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17

‘여성’과 ‘여신’의 경계를 넘어

프시케 vs 자청비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여성’과 ‘여신’의 경계를 넘어

2/3
‘여성’과 ‘여신’의 경계를 넘어

류준화씨의 ‘자청비’. 자유롭고 진취적인 여신의 전형을 보여준 자청비의 머리카락을 서예의 획처럼 표현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이야기에는 여성의 진심 어린 행동이 남성에게 뜻하지 않은 ‘위협’이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녀들은 최선을 다해 남성을 사랑하고 그들과 친밀하고도 대등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러나 프시케가 에로스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순간, 자청비가 문도령과 ‘대등한’ 처지에서 소통하려 하는 순간, 남성들은 대경실색하며 줄행랑을 친다.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두 가지 금기 사항을 제시했다. 첫째,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 것. 둘째, 자신이 어디에 가든 묻지 말 것.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자신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 말라. 어처구니없지만, 이 또한 에로스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의 본질적인 심리이기도 하다.

한사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오직 캄캄한 밤에만 ‘사랑’을 나누려 하는 에로스의 얼굴을 너무도 보고 싶은 나머지, 프시케는 잠든 에로스의 얼굴에 등불을 비춘다. 물론 목소리와 체온만으로도 충분히 에로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얼굴도 모르고 사랑한 남편의 ‘가면 뒤 맨얼굴’을 보는 순간 프시케는 깜짝 놀라 등불의 기름을 흘리고 만다. 뜨거운 기름에 놀라 벌떡 잠이 깬 에로스는 ‘감히’ 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려 한 프시케를 용서하지 못하고 훌쩍 떠나버린다.

문도령도 자청비가 자신과 ‘맞먹으려’ 할 때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천상의 왕자였던 문도령은 천신만고 끝에 사랑하는 자청비를 다시 만나게 되지만, ‘문 열어라’고 독촉하는 문도령 앞에서 자청비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겉창 구멍으로 손가락을 내놓아보라고. 그러면 누군지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겠노라고.

문도령이 겉창 구멍으로 손가락을 내놓자 자청비는 웃으면서 바늘로 손가락을 콕 찔렀다. 말괄량이 자청비의 장난기 어린 애정 행각이었지만 그녀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도령은 화가 나서 돌아가버린다. 토라진 문도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청비는 온갖 시련을 겪는다.



자청비의 시련은 이미 가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정수남이라는 하인이 그녀를 유인해 성폭행하려 하자 그에 대한 정당방위 도중에 정수남을 죽이게 된 자청비. 그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정수남을 해쳤지만, 부모가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한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는 ‘여식’보다는 ‘종놈’이 가정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자청비를 쫓아내고 만다. 온갖 비방을 동원해 정수남을 살려내니 더욱 노발대발 한다.

“아니, 계집년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이냐! 이런 년을 집에 두었다간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어서 나가거라.”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홀대하는 부모, 열심히 살면 살수록 그녀를 방해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떠나 자청비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여성의 몸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어려움을 깨달은 자청비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장소녀로 변신하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쳐 문도령과 사랑을 나누고 옥황상제의 미션까지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종놈이 아깝습니까? 자식이 아깝습니까?”

“그것도 말이라고 하느냐? 아무리 종이 아까운들 자식보다 더 아까울 리가 있겠느냐?”

“그럼 아버님 어머님, 정수남이 하는 행실이 하도 고약하길래 저 산중에서 죽여 두고 왔습니다.”

죽인 사연을 자세히 설명할 사이도 없이 부모님의 야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년아 저년아, 계집년이 사람을 죽이다니. 네 년은 시집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종은 살려두면 우리 두 늙은이 걱정 없이 먹여 살려준다.”

-현용준, ‘제주도 신화’, 서문당, 1996, 164~165쪽

3 ‘너’와 ‘나’를 넘어 ‘그곳’으로 가는 길

프시케가 시어머니 아프로디테가 제시하는 혹독한 미션을 수행하고, 자청비가 자신의 부모와 시부모는 물론 옥황상제의 미션까지 수행하는 모습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여성의 본질적 운명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신분이던 프시케와 자청비가 신의 아들이던 에로스와 문도령을 사랑하고,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그녀들이 차지한 ‘여신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녀들이 겪었을 인간적 고뇌, 여성적 고통 때문이다.

2/3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목록 닫기

‘여성’과 ‘여신’의 경계를 넘어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