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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손녀 김미 & 안중근 조카손녀 안기수

“백범家·안중근家는 적으로 만나 사돈이자 동지 됐죠”

  • 이남희 동아일보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김구 손녀 김미 & 안중근 조카손녀 안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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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손녀 김미 & 안중근 조카손녀 안기수

백범 김구 선생이 1939년 중국 충칭에서 장남 인(왼쪽), 차남 신(오른쪽)과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 안기수씨가 김신 회장에게 기증하면서 최초로 공개됐다.

▼ 이번에 공개된 김구 선생의 가족사진은 두 분 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안기수 : “저희 할머니께서 그 사진을 간직해오셨어요. 누구보다 김신 회장께 소중할 것 같아 사진을 기증하게 됐습니다.”

김미 : “아버지(김신)께서 삼부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늘 아쉬워하셨는데 사진을 보시고 정말 기뻐하셨어요. 사진을 촬영한 시기는 아버지께서 고등학생이던 1939년인데, 처음엔 그런 사진을 찍었는지도 모르셨나봐요. 사진을 보시더니 ‘형님(김인)이 키도 크고 잘생기셨다’며 그때 기억을 떠올리셨어요. 할아버지(백범)께선 독립운동을 하시느라 가족과 함께 지내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처음 뵌 것이 열일곱 살 때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저녁 때 집에 잠시 들르셨다는데, 당시 아버지께선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고 체격도 큰 할아버지를 보며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하셨대요(웃음).”

▼ 백범 가문과 안 의사 가문은 언제 처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김미 : “‘백범일지’에 조부와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와의 첫 만남이 등장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19세였던 할아버지는 농민군의 접주였고, 안태훈 진사는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갑오의려의 대장이었죠. 두 사람은 비록 적대적 위치에 있었지만, 상대방의 인품을 높이 사 서로 배려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동학농민군으로 관군과 싸우고 계실 때 안 진사가 할아버지께 밀사를 보내 ‘군이 나이는 어리지만 대단한 인품을 지닌 것을 사랑하여 토벌하지 않겠다. 군이 무모하게 싸우다 죽으면 인재가 아깝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자신을 반대하던 일부 농민군 세력의 습격을 받았을 때 안태훈 진사에게 몸을 의탁했고, 그때 안중근 의사를 처음 만나셨지요.”



미국으로 떠난 안 의사 조카

백범과 안 의사는 활동 반경이 달랐기에 두 사람이 함께 독립운동을 도모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멀리서나마 서로의 행보를 전해듣고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당시 국내에서 교육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백범은 안 의사 가문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돼 황해도 해주의 유치장에 한 달 동안 갇혔다가 하얼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밝혀져 불구속 기소로 풀려났다.

백범은 이후 안 의사의 유가족을 각별하게 챙겼다. 안 의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1937년 일본군의 공세로 중국 상하이가 위태로울 때 백범이 안중근 의사의 부인을 구출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음을 ‘백범일지’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안심하고 홍콩으로 갔는데, 특히 안정근 안공근 두 사람에게 부탁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란 그들의 형수인 안 의사 부인을 상해에서 모셔내어 왜놈의 점령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중략) 홍콩에서 마침 비밀공작으로 상해로 파견돼 있던 유서(柳絮)와 같이 안군 형제와 회의하면서 나는 형수를 상해의 적 치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으나 그들은 난색을 보였다. 나는 이치를 따지며 꾸짖었다. “양반의 집에 화재가 나면 사당부터 옮겨 내는 것처럼 우리는 혁명가로서 의사 부인을 적 치하에서 구출하는 것 이상의 급선무는 없다”고 했지만, 그러나 실은 그때는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범학술원 간행 ‘백범일지’ 380쪽)


1919년 중국 상하이에 통합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두 가문은 다시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안 의사의 친동생 안정근과 안공근이 형의 유지에 따라 독립투사가 되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정근의 차녀 안미생이 백범의 장남 김인과 혼인함으로써 두 가문은 사돈관계로 발전했다. 그 후 김인은 일본군이 점령한 상하이에서 마지막까지 활동하다가 홍콩을 통해 충칭으로 갔다고 한다.

▼ 안미생 여사와 김인 선생은 어떻게 만나 결혼에 이르렀습니까.

김미 : “두 분이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연애결혼을 하신 걸로 압니다. 할아버지께서 큰어머니(안미생)를 특히 아끼셨대요. ‘훌륭한 집안의 자제이니 물어볼 것도 없다’며 흔쾌히 며느리로 맞으셨답니다. 그 시절 여성이 독립운동 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큰어머니께서는 할아버지 비서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큰아버지께서 28세의 나이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가족이라고 해서 따로 챙길 여건이 못 됐기 때문에 큰아버지는 약 한 첩 제대로 못 써보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걸 두고두고 가슴 아파하셨고 큰어머니에게 더없이 미안해하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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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동아일보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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