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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자를 위한 제언

현자(賢者)에게 배우는 대폭락시대의 생존철학

이병철의 이성적 ‘몰빵’ 투자 정주영의 ‘늑대식’파도타기

  • 정해윤│자유기고가 Kinstinct1@naver.com│

현자(賢者)에게 배우는 대폭락시대의 생존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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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철학의 원형은 청교도 자본주의의 창시자라 할 벤저민 프랭클린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믿을 수 없이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으며 특히 자본에 대한 관념은 동시대인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복리이자의 중요성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강조했는데, ‘세 번의 이사는 한 번의 화재와 같다’는 그의 격언은 현대 가치투자자들의 ‘Buy & Hold’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교회가 가르치는 율법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세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워런 버핏과 존 템플턴, 존 네프 같은 가치투자자들은 한결같이 소박한 삶의 태도로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 결국 오늘날의 가치투자 철학은 청교도적 세계관에서 싹을 틔운 것이며, 워런 버핏의 신화는 미국적 사상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과 정반대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제시 리버모어에서부터 ‘터틀트레이더’에 이르는 추세추종매매 그룹이다. 이들의 시각이 가치투자 그룹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오로지 가격이라는 이름의 현재에만 집중한다는 점 때문이다. 가치투자자가 끊임없이 가격 너머의 ‘가치’를 파악하고 이원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이들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시장에 순응한다. 오르는 주식이 좋은 주식이요 떨어지는 주식은 나쁜 주식이며, 그들이 아는 것은 내일의 주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다. 이러한 태도로 그들은 일반적인 저점매수 고점매도의 원리를 역행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투자자(Investor)라고 정의하지 않고 매매자(Trader)라고 규정짓는다. 오로지 순간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이들에게 투자의 개념은 있을 수가 없다. 가치투자가 오래도록 정주할 곳을 찾는 농경민족의 철학이라면 추세추종매매는 유목민의 철학과 닮았다. 시장에서 이런 유목민족의 생존방식이 주목받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추세추종매매의 아버지 제시 리버모어는 인간의 본성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손실에 대한 혐오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탐욕의 전염현상을 의미한다.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이 숱한 고비에 직면하듯이 시장은 투자자를 시험대에 오르게 한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출렁대는 주가는 늘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난파하지도 않은 배에서 뛰어내리는 쥐떼 같은 근성은 인간에게도 잠재한다. 추세추종매매는 모두가 비관에 젖어 있을 때 생존의 기회가 어디서 다가오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흔다섯 번의 투자에서 실패하지만, 다섯 번의 성공한 투자에서 모든 손실을 만회하고도 이익을 남긴다. 추세추종매매의 전략은 내일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던 유목민의 신앙에 맥이 닿아있으며, 궁하면 통한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도 맞닿는다. 가치투자가 근대성을 대표한다면 추세추종매매는 전근대인들의 생존전략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유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적 생존철학의 고수들



그런데 주식시장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는 워런 버핏이나 제시 리버모어와 같은 현인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다른 분야로 확대해본다면 한국 현대사에도 가치투자자와 추세추종매매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두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병철과 정주영이다. 그들은 투자자가 아닌 경영자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만큼은 주식시장의 승자들과 동일했다. 일찍부터 많은 이가 두 사람의 상반된 면모에 주목했는데, 그들이 다른 것은 단지 취향이나 출신 성분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 세계관에서 큰 차이가 있었는데, 각각의 철학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가치지향’과 ‘추세추종’이다.

현자(賢者)에게 배우는 대폭락시대의 생존철학

헤지펀드를 최초로 설계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마이런 숄즈.

경박단소로 표현되는 삼성의 사업군은 이병철의 끊임없는 가치지향의 결과였다. 그는 거대하고 화려한 축조물에 현혹되지 않았다. 가치투자자들이 가격 속에 내재한 가치를 보듯이 더 높은 수익성과 미래가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가 노년에 이르러 반도체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한 데는 이런 계산이 있었다. 철강 1t을 생산하면 20만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하고, 1t짜리 자동차를 생산하면 500만원, 컴퓨터를 1t 분량으로 생산하면 3억 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하지만, 반도체를 1t 생산하면 13억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계산방식이야말로 ‘감(感)의 경영’에서 합리적인 경영의 시대로 전환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벤저민 그레이엄이 주식의 가치를 판별해내려 한 시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가치투자자들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듯이 전자산업에 가용한 모든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다가온 암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는 자신의 지향점을 잊지 않았다. 그의 일생은 비록 일본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것으로 일관했지만 일본이라는 창을 통해 도입하고자 한 것은 과학과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근대문명이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이렇게 한 사람의 가치지향의 철학으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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