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일 보러 온 사람 네댓이 빨랫줄 한 자 뒤 울타리 너머에 서선 쑥덕댄다.
“어머, 천하의 신성일이 빨래를 다 개네, 많이 해본 솜씬데.”
“그러게, 밥은 혼자 어찌 해먹나 몰라. 여자가 같이 사는 거 아냐?”
담 대신 무릎 높이 대나무울타리를 쳐놓은 탓일까. 속닥이는 말이 그에게도 들린다.
왕년의 스타가 자못 퉁명스럽게 말한다.
“관람하는 데도 시간 넘으면 문 닫아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이만들 가세요.”
코끼리 보듯 강신성일 보던 사람들이 툴툴대며 발길을 돌린다.
“뭐야, 방송에선 언제든 오라고 해놓고, 오니까 차도 한잔 안 주고. 지가 뭐 대수야?”
강신성일은 미간을 찌푸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여기 오는 사람마다 남자가 밥을 어떻게 해먹고 사는지 궁금해들 하는데, 왜 못해요, 왜. 아궁이에 불 땔 때야 남자가 부엌일하면 체면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얼마나 편해. 봉지 카레 봉지 미역국 등 데워 먹는 것도 많고. 요즘엔 쌀에 돌도 없어. 세상 바뀌면 적응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난 음식은 안 가려도 사람은 가려. 매일같이 오는 사람들 보면 화가 나. 왔으면 인사나 하지, 얘기하는 것 들었지요? 내가 듣는 거 뻔히 알면서 신성일, 신성일 막 부르고. 난 무식이 가장 큰 죄라고 봐요….”
사람들이 배려심이 부족하다 열을 내다 난데없이 베드신 얘기를 꺼낸다.
“난 베드신 찍을 때마다 바지 안에 수영복 입고 갔어. 상대 배우에게 ‘그냥 수영복 입었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연기하라’ 한 거지요. 그렇게 상대 배우를 배려해서 그랬는지 영화 찍을 기회가 많이 왔어요. 요즘은 우리 때하고 달리 전라(全裸)로 한다는데 부럽긴 부럽지.(웃음)
93.1 MHz
배려가 중요한 건 영화 찍다 알게 됐지요. 촬영하는데 상대방 생각 안 해주면 힘들어지거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몰라. 일 보는 사람 뒤에 바짝 붙어선 지퍼 열고 있질 않나, 식당에서 시끄럽게 소리 지르질 않나…. 우선 교통질서부터 잘 지켜 버릇해야 해요. 그거 잘 지키면 다른 법 지키는 건 문제도 아니야. 법 잘 지키는 사람들이 배려 안 하고 살겠어요?”
영화는 현실보다 아름답다. 배경음악이 있어서다. 그의 현재가 영화처럼 빛나는 것도 그 배경음악 덕분이다.

빨래 걷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음악 얘기를 하니 싱글벙글 웃는다. 원조 꽃미남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星一家 ’라고 씌어 있는 사람만한 바위가 입구에 놓인 집은 이렇게 생겼다. 집이 정 중앙에 있다면 집 바로 아래엔 작은 연못이 있다. 집 왼편 잔디밭 원두막 옆에는 묘목이 자라고 있고, 개울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 오른편으로 가면 황금붕어가 사는 큰 연못이 보인다. 눈을 더 오른쪽으로 돌리면 원을 그리며 걷는 말 두 필이 보인다. 풍산개 세 마리도 보인다. 순한 두 마리는 볕 쬐며 낮잠 자고 있고, 집 기둥에 묶인 개는 애달프게 주인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