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은 국내에서 본 꽃 중 가장 화려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돈 벌고, 출세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요. 그러기에 세상에는 아름다운 경치, 맛있는 먹을거리, 감동적인 음악이나 공연,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향유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우리의 한정된 시간을 놓고 삶을 즐기는 일이 돈 버는 일과 다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일하고 돈 버는 데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도록 교육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을 즐기는 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점수를 매기는 대상으로 삼는 우리나라 교육이 안타깝습니다. 자연 과목에서 꽃과 나무를 알고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합니다.
꽃과 나무를 관찰하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이 세상에 가장 쉽고 비용이 안 드는 취미입니다. 우리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는 이 이상 좋은 방법이 없을 겁니다. 제가 꽃, 나무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입니다. 아버지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카메라를 들고 꽃 사진을 찍으러 다닌 것이 그 시작입니다. 필름 카메라를 쓸 때는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이제 디지털 카메라의 세상이 되어 필름 값, 인화비가 안 들게 됐으니 좋은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눈여겨볼 만한 수많은 나무가 있습니다. 플라타너스 일변도였던 가로수가 최근 들어 느티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배롱나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청계천 공사를 하면서 이팝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쌀밥을 덮어쓴 것 같은 이 나무의 꽃이 만개한 모습은 벚나무에 뒤지지 않는데, 이미 여의도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벚나무를 또 심었다면 얼마나 몰취미한 일이겠습니까?
한국은 사실 산림녹화에 가장 성공한 나라이고, 근린공원도 많이 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본다면 특별히 어디를 가지 않아도 나무와 가까워질 수 있지요. 아는 것이 즐기는 능력을 키우는 첫걸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아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꽃이 화려하지 않아도 잎이나 열매의 모양, 가지를 뻗는 모습,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모양(樹皮)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각각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물론 공부하면 더 좋습니다. 그냥 즐겨도 좋지만 이름을 알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 입문서로는 필자가 이 환상적인 취미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미 1000권 가까이 사서 친지들에게 나눠준 책 ‘궁궐의 우리나무’를 강력 추천합니다. ‘이 땅의 큰 나무’ ‘절집 나무’ 등도 좋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꽃을 보지 않았다면 헛살아온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함박꽃입니다. 목련과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목련의 모습과 다른 이 꽃은 요강 모양의 흰 꽃잎 속에 암술 수술이 화려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목란이라고 불리며, 현재 북한의 국화로 지정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지금까지 필자는 이 꽃을 보았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꽃나무의 키가 커서 일부러 고개를 들고 찾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겁니다.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으로 가는 점봉산 등산길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함박꽃나무가 많으니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