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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 인문학 교수들의 ‘밥벌이 위기’일 뿐”

박정신 교수의 칼날 비판

  • 박정신 숭실대 교수·기독교사학

“인문학 위기? 인문학 교수들의 ‘밥벌이 위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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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 인류역사와 함께해온 인문학은 위기를 모르는 학문이다. 위기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 위기를 겁내지도 않는다.
“인문학 위기? 인문학 교수들의 ‘밥벌이 위기’일 뿐”
요즈음 우리 사회는 ‘변화’라는 말이 지배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뒤처진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변화를 추구하긴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모두가 변화를 말한 때는 드물다. 특히 199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우리는 얼마간의 위기감에 휩싸인다. 기업도 변화라는 말과 함께 위기를 이야기한다.

대학도 덩달아 춤을 춰왔다. 상당수 대학이 ‘세계화’나 ‘국제화’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대학은 너나없이 모두 영어교육을 구호로 내걸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국제화, 특성화 바람이 분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 특성화에 성공한 대학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학은 고시, 취업 준비생의 공부방으로 전락했다.

요즘 대학에선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공계는 위기’라고 한다. “기초학문을 비롯한 여러 이공계 분야가 죽게 됐다. 이공계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야단이다.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학은 말로만 위기라고 하지, 그 위기를 해소할 방법은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인문학의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이 ‘인문주간’을 정해 행사를 벌이고, 모 대학 인문대 교수들은 집단적으로 위기라고 말했다. 급기야 전국의 인문대학장들이 모여 엄숙한 표정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했다. 인문학에 몸담고 있는 필자가 이 위기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멀리서나마 마음을 함께하려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의 ‘집단적 위기 선언’에 자괴심을 갖게 됐다. 아니, 분노했다. 이들은 성스러운 인문학을 위한다며 비(非)인문학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문학자들의 非인문학적 행보



이들이 말하는 위기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들의 위기’다. 오랜 인류역사와 함께해온 인문학은 위기를 모르는 학문이다. 위기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 위기를 겁내지도 않는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삶을 문학적·역사적·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그야말로 모든 학문의 ‘지하수’이자 기초학문이다. 삶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죽음을 온몸으로 안기도 하고, 자연을 노래하는가 하면 우주의 신비를 상상하기도 한다. 어제의 지혜를 찾아 순례의 길을 가는가 하면 이제와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농업혁명이라는 신석기 시대의 거대한 역사변동을 거치면서 잉태되어 과학혁명, 산업혁명, 근대국민국가 등장, 제국주의 팽창이라는 인류사적 변화와 위기를 돌파하며 그 폭을 더욱 넓히고 그 깊이를 더욱 심오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을 성찰하며 앞날을 준비하는 학문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오늘도 이 땅의 수많은 인문학자가 비록 가난하지만 이러한 인문정신과 자부심으로 신자유주의의 풍랑과 맞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 번민하고 고뇌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인문학 위기 선언’에는 인문학적 담론(談論)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번뇌나 고뇌 대신에 인문학 안팎에서 삶을 꾸리는 이른바 인문학자들의 세속적 관심만을 담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로서 인문학, 밥벌이로서 인문학, 권력에 기대는 인문학을 추구하고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참으로 참담하다.

‘인문학 위기 선언’에 동참한 이들은 권력을 향해 자신을 지원해달라고 애걸했다. 이들은 자못 엄숙하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선언에 자기 성찰적 정신은 없었다. 단지 모든 것이 인문학을 위협하는 외부 환경 탓이고, 모든 것이 인문학에 무관심한 권력 탓이며, 모든 것이 인문학을 경시하는 사회 탓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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