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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⑧

꿈꾸는 절간 운주사 가는 길

전라도 화순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꿈꾸는 절간 운주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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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千佛千塔)의 절, 운주사

남평에서 도곡온천을 거쳐 운주사로 가는 길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둔덕과 같은 산들을 쉼 없이 타넘고 들판의 힘줄 같은 물길을 건너는 동안에는 이 평화로운 땅 어디에 그런 기이한 절간이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동안 문화 인사들이 하도 많이 심각하게 소문을 낸 덕에 근래는 이 작고 보잘 것없는(?) 절간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지나치다 할 수는 없지만 의미 부여가 지극히 잘된 터라 유명 인사들이 써놓은 글들을 읽고 이 절을 찾아오는 이들은 사문(寺門)만 들어서도 금방 개벽의 땅 한 모서리가 열리는 양 경이로운 기대를 갖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그럴 턱이 없다. 이 땅의 오래된 절간치고 영묘(靈妙)의 이야기 하나 지니지 아니한 절간이 없듯, 운주사는 그냥 더 많은 이야기와 흔적을 지닌 절이라 여기면 되겠다.

10여 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처음 운주사를 찾았던 나는 실망의 빛이 역력한 채로 돌아 나오는 녀석들에게 한 소리 했다. “내가 책의 글을 새겨 읽으라고 했지 언제 표현 그대로 믿으라고 했더냐.” 마찬가지다. 소문난 이백의 시 한 구절 읽고 중국 여산을 찾아가보라. 쯧쯧. 무릇 역사가 그렇듯이 자연도 개인의 새김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개인에게 귀결되는 문제다.

비구름 끼인 날



운주사, 한 채 돛배가

뿌연 연초록 화순으로 들어오네

가랑이를 쩌억 벌리고 있는 포구

천불천탑이 천만개의 돌등을 들고 나와 맞는다

해도, 그게 다 마음 덩어리 아니겠어?

마음은 돌 속에다가도 정을 들게 하듯이

구름돛 활짝 펴고 온 우주를 다 돌아다녀도

정들 곳 다만 사람 마음이어서

닻이 내려오는 이 진창

비구름 잔뜩 끼인 날

산들은 아주 먼 섬들이었네

- 황지우 시 ‘구름바다 위 운주사’

맞는 말이다. 사람이 다듬은 돌이라 해도 돌로 보면 돌이고 마음이라 하면 마음이다. 산속 절간 하나를 두고 웬 돛배냐고? 우리나라 풍수지리에 대해 관여 않은 바가 없으신 도선선사가 그랬단다. 우리나라 전체 지형이 떠가는 배(行舟)의 형상인데 태백산, 금강산은 그 뱃머리이고 월출산과 한라산은 배꼬리란다. 영남 지리산은 삿대이고 이곳 운주는 뱃구레(船腹)라고 했던가. 배가 물에 뜨려면 마땅히 뱃구레를 눌러주어야 한다. 그래서 스님께서 도력을 발동해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천의 불상과 천 개 탑을 만드셨단다. 천불로 사공을 삼고 천 탑으로 노를 저어 항해를 잘해 보자는 뜻이었지. 그러니까 천불천탑은 풍수에서 말하는 약한 데를 보완하고 드센 데를 누른다는 보비(補備) 지리의 구체적인 물상인 셈. 도선 스님이 참 대단하다고? 아니, 시인이 대단해. 스님은 탑이며 불상밖에 못 만들었는데 시인은 내륙의 화순 땅을 가랑이 쩍 벌린 포구로 만들고 산들을 죄다 섬으로 바꾸고 운주사 절간은 돛단배로 고쳐 우주 항해를 하게 하지 않는가. 그러곤 결국 정들 곳은 사람 마음뿐이라 하지 않는다.

산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벌써 탑들이 줄을 서서 찾아오는 객들을 반긴다. 문외한이 봐도 골짜기며 둘레 산들의 형세는 특이할 것이 없다. 우리네 산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골인데 탑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다보탑 석가탑처럼 잘생긴 것들도 아니다. 거친 돌들을 함부로 다듬어 층수를 맞춰놓은 듯싶기도 하다. 암벽에 새겨 만들고 틈에 세워 만든 불상들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못난 탑들과 못생긴 불상들이 길가에 도열해 있으니 뜻하지 아니한 나그네는 찾아올 데를 잘못 알고 왔나 싶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한다. 실은 운주사 골짝 길을 걷는 재미가 이런 데 있다.

그 사이 초입은 물론 절간까지 가는 길 주위가 잘 정비되었다. 주변 밭뙈기들은 모두 잔디밭으로 바뀌었고 새로 심고 키운 나무도 많다. 대웅전, 지장전도 번듯하니 모양새를 달리했다. 하나 주위가 달라졌다고 탑과 불상마저 달라질 턱은 없다. 예전, 호박넝쿨 뻗어가는 논두렁에 탑이 서 있던 때가 차라리 더 운치가 있었다면 너무 복고풍의 말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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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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