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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④

“내가 아는 로맨틱은 죄다 새가슴 뿐. 호탕한 주색잡기는 낭만 아니다!”

  •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내가 아는 로맨틱은 죄다 새가슴 뿐. 호탕한 주색잡기는 낭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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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과 장미의 나날’이든, ‘눈물과 콧물의 나날’이든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저 나름의 멋과 향취가 있다. 그들은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기쁨을 느끼며 산다. 줄라이홀 주인장이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한 터키커피를 만들며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무엇인지 풀어놓았다.
“어이, 요즘 조오시가 어떠슈?”

신문사 문화부장 자리에서 놓여나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친구의 전화다. 작업실 근처 여의도를 지나고 있다며 놀러 오고 싶은 눈치다.

“어, 나야 늘 잘 안 서고 있지 뭐.”

“우헷헷헷헷”

뒤집힐 듯이 웃어대는 소리가 요란하게 휴대전화를 때린다. 그게 아니구 말요 어쩌구저쩌구, 녀석이 왁자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조오시’란 ‘일이 되어가는 형세’를 뜻하는 왜(倭)말이지 짧게 발음되는, 남자의 중심을 말한 게 아니라는.



의도된 오해가 박자를 맞추지 못한 경우다. ‘조오시’의 뜻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는 걸 전제로 한 겹 꽈서 언제나 빌빌한 내 ‘중심의 형세’를 설명해준 것인데 농담도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오, 조오시가 그런 뜻이었나? 그럼 조오시도 안 서고 조시도 안 선다네.”

‘조오시’같은 의사불통의 말놀이를 밥 먹듯이 재미로 즐길뿐더러 아예 직업적으로 끌고 가는 족속도 있다. 작품 속에 ‘조오시’ 갖고 잘 노는 작가로 은희경, 성석제를 들 수 있고, 일상에서의 왕 조오시는 소설가 김영현이다(인생이 권태로운 사람은 김영현과 1박2일 놀아봐야 한다). 도대체 어떤 얼굴이 표면인지 이면인지,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애매모‘흐’하고 ‘아리까리한’ 그들에게 생은 장난감이다. 서유석은 조오시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숴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오, 아름다운 사람아!’ 이 노랫말의 오리지널이 헤르만 헤세의 시인데 원조에서 핵심은 이 대목인 듯하다.
“내가 아는 로맨틱은 죄다 새가슴 뿐. 호탕한 주색잡기는 낭만 아니다!”

줄라이홀 내부의 LP 판꽂이.

‘내가 준 마음을 너는 작은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그것이 괴로워하는 것은 보지 못하네.’

철없는 조오시. 저 잘난 맛에 독립감으로 빛나는 조오시. 장난하는 조오시들을 향해 진지하고 성실한 규범의 생(生)은 눈을 부라리며 외친다.

“지금 장난하냐?”

문제적 인간, 에니어그램 4번 유형

인간을 감히 네 종류로 나누는 분류법이 있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누는 사상의학, B형 남자친구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혈액형 성격 분류 따위. 그나마 조금 더 미분해서 아홉 종류씩이나 카테고리를 나누는 에니어그램도 있다. 내게는 그것들이 미아리 점집의 사주관상 운명철학과 다를 바 없이 여겨지건만 정교한 말로 치장하면 제법 그럴싸해진다. 에니어그램에서 규정하는 아홉 종류의 인간유형 가운데 타입 4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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