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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16

크리스천 역술가 이철용 前 국회의원

“타고나는 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못 바꾸는 건 세상에 없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크리스천 역술가 이철용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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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예수

크리스천 역술가 이철용 前 국회의원

13대 국회의원 시절 이철용 의원.

허 목사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이철용에 대해 “젊은 나이에 평화시장에서 메리야스 도매상을 하면서 은성학원이라는 구두닦이 야학을 운영하던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청년이었다”고 회고했다. 허 목사가 건넨 성경책은 그제껏 책 한 권 읽은 적 없던 이 전 의원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예수라는 남자가 멋있었어요. 그의 삶이 뒷골목 조폭보다도 더 뜨겁고 활기차다는 걸 알게 됐지요. 이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잘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처음 했어요.”

건달 혹은 뒷골목 보스에서 빈민운동가로의 극적인 전환이다. 삶을 증오하던 청년이 처음으로 꿈을 품자 세상은 모진 매로 응징했다. 수배와 도피, 구속과 고문이 이어졌다. 1976년 간첩으로 몰려 대공분실에 끌려가 40일을 지냈고, 1979년 YWCA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또 한 번 붙들려 고문을 당했다.

“1975년 1월20일에 결혼하고는 2월10일 날 구속됐어요. 나온 뒤에도 계속 도망 다니고 숨어 다니느라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를 못했죠. 그 틈에 어떻게 아들 둘을 낳았는데 생각해보니 남겨줄 게 없습디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습자지에 편지 형식으로 써나갔지요.”



1980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어둠의 자식들’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가 자신의 빈민운동 경험을 담아 쓴 다음 책 ‘꼬방동네 사람들’까지 히트를 하면서 이 전 의원은 느닷없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민당은 그를 ‘도봉 을’지역구에 공천했다. 손수레에 책을 싣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고, 헌정 사상 최초의 장애인 지역구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의 정치 역정에 대해서는 구태여 다루지 말기로 하자. 여러 언론에 보도됐듯 13대 임기가 끝난 뒤 그는 공천에서 탈락했고 무소속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한동안 세상을 주유했다. 희곡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음반을 제작해 콘서트 무대에 서고, 계속 책도 펴냈다. 그 사이 몇 차례 정치적인 재기를 모색했으나 실패했다.

생활 정치, 희망 디자인

“어느 순간 저절로 정치인의 꿈을 접게 됐어요.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 독재 타도 시대도 끝났다, 이제는 진짜 전문가가 국회에 가야 하는 시대라는 걸 깨달았지요. 하지만 정치를 떠난 건 아니에요.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지요.”

빈민운동을 하며 마음에 품었던 생활 정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바꾸는 길이 역학이었다. 이 배경을 설명하려면 시간은 다시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혹독한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그에게 문익환 목사가 웅담을 선물했다. 캐나다 교포들이 문 목사를 위해 보낸 것에서 일부를 떼어준 것이다. 벼랑 끝 밧줄 잡는 심정으로 웅담을 받아 들었는데 놀랍게도 기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의학의 신비함에 이끌려 침술, 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양오행에 관심이 갔고 자연스레 오래전부터 호기심을 가진 역학 공부에도 빠져들었다. 스승을 따라다니며 배운 건 아니다. 그는 책 쓰는 것도, 노래 부르는 것도, 심지어 정치도 뭐 하나 ‘사사한 게 없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줄 서서 인정받는 게 싫어요. 열정으로 하는 게 진짜인 거죠. 누구 파다, 무슨 장르다 그런 거 자기들끼리 기득권 누리려고 하는 우스운 일 아닙니까?”

혼자서 책을 읽으며 사주를 파고들었다. 뭐든 한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에 제법 역학을 익혔다. 그가 점을 볼 줄 안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은 침을 놓아주고, 힘든 사람은 사주로 상담해주자 빈민운동이 훨씬 쉬워졌다.

“흔히 세상에서 얘기하는 점을 봐줬다기보다는 상담을 해줬다고 하는 게 맞겠죠. 다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인데 거기다 대고 ‘당신은 팔자가 엿 같아서 안 되겠어’ 이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은 어렵지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아진다,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줬어요. 신기한 게 그냥 ‘잘될 거다’ 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당신 사주가 이렇다. 그러니 힘내라’ 하면 믿는 겁니다. 그 믿음이 결국 일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요. 문득 이게 바로 생활 정치 아닌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나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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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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