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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마지막 회>

지나치게 잘생겼던 사나이 남궁원

광고 속 이미지로 남은 배우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지나치게 잘생겼던 사나이 남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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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남궁원이 데뷔했을 때 영화계는 그를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고 불렀다. 당대 최고의 감독 신상옥도 ‘국제적으로 통할 배우’라 했다. 이 잘생기고 키 큰, 호쾌한 사나이의 승승장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가 될 줄이야. 그에게는 잘생기고 모범적인, 밋밋한 배역 외엔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신 감독은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안됐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라며 혀를 차고 만다. 눈부신 외모가 오히려 한계가 됐던 배우, 남궁원을 추억한다.
지나치게 잘생겼던 사나이  남궁원

1960~70년대 멜로·첩보·가족영화 등에 두루 출연한 배우 남궁원.

남궁원은 멋있게 생긴 배우다. 이두용 감독은 남궁원을 한국 남자배우 중 가장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배우라 했고, 신상옥 감독은 외국의 미남배우와 견주어도 모자랄 것이 없는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배우라 했다. 나는 남궁원을 고급 남성정장의 광고 모델, 또는 남성 화장품의 광고 모델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본 영화 중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은 없다. 이광수 소설을 영화화한 ‘유정’(강대진 감독, 1976)에서 수양딸 한유정을 사랑하는 양아버지로 나와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고 도망쳐 쓸쓸하게 죽어가는 삶을 선택하는 중년의 남자,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미례 감독, 1984)에서 김진아를 더욱 비뚤어지게 만드는 완고한 아버지. ‘적도의 꽃’(배창호 감독, 1983)에서 잘생기고, 매너도 좋고 돈도 많지만 결국 장미희의 몸뚱이 하나만을 욕심낸 그렇고 그런 바람둥이 유부남…, 정도가 내 기억 속의 남궁원이다. 영화광들은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에서 무력해지는 남성성 때문에 우유부단해지고, 교활해지는 중년 남자와 하길종 감독의 ‘화분’(1972)에서 질투에 빠져 광기에 찬 폭력을 행사하다 몰락하는 동성애자 역을 생각해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영화팬이 기억하는 남궁원은 고급 남성복 광고에 등장하는 멋지고 품격 있는 배우이거나, 멜로 영화에서 중년의 미남 신사 또는 아버지로 출연한 배우일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남궁원이 액션 영화배우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렇다면 액션 영화배우라 칭할 수 있는 배우는 어떤 사람인가? 내 기준에서 볼 때 액션 영화배우란 적어도 다섯 편 이상의 영화에서 몸을 사용하는 인상적인 연기를 한 배우여야 하고, 액션연기 때문에 그 배우의 존재감이 만들어진 경우다. 김진규는 액션 영화배우인가? 아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해내기 어렵다. 윤일봉은? 아니다. 한석규는? 그가 ‘초록물고기’의 주차장 신에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액션을 소화해내기는 했지만 액션 연기를 보여준 영화는 한두 편에 불과하고,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접속’ 같은 멜로 영화에서 더 인상적인 연기를 해냈다. 신성일은 수많은 멜로 영화에 출연했지만, 뒷골목 깡패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한 영화가 적어도 열 편이 넘고, 이만희 감독의 ‘원점’ 같은 범죄 영화에서는 설악산 중턱의 가파른 등산로에서 혁대로 자신의 한 손을 난간에 묶고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는 매우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펼쳤다. 신성일은 액션 영화배우라 부를 수 있다. 최무룡과 그의 아들 최민수는? 둘 다 액션 영화배우다. 최민수는 ‘테러리스트’의 라스트 혈투 장면에서 1대 100이라는,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장면에서 관객을 감탄케 한다. 최민수는 쇠파이프를 오른손에 붕대로 감아 쥐고, 수없이 밀려드는 조폭 패거리에 맞서 싸운다. 그는 육체의 모든 힘이 소진돼 고통스럽게 헐떡거리면서도 굴하지 않는 집념의 사나이를 기적처럼 멋지게 연기했다. 그의 아버지 최무룡 역시 자신이 감독을 한 ‘제삼지대’에서 일본도를 들고 일본 야쿠자와 1대 100의 대결을 펼치는 혈투를 만들어냈다. 감독이자 배우로 출연했던 최무룡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 액션과 홍콩 무협 영화 액션 신들을 연구한 것이 분명한,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액션 신을 만들어냈다. 최무룡과 최민수, 두 사람 다 액션 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갖고 대사 없이 육체를 움직여 집념 또는 죄의식 같은 추상적인 감정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한 배우였다.

몸으로 말하는 배우

액션 영화배우는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연기가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 없는 본능을 가진 자다. 박노식이 말했듯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탱탱한 육체를 주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치고 찢겨지고 싶어 안달이 난 자다. 영화에서 주먹이 오가는 격투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 상황과 똑같은 체력 소모와 고통이 있고, 영화에서 칼부림이 일어난다면 실제 상황과 똑같은 위험이 따른다. 서로 약속을 하고 안전에 대한 대책을 준비한다는 것 외에는 실제 상황과 똑같은 위험과 육체의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액션 배우는 이런 위험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고통을 통해서 나오는 연기를 사랑하는 자다.

그렇다면 남궁원은 액션 배우인가? 그렇다. 남궁원이 1958년 데뷔했을 때, 충무로 영화계에서는 그를 일러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했다. 게다가 그가 연기를 시작한 곳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었다. 당대 최고의 감독이 낙점한 사나이. 당대 최고의 영화사 신필름의 전속 계약 배우. 남궁원은 김진규, 최무룡의 계보를 잇는 미남배우로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보증수표였다. 이 잘생기고 키 큰, 호쾌한 사나이의 승승장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1959년 데뷔한 지 한 해만에 신상옥 감독의 ‘자매의 화원’에 활달한 성격의 청년 화가로 출연해 가능성을 인정받고, 이듬해,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에서 김승호의 큰아들 어진이로 출연한다. 그는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해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믿음직한 소시민 가정의 큰아들이었다. 아직 조연이지만 모든 가능성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그가 조연으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가고 있던 1962년,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약진에 자극받은 신상옥 감독은 한국 검술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이것이 한국 검객영화다!’ 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던 제작자 신상옥 감독은 검술 영화 주인공으로 남궁원을 선택한다. 큰 키에 호남형의 미남. 액션 영화에 딱 들어맞는 신체 조건을 가진 배우는 남궁원뿐이었다. 일본의 미후네 도시로와 견주어도 당당한 얼굴과 체격이었다. 이미 ‘원한의 일월도’와 ‘폭군 연산’으로 대규모 액션 신을 소화해낸 신필름의 본격 검술 영화였다. 영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1964년, 신상옥 감독과 신필름의 점프를 결정짓게 된 영화 ‘빨간 마후라’가 만들어진다.

남궁원이 주연은 아니었다. 새로 전입해온 전투기 조종사 최무룡은 중대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받는다. 최은희다. 최은희를 본 순간 최무룡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최은희에게는 과거 남편이 있었다. 그는 최무룡과 같은 전투기 조종사로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것이다. 최무룡의 귀에 들려오는 최은희의 전남편은 너무나 멋있는 사나이였다. 조국애, 동료애, 희생정신과 책임감,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남궁원이다. 죽은 남궁원의 그림자가 최무룡과 최은희 사이를 떠돈다. 최은희의 전남편이 너무나 멋진 사나이였기에 최무룡은 갈등한다. 그런 사나이의 자리에 자신이 들어설 수 있을까? 최무룡과 최은희의 고민은 남궁원이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으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 사이, 몇 해 전, 신필름에서 만든 ‘로맨스 빠빠’에 같이 출연해 막냇동생 역을 한 후배 신성일이 ‘맨발의 청춘’에 출연한다. 신필름에서 시키는 조연만 하다가는 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신성일이 과감히 신필름과의 계약을 끝내고 독립해 ‘맨발의 청춘’에서 주연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터졌다. 먼저 치고 올라간 자는 신성일이었다. 시대가 원하는 얼굴과 분위기가 신성일이었나보다.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으로 1960년대 젊은이의 표상이 됐다. 신성일에게는 도시 뒷골목 젊은 청년의 불만과 우울, 열등감을 담은 얼굴이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대, 호쾌한 분위기의 배우보다는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두 눈을 찌푸리고 어딘가 노려보는 듯한 우울하고 연민 가는 사나이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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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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