 동짜리 고급 아파트로, 1층은 전층을 로비로 처리했고, 총 67가구를 V자로 배치해 모든 가구가 조망권을 확보하게 했으며 실내는 가구별로 다르게 장식했다. 가구당 4대의 주차공간을 마련했으며, 보안장치 또한 완벽에 가깝게 다듬었다. 당시엔 그다지 이름이 나 있지 않던 개발회사 ‘도시와 사람’이 수주했고, 대교D·S가 시공했다. 총 67가구의 중급 빌라단지 규모로, 36가구는 기존 조합원인 롯데빌리지 원주민에게 제공하고 31가구를 일반분양했다. 20가구 이상 일반분양 물량인데도 최고 분양가 책정이 가능했던 데는 16만평의 서리풀공원에 둘러싸인 최고가 빌라단지에 위치했을 뿐 아니라 트라움하우스와 근접해 있으며, 원조 고급 빌라로 알려진 롯데빌리지의 재건축 물량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장재터널 착공, 정보사 이전

    10여 년 전 방배동 임광아파트 22평형은 내가 한눈에 반한, 몇 안 되는 아파트 중 하나였다. 1988년식으로 방 2개, 거실 1개 화장실 1개의 소형 아파트는 네모 반듯하게 생긴 데다 진출입이 편리한 4면 도로를 끼고 있었다. 외관과 단지 내 도로, 녹지와 주차시설이 모두 수준급이었다.

    요즘 이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린다. 시세는 22평이 3억7000만원, 전세가는 1억4000만원이다. 이는 장재터널 착공 소식이 발표되고, 이사 수요가 맞물리면서 한동안 부동산 투자자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방배동이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깊다. 임광아파트뿐 아니라 인근 내방역 쪽 주택가에서도 매수 문의가 생겨났고, 방배동 다른 아파트 가격도 평형별로 최소 수천만원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서초의 발전을 가로막은 방해꾼이면서, 지금 가치로 볼 때 가장 알짜배기 부동산인 곳이 바로 정보사 부지다. 삼성역에서 서초역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시원하게 뻗은 8차선 도로가 강남역을 지나면서 속도를 줄이게 만든다. 테헤란로가 서초로로 바뀌면서 8차선이 4차선으로 줄고 도로면에 늘어선 대형 빌딩들은 중소형 빌딩으로 바뀐다. 이어서 서초역 대법원 앞으로 바리케이트를 친 군부대가 나오고 넓은 도로는 끝이 난다.

    서울시는 정보사 부지를 통과해 서초역과 내방역을 잇는 장재터널 공사를 2006년 11월부터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말 장재터널이 완공되면 정보사에 막혀 있던 서초동과 방배동이 이어지게 된다. 더욱이 서초로의 확장계획도 동시에 나와 테헤란로가 서진하고 강남 서쪽 주거지역이 발전할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서리풀공원과 정보사에 의해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서초구의 대표 주거지역 서초동과 방배동이 공동생활권이 되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이는 장재터널 앞 ‘GS황실자이’ 등을 시작으로 내방·방배·이수역 인근에 저평가된 아파트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서초
    봉준호

    1962년 출생

    홍익대 건축학과 및 동 대학 건축도시대학원 졸업(건축사), 동 대학 국제경영대학원 졸업

    현대건설 근무, 네이버·조인스랜드·머니투데이 재테크 칼럼니스트

    現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 부동산컨설팅사 닥스플랜 대표

    저서 : ‘월세 단칸방에서 삼성동 아이파크로’ ‘닥터봉의 부동산 쇼’ 등


    장재터널 개통으로 내방역 근처의 주택과 아파트에서 강남 주요 지점까지 출퇴근시 최소 10분 이상 단축될 것이라 한다. 법원을 포함한 서초동의 각종 시설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서초동도 강남권의 끝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송파·강남·서초·방배동과 사당동까지 ‘광역 강남’으로 발전하는 큰 축의 중심권역이 될 수 있다.

    서초동은 2004년 1월 우면산터널 개통으로 과천과도 15분이면 오가는 거리가 됐다. 개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과천 고객’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유력 고객층이 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터널 한 개의 의미는 여간 크지 않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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