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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①

자객열전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자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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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 하나로 땅을 되찾다

일단 살고보자는 심정으로 환공은 빼앗은 노나라의 땅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조말은 비수를 멀리 내던지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장군의 모습이 이러했다.

“북쪽을 향해 신하들의 자리에 앉았는데, 얼굴빛에 변함이 없었고 말소리도 조금 전과 다름이 없었다.”

허허, 기가 막힌 일이다. 조말의 간덩이가 과연 부었구나, 내가 비록 너의 비수에 잠시 위기를 맞았으나 모면했으니 이제 요놈 맛 좀 봐라, 칼 한 자루 가지고 나를 위협하다니, 뭐 이런 심정으로 환공은 화를 내면서 약속을 내던지려 했다.

그때 관중이 나서서 군주의 체통을 지킬 것을 부탁한다. 사나이가 한번 뱉은 말은 절대 돌리는 게 아니다. 그럼 당신은 천하의 인심을 잃게 된다. 소탐대실하지 말고 약속 지키라고 한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양국이 화친하는 자리이니 신하와 군주가 모두 모인 자리다. 이들의 입을 모두 막을 수도 없었다. 결국 갑작스럽게 상황이 종료되고 곰곰이 생각한 환공은 결국 사나이답게, 천하의 군주답게 노나라 땅을 돌려주고 돌아간다.



이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이 정도 의리가 지켜지는 사회는 공자가 그리워한 저 요순의 시절과 무엇이 다르랴. 지금 전세계를 향해, 전 국민을 향해 국가 정상들끼리 한 약속도 돈 때문에 하루아침에 날려버린다. 이른바 실용주의란다.

사실 지금의 최첨단 정보시대와 비교해보면 조말의 자리는 밀실과도 다름없을 것이다. 대(對)국민 발표를 하고도, 은근히 말을 바꾸기 일쑤인 작금의 현실을 보자. 정치인은 말 바꾸기의 선수다. 이들에게는 부끄러움도 없다. 실용적인 면에서 어제 한 말을 오늘 바꾸기도 하고, 방금 말해놓고 머리로는 딴말을 준비하는 것 같은 가증스러운 얼굴들은 조말의 비수에 잠시 놀라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즉 올바른 정치를 위해 쓴맛을 감수하는 제나라의 멋쟁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까지 갈 필요가 뭐 있나. 나나 너나 다 조말의 비수를 잃어버린 지 아주 오래이지 않은가.

조말이 죽고 나서 167년 오나라의 전제가 칼을 들었다. 오나라 당읍 사람인 전제는 오자서라는 뛰어난 인물의 눈에 띈 인물이다. 초나라에서 오나라로 피신 와 있던 오자서는 왕이 되고 싶어하는 공자 광에게 전제를 추천했다. 과연 오자서의 혜안대로 공자 광은 전제의 칼을 빌려 요왕을 제거하고, 왕이 되었으니 그가 합려다. 합려는 오나라의 24대 왕으로 재임하면서 초나라 신하이던 오자서를 재상으로, 그리고 손자병법의 손무로 하여금 군대를 조직하게 해서 결국 초나라를 공략하고 오나라의 세력을 중원으로까지 넓힌 왕이다.

요왕을 제거하기 위해 전제는 구운 생선을 요왕에게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 생선의 뱃속에 칼이 들어 있었다. 수저가 닿을 자리에 놓인 생선에서 칼을 꺼냈으니 그의 거사는 거의 이겨놓고 싸운 거나 다름없었다.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킬러들의 세계에서도 가장 고난도의 저격은 바로 칼이라는 얘기가 있다. 프랑스의 저격수 레옹이 마틸다에게 멋진 음성으로 남긴 말이다. 목표물에 다가서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수는 그림자처럼 목표물에 스며든다.

자객열전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열전’.

생선 뱃속에 숨긴 칼

‘사기열전’의 자객들은 프로가 아니다. 프로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실용적으로 움직인다. 돈을 받아야 한다. 암살 대상에 따라 돈의 규모도 다르다. 다름 아닌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하니 그들은 소인배이고 무뢰한이다. 하지만 자객들은 돈 거래를 천박한 짓으로 여겨서인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다름 아닌 명분과 의리, 한걸음 더 나아가 공자의 인(仁) 사상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 자객은 진나라의 예양이다. 전술한 자객들은 나름 깔끔하게 일처리를 했다. 하지만 진나라 사람인 예양은 지독하게도 운이 없거나 아니면 칼과는 거리가 먼 선비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오로지 선비의 지조를 세우기 위해 비수를 품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고치는 것이다. 선비가 지조를 지키는 데 전제조건은 자신을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주군이 있다는 것이다.

예양은 진나라에서 범씨와 중항씨라는 두 주군을 섬겼다. 하지만 그들은 예양을 여느 선비와 다르게 보지 않았다. 예양을 알아본 주군은 바로 지백이었다.

지백은 조양자를 능멸했는데, 열 받은 양자는 한나라 위나라와 함께 마치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은 것처럼 군대를 모아 지백을 멸했다. 조양자는 지백에게 맺힌 한이 많았는지, 그의 두개골을 잘 모셔다가 옻칠을 예쁘게 해서 술잔으로 썼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예양은 일단 산속으로 숨는다. 그리고 자기를 알아준 지백을 위해 한 목숨 바칠 것을 각오한다. 예나 지금이나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게 없다. 하지만 일지매처럼 뛰어난 칼 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억울한 주군의 원을 풀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일단 몸에 비수를 품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양자의 배에 칼을 푹 담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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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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