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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논픽션 공모 우수작

땅문서에 이름표를 달아줘

  • 김상인

땅문서에 이름표를 달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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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향교를 유지 관리하고 제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밭과 논 등이 필요했고, 그 토지를 교전(校田) 또는 학전(學田)이라 했다. 군수, 현감이 이를 관리 감독했다. 그 뒤 향교부근의 교전은 유생과 소작인들이 자기 토지인 양 행세하기에 이르렀다. 구한말 지방 유림의 폐단이 많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자연 향교는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이 틈을 타서 향교부속의 전토는 소작인과 향교 사무를 보는 종사자들이 제멋대로 분할 점유하기에 이른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구한국 정부에 지시해 ‘보통학교령’을 공포한다. 여기서 국민학교 교육이 시작됐다. 또 사립학교령을 시행해 교전의 일부를 사립학교재산으로 편입했다. 토지조사사업 당시 향교 재산과 학교재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향교에서 유학의 훈육은 자연 폐지되었으나 공자 등 유교의 현인에 대한 제사는 계속 지냈고, 필요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향교전을 처분하는 예도 많았다. 향교전은 조선시대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에 향교전, 교전, 교위 등의 명의로 등재됐다. 향교전은 정부로부터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았고, 관할 군수도 형식적으로만 감독했다. 그렇다 보니 사실상 해당 지방의 유림 또는 향교의 청직(廳直) 등이 관리했으나, 토지를 둘러싼 비리가 많이 발생되어 부득이 1910년 ‘향교재단관리규정’이 공포됐다. 향교 재산관리규정에 의하면, 향교 재산 전토는 매매를 금지하는 한편, 향교 재산의 관리는 부윤(府尹)·군수에게 위임하되, 관찰사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했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시장 군수가 관찰사의 인가를 받아 특정관리인에게 관리를 맡길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성산마을 부지도 최초 작성한 토지대장을 보면, ‘대정 3년(1914년), 사정(査定)’으로, 소유자가 ‘거창향교 재산’으로 등재돼 있다.”

광복이 되면서 식민통치시대는 끝났으나, 미군정과 6·25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 지적법이 제정되면서 소유자의 신고 없이도 ‘토지이동정리(면적, 지목 등이 지적공부상 변경되는 것)’가 가능해졌다. 성산마을 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립학교가 설립됐고, 미군정하 향교 재산관리법은 현지 실사를 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교 재산과 학교 부지 사이의 경계는 불분명해졌다. 학교 부지의 울타리가 명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임야의 무단형질 변경이 자주 일어나 도면으로는 제대로 된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향교 재산 일부가 학교법인 소유로 변경됐다.

1962년 향교 재산관리법이 제정 공포됐다. 일제강점기하의 서당규칙법과 1948년 미군정하의 향교 재산관리법을 모체로 한 향교 재산관리법 제4조에는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매매, 양도, 교환, 담보 제공, 처분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법 제정과 더불어 뒤늦게 향교에서는 재산 관리가 허술했음을 알게 됐고, 토지실사를 통한 재산 파악에 들어갔다. 성산마을 주위 임야와 구릉지, 황무지 등이 중점조사 대상지였다. 이 과정에서 향교는 학교법인으로 소유자가 변경된 필지에 대해 소유권반환소송을 청구하기에 이른다. 학교법인이 성산마을 주민들에게 토지 불하를 약속했다가 외면하고, 도지사나 군수가 찾아와 점유자가 땅을 곧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 섞인 발언을 쏟아내던 시기, 마을 밖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던 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은 토지불하를 믿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점유자들의 의지와 무관한 토지용도 제한의 금줄, 도시계획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도시계획법상 자연녹지선, 완충지역의 주거지역선이 복잡하게 그어져 현실적인 땅 분할 문제는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고 있던 것이다.

“한번 해봅시다!”

이 문제를 정리하려면 일단 토지 소유자인 향교의 실무자를 만나야 했다. 그런데 그와 마주 앉기도 전 일이 생겼다. 날씨가 좋아 아침 일찍부터 측량 신청인들의 전화가 폭주하던 날이었다. 배정된 4건의 측량을 마치고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성산마을 이장과 주민 1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들에 따르면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이장은 이번 기회에 성산마을에 사는 주민 각자의 대문에 문패를 붙여달라고 하소연했다.



“우리가 군청과 읍사무소 등 행정기관에 가서 다 알아봤는데 땅문서를 만드는 것은 김 차장 손에 달렸다고 하대요. 지적확정측량이라던가? 아무튼 이번 기회에 불쌍한 우리를 봐서 지적도에 선을 그어주시오.”

“이장님, 일단 의자에 앉으시고 제 말씀부터 들어보십시오. 이장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읍사무소와 군청 담당자들은 지적공사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저는 지적측량사일 뿐입니다. 과거에 국회의원, 도지사, 군수, 학원이사장이 소유권 이전을 약속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분들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일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지적은 호적과 같은 겁니다. 사람 이름이 호적부에 잘못 등재되면 쉽게 고쳐지든가요? 성산마을 주민들만 아우성이지, 정작 소유자와 법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무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토지분할을 제한하는 법률 문제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땅도 마음대로 분할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또 하나 문제는 축척이 작은 임야도에 등록한 토지를 큰 축척의 지적도 토지로 변경 등록하는 문제입니다. 지적법상 등록전환(登錄轉換)이라고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법률에 정한 절차를 거친 다음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선을 없애 토지합병을 하고, 그 상태에서 주민 각자의 몫을 떼어내야 합니다. 소유권을 찾아올 수 있는 기반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것은 토지 소유자인 향교재단이 먼저 스스로 등록 전환과 합병을 신청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향교의 실무자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장님이 향교의 변 총무를 직접 만나보십시오. 당사자끼리 얼굴을 보며 토지 문제를 상의해야 실마리가 풀리지 않겠어요? 아시다시피 측량 의뢰자는 군청 사회복지과고요. 저는 제3자입니다. 제가 향교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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