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모<br>●1959년 경기 부천 출생<br>●고려대 사회학과 졸업<br>●경향신문·내외신문 기자, 現 저작권위원회 위원<br>●저서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등
나는 음악평론가로서 라디오·TV 출연, 그리고 강연이나 행사 심사 활동과 같은 일에 시달린다. 모두 ‘말하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기’로 생계를 충당하지만 그럼에도 평론가의 본연은 ‘글쓰기’라는 정의에는 변함이 없다. 글을 쓰지 않는 평론활동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글쓰기는 그러나 말하기보다 부담이 훨씬 더하지만 통장에 기여하는 바도 적은 게 현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해본 사람은 안다. 뻔히 아는 어휘가 막상 떠오르지 않아 한밤중 바깥으로 나가 머리를 식혀야 하고, 설령 원하는 문장을 찾아도 다음날 보면 이것밖에 안 되는가 연신 자책한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 표현대로 ‘글 감옥’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 막연한 의무가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경험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난 뒤 강연을 하면 말하기가 술술 풀린다. 글쓰기는 실용적이다.
서구·한국 대중음악사 책 ‘반드시’ 쓰기
나의 꿈은 무엇보다 책을 써내는 것이다. ‘신동아’에 쓴 대중음악가 인터뷰를 묶어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이란 책을 낸 게 2004년 1월이니까 책을 쓰지 못한 지도 어느덧 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주변으로부터도 수도 없이 질책을 받았다. 음악평론가 맞느냐고. 그때마다 60대 초반에 할 것이라고, 아직 세월이 창창하다고 변명을 하지만 솔직히 내심 당황스럽고 부끄럽다.
뭔가 쓰려고 생각하면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프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바쁜 일정에 밤에 들어와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 자리할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책 쓰기는 집중력과 인내 그리고 분위기가 전제돼야 하는데 도무지 여유가 나질 않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책 콘텐츠는 방대한 역사를 정리한 ‘서구 대중음악사’와 ‘한국 대중음악사’다. 기존 매체에 쓴 글을 재구성하거나 편안하게 풀어가는 수필이라면 몰라도 이건 무거운 타이틀이다.
평론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숙제이지만, 또 일의 영역이지만 이 두 권의 책을 쓰는 게 버킷 리스트의 첫 번째를 장식하는 이유는 그 소중함으로, 그 진정성으로 다른 무수한 꿈에 비해 맨 위에, 꼭짓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조금 과한 표현이지만 ‘이게 없다면 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꿈에 구체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올해를 두 권의 음악사 집필 준비의 원년으로 삼았다. 막연한 목표 설정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주변의 지인 한 명을 지목해서 검토를 요청하는 점검 시스템을 마련했다. 15일마다 준비상황을 그에게 낱낱이 보고하는 방식이다. 술값이 조금 더 들어갈 테지만 책 쓰고자 하는 마음자세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생겨나고 있다. 고통인 줄 알지만 꿈이기에 즐겁다. 글쓰기와 책쓰기가 고통과 환희의 아리아라는 것을 죽기 전에 크게 한 번 반드시 체험하고 싶다.
연못과 화단, 우물 있는 집 만들기
열대어는 관심도 없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 나는 수족관이 아니라 우물 정도 크기의 금붕어가 사는 작은 연못을 꿈꾼다. 경기 소사(지금의 부천)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가서 본 작은 연못의 풍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속에 아련히 저장돼 있다. 그 연못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들의 화단 속에 있었다.
얼마 전 로마에서 활약하는 화가 이현의 국내 전시회에서 지중해 연안의 양귀비와 수선화를 색채화한 그림을 보고 모처럼 꽃의 강렬한 아름다움에 취했다. 그 전시현장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꽃을 동경해왔음을 새삼 깨달았다. 화단 가꾸기와 연못 관리는 일을 떠난 평생의 대(大)로망이다. 이게 안 되면 내 인생은 패배로 결론난다.
화단을 가꾸기 위해서는 우물이 화단 끝 쪽에 있어야 할 것이다. 수돗물은 싫다. 그래서 이 꿈을 위해서는 남도로 내려가야 한다. 전남 해남이나 여수, 아니면 경남 하동이나 남해의 해변에서 제법 떨어진 산골이 좋을 것이다. 이미 아내와는 얘기를 끝냈다. 단지 아내의 지적이 조금 걸린다. “근데 땅은 어떻게 마련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