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업이 나라를 살린다’<br>에몬 핑글턴 지음/ 안춘식 옮김/ 지식여행/ 326쪽/ 1만2500원
“자본주의는 하나도 바뀐 게 없어.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기본은. 미국이 잘못한 것은 금융주의랄까. 정확히 말하면 디리버티브(derivertives·파생금융상품)가 실패한 것이겠지. 돈을 움직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본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집을 만들게 하고, 빌려준 돈을 증권화해서 반복해서 팔고 팔아 돈을 번다는 것. 아메리카 식으론 이것도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보통 우리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것이지. 본래의 자본주의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아직 멀었어. 돈으로 석유를 사고, 옥수수를 사고, 밀가루를 사고. 여전히 돈을 움직여 돈을 벌려고 하는 버릇은 고쳐지질 않았어.”(조선일보, 2008.10.11)
야마다 사장이 ‘머니게임’을 비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땀을 흘리지 않으니까.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에몬 핑글턴 ‘제조업이 나라를 살린다(In Praise of Hard Indu- stries)’. 한국어 초판 발행일이 2000년 10월. 원서 출간은 1999년이다. 벌써 10년 전 책이다.
경제 칼럼니스트인 에몬 핑글턴이 이 책을 쓸 즈음 미국은 ‘탈공업화’의 장밋빛 미래에 환호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기업은 눈부신 성공을 거듭했다. 1998년 하반기 MS의 주식 평가액은 3254억달러로 인도 국민총생산에 필적하는 규모였다. 미국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린이들이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빌 게이츠는 알고 있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간 미국 소프트웨어산업은 연 12.5%라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같은 시기 미국 경제성장률의 2.5배에 해당한다. 또한 이 무렵 소프트웨어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연봉은 5만7300달러. 이는 당시 미국 노동자 평균연봉 2만7900달러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매스컴들도 일제히 세계를 번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제조업이 아니라 컴퓨터·소프트웨어나 오락·금융과 같은 정보산업이라고 예찬했다. 이처럼 가시적인 성과에도 핑글턴은 탈공업화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1. 고용 밸런스가 나쁘다 2. 소득 신장이 둔하다 3. 수출경쟁력이 약하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다시 MS사의 예로 돌아가보자. 정보산업을 주도하는 MS의 성공모델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회사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컴퓨터 OS의 표준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핑글턴은 1980년대까지 이 분야를 주도한 것이 IBM이라면 업계의 주도권을 인수받은 MS는 ‘지폐를 인쇄할 권리’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다른 소프트웨어사들은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또한 1997년 당시 MS의 미국 내 종업원 수는 1만5000명. 포드사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에서의 공헌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더욱이 소프트웨어산업은 대표적인 두뇌집약형 산업으로 최고 인재만을 필요로 한다. 경제 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미국 전 노동인구의 20%가 사실상 고용을 잃게 된다는 전망도 있다.
탈공업화의 물결 그 이후
이처럼 탈공업화의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희생되더라도 대신 국민소득은 상승한다는 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통계는 정확히 반대 결과를 보여준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16년간 OECD 가입 26개국의 국민소득 신장률을 비교하면 한국, 일본, 독일, 스페인, 아일랜드처럼 제조업을 강화해온 국가들이 예외 없이 미국(국민소득 신장률 134%, 13위)을 앞섰다. 반대로 미국과 같이 열심히 탈공업화를 진행시킨 나라들, 대표적으로 영국은 같은 기간 국민소득 신장률이 106%로26개국 중 21번째였고, 비슷한 처지의 캐나다는 81%로 만년 최하위인 멕시코에 이어 밑에서 둘째 성적을 기록했다.
탈공업화의 셋째 함정은 무역수지 악화다. 여기서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 MS사를 예로 든다. 이 회사는 1996년 총 매상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올렸지만 수출실적은 총 매상의 25%에 불과했다. 이 말은 해외 매상의 반 이상은 수출이 아니라 해외 자회사에서 나온 것으로, 대부분 그 지역에서 소비되며 실제 미국으로 유입되는 액수가 매우 작음을 의미한다. MS 총 종업원 수의 32%는 해외 자회사에서 근무한다. 즉, 미국 내 고용창출이나 무역수지 공헌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