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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0년 특별연재/책으로 본 한국 현대인물사⑥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 윤무한│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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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징역살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신영복의 화두가 늘 사람과 사랑이라고 보았다. 현대인에게 사람과 사랑이란 진부한 주제일지 모르며, 현실 변혁에만 오로지 몰두하고 있는 이른바 변혁주의자들에게는 공허한 종교적 메시지로 들릴 수도 있다. 사람을 통해서 사회를 보지 않고 사회를 통해서 사람을 읽으려는 변혁적 시각에 대해 신영복은 ‘한겨레신문’ 1991년 12월20일자 정운영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의 모순구조 속에 이해와 애정으로 연대된 지식이라야 객관적 지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갖는 것이며, 그러한 지식인이라야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신영복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사람은 출발점이고 종착점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회이고, 사회가 나아가는 모습이 역사입니다. 어떠한 제도나 이데올로기도, 또 그것을 이루어내는 역사도 최종적으로는 훌륭한 사람들의 훌륭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사람과의 사업이 곧 사회적 실천이고, 사람과의 사업 작풍이 곧 대중성입니다.”



오랜 감옥생활을 통해 신영복은 사람을 통해 사회를 읽는 독법을 체득했다. 사실 우리가 그 어떤 진보를 이룬다한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나 애정과 무연하거나 오히려 해치는 것이라면 과연 무엇을 위한 진보인가.

1985년 8월28일 계수씨에게 보내는 편지 ‘여름 징역살이’에서 신영복은 낮고도 비천한 곳에서 사람을 거울로 삼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숙성된 시련은 아름답다

이 편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사람과 사랑에 대해 가을의 차가운 물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주고 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욱이 그 미움의 대상이 자신의 고의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때때로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해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다.

이 편지는 평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인간의 일그러진 본능과 그 그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교도소 바깥 사회에서는 어떤가. 과연 우리는 증오의 원인과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사회적 차원의 증오를 끌어들여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합리화하지는 않았는가. 사랑마저 그런 셈법에 익숙해 있는 것이 아닐까.

숙성된 시련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고 고은은 평가했다.

“모진 시련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그것은 인간을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신 교수는 지난날 긴 시간의 시련을 통해서 그 자신을 어떤 증오나 착각에 파묻히게 하는 교조적 황폐화 대신 그 자신을 간단없이 단련하였습니다. 그 정신으로서의 절도는 가히 수행의 그것이었고, 고금을 오고 간 지식의 오랜 섭렵은 기도와도 방불하였습니다.”(신영복, ‘더불어숲’, 1998년, 중앙M&B)

아슬아슬한 임사 체험

한국인에게 지난 세월은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의 궤적이었다. 사색이니 성찰이니 하는 말이 사치스럽게 여겨졌을 정도로 속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 시절에 1968년부터 1988년까지를 귀양살이한 사람이 신영복이다. 그가 감옥이란 삶의 캄캄한 막장에서 빛나는 사색의 광물을 연금해내기까지의 전사(前史)는 어떠했는가.

신영복은 1941년 경남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밀양이지만 출생지는 의령이었다. 아버지가 교사가 한 명뿐인 간이학교의 교장으로 의령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는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1959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했으며, 입학한지 꼭 1년 만에 4·19를 겪었다. 그로부터 5·16까지 1년여 짧은 기간을 통해 그는 ‘푸른 하늘’을 보았다. 그 감동은 그를 지금까지 지탱해준 원동력이었다. 비록 독일어 원서를 교재로 했지만 ‘자본론’ 강독이 정식 과목으로 개설됐고, 학생들은 ‘공산당선언’ 같은 문건을 번역해서 세미나를 열 수 있을 만큼 자유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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