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돌아온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다. 1949년 기축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해 6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해체됐고, 백범 김구 선생이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됐다. 반민특위 해체로 친일파 청산은 무산됐다.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부를 것인가, ‘권력욕의 화신’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논쟁 중이다.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대화가 아닌 싸움판이다. 백범은 현실정치에서는 패자(敗者)였으나 역사에서는 승자(勝者)로 남았다. 다시 60년이 지나면 누가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짧은 권력에 취한 자들은 두려워하고 겸허할 일이다.
새해를 맞는다지만 희망의 덕담을 늘어놓을 계제는 아니다. 오늘 한국을 지배하는 가치는 경제다. 나쁜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데 억지 희망을 노래하자고 해봐야 헛소리다. 참고 견뎌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오히려 맞는 소리일 게다.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자고 하는 게 도리어 힘이 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한국무역협회장과 환담하던 중 “내년(2009년) 상반기가 최악의 상태고, 그 다음에 2~3% 마이너스 할 거야. 하반기에는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다음’이 언제란 건지는 분명치 않지만 “지금 주식 사면 1년 뒤에는 부자 된다”던 소리와는 딴판이다. 정정길 대통령실장도 비관적이다.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내년 3~4월이 되면 더 어려울 것이다. 내년 2월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면 국정운영이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내년 우리 경제가 2%대 성장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떡하든 4% 성장에는 맞춰보겠다고 하던 정부가 다시 말을 바꾼 셈이다. 7% 성장이야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고 하면 그만일 수 있다. 임기 내 비전이란 설명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2% 성장이라니! 여기저기서 마이너스 성장 얘기도 나오니 놀랄 일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듯 나빠진 데는 세계적 경제위기 탓이 크다고 하니 ‘리만 브라더스(이명박-강만수)’만 닦달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경제대통령’을 앞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영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말 실력은 있는 것인지, 건설회사 CEO 경력으로 당면한 세기적 위기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갈수록 의구심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감세를 하고, 건설경기를 살려 시장에 돈을 돌게 하고 일자리도 만들어낸다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정책은커녕 임기응변식 뒷북대응으로 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가 정권을 잡았다고 한들 별수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요즘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 하는 꼴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우파 아마추어 정부’의 실정(失政)이 면책되는 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새해에는 일로 승부를 내겠다고 했다. 좋은 얘기지만 어떤 일을 선택하고 집중하는지가 중요하다. 당연히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과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외의 일, 예컨대 ‘좌파 척결’의 낡은 이념 싸움부터 털어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도 좋고, 잘못된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좌편향에서 우편향으로의 반동이라면 사회 내부의 극심한 분열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게 진을 빼다 보면 큰소리치던 경제 살리기는 외려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정권수호를 위해서 하는 걱정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힘없는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니까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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