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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칠순에도 애인 밝히는 저 대책 없는‘주책’허나 어쩌랴, 그래서 더 귀여운 것을…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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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는 얼마나 할 예정입니까?” 양초에 불을 붙이며 왕년의 대스타 강신성일(72)이 점잖게 묻는다. 피곤한지 눈밑 그늘이 짙다. 눈치껏 지금 오후 2시니 6시면 끝날 것 같다고 하자 말린 보이차 잎을 떼내며 다시 묻는다. “그럼 어떤 주제로 얘기하고 싶습니까?” 영천 생활을 듣고 싶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보이차를 건네곤 말문을 연다. 질문 하나에 답변 한 시간. 기둥(주제)에서 줄기를 뻗어내곤 잎을 피운다.
  • 기둥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잎 보듬느라 여념이 없다. 저녁때가 되자 달력을 짚으며 말한다. “미쓰 리, 시리즈로 하는 건 어때요? 내 얘기는 한 번 해서 끝낼 게 아닌데…. 어제 일을 오래해서 오늘은 더 못하겠는데, 그럼 낼 모레나 다시 내려오는 건 어때요?” 칠순 열정이 ‘미쓰 리’ 발목을 잡는다. 인터뷰는 이튿날 밤 8시까지 계속됐다.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집뒤 장독대 옆 빨랫줄. 티셔츠, 바지, 양말, 삼각팬티가 바람에 흔들린다. 옷마다 집게로 고정시켜놓았는데, 양말은 집게 하나로 한 쌍씩 붙들어 맸다. 빨래 걷어 오겠다고 가서는 그 자리에서 양말과 팬티를 딱지 접듯 개고 있다.

신성일 보러 온 사람 네댓이 빨랫줄 한 자 뒤 울타리 너머에 서선 쑥덕댄다.

“어머, 천하의 신성일이 빨래를 다 개네, 많이 해본 솜씬데.”

“그러게, 밥은 혼자 어찌 해먹나 몰라. 여자가 같이 사는 거 아냐?”

담 대신 무릎 높이 대나무울타리를 쳐놓은 탓일까. 속닥이는 말이 그에게도 들린다.



왕년의 스타가 자못 퉁명스럽게 말한다.

“관람하는 데도 시간 넘으면 문 닫아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이만들 가세요.”

코끼리 보듯 강신성일 보던 사람들이 툴툴대며 발길을 돌린다.

“뭐야, 방송에선 언제든 오라고 해놓고, 오니까 차도 한잔 안 주고. 지가 뭐 대수야?”

강신성일은 미간을 찌푸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여기 오는 사람마다 남자가 밥을 어떻게 해먹고 사는지 궁금해들 하는데, 왜 못해요, 왜. 아궁이에 불 땔 때야 남자가 부엌일하면 체면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얼마나 편해. 봉지 카레 봉지 미역국 등 데워 먹는 것도 많고. 요즘엔 쌀에 돌도 없어. 세상 바뀌면 적응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난 음식은 안 가려도 사람은 가려. 매일같이 오는 사람들 보면 화가 나. 왔으면 인사나 하지, 얘기하는 것 들었지요? 내가 듣는 거 뻔히 알면서 신성일, 신성일 막 부르고. 난 무식이 가장 큰 죄라고 봐요….”

사람들이 배려심이 부족하다 열을 내다 난데없이 베드신 얘기를 꺼낸다.

“난 베드신 찍을 때마다 바지 안에 수영복 입고 갔어. 상대 배우에게 ‘그냥 수영복 입었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연기하라’ 한 거지요. 그렇게 상대 배우를 배려해서 그랬는지 영화 찍을 기회가 많이 왔어요. 요즘은 우리 때하고 달리 전라(全裸)로 한다는데 부럽긴 부럽지.(웃음)

93.1 MHz

배려가 중요한 건 영화 찍다 알게 됐지요. 촬영하는데 상대방 생각 안 해주면 힘들어지거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몰라. 일 보는 사람 뒤에 바짝 붙어선 지퍼 열고 있질 않나, 식당에서 시끄럽게 소리 지르질 않나…. 우선 교통질서부터 잘 지켜 버릇해야 해요. 그거 잘 지키면 다른 법 지키는 건 문제도 아니야. 법 잘 지키는 사람들이 배려 안 하고 살겠어요?”

영화는 현실보다 아름답다. 배경음악이 있어서다. 그의 현재가 영화처럼 빛나는 것도 그 배경음악 덕분이다.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빨래 걷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나는 음악이 좋아요. 영화 ‘out of africa’주제곡인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같은. 그래서 좋은 음악 나오는 FM 93.1(MHz)을 늘 크게 틀어놓지요. 광고도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웃들이 처음엔 시끄럽다고 소리 줄여달라 하더니, 이제는 도리어 더 크게 틀어달라고 해요. 들어보니 좋다는 걸 느낀 거죠. 어때, 음악 들으니 좋죠? 새벽에 철수(강아지) 데리고 산책할 때는 소리를 더 높여요. 이런 게 다 사는 재미잖소.”

음악 얘기를 하니 싱글벙글 웃는다. 원조 꽃미남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星一家 ’라고 씌어 있는 사람만한 바위가 입구에 놓인 집은 이렇게 생겼다. 집이 정 중앙에 있다면 집 바로 아래엔 작은 연못이 있다. 집 왼편 잔디밭 원두막 옆에는 묘목이 자라고 있고, 개울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 오른편으로 가면 황금붕어가 사는 큰 연못이 보인다. 눈을 더 오른쪽으로 돌리면 원을 그리며 걷는 말 두 필이 보인다. 풍산개 세 마리도 보인다. 순한 두 마리는 볕 쬐며 낮잠 자고 있고, 집 기둥에 묶인 개는 애달프게 주인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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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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