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상 가득한 대승사 점심 공양. 비빔밥 한 가지지만 군침이 돈다.
가난한 절에도 꽃은 피어 있었다. 산골 할머니 틈에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일행에게 맑은 인상의 스님이 “차 한잔 하겠느냐”고 말을 건넨다. 스님의 법명은 ‘각해’, 조계종단의 비구니인데 어찌어찌한 인연으로 태고종 사찰인 이곳에 나 홀로 주석하고 있다고 한다. 승가대학을 나온 지식인 스님답게 눈빛이 곱고 깨끗하다.
많지 않은 연등은 하늘을 듬성듬성 가리며 봄바람에 출렁거린다. 부자의 연등은 법당 가까이 자리하지만 빈자와 과부의 연등은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냄새나고 어두운 뒷간을 희미하게 밝힌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빈자일등(貧者一燈)’, 가진 자의 고급스러운 일만 개의 등보다 가난한 자의 보잘것없는 한 개의 등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
시주단지에는 흔한 만 원짜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천 원짜리 몇 장과 도회 사람들이 지니기에 불편해하는 나들이 나온 동전들이 천금의 무게로 버티고 있다. 팔순 촌로의 저 검고 투박한 손에 담긴 간곡한 기원은 무엇일까? 산골 할머니의 간절함에 초여름 따가운 햇살이 외려 서늘하다.
대승사를 뒤로하고 10여 분을 달리면 사이렌 탑이 나타난다. 요즘 보기 드문 나무로 지은 재래식 싸이렌 탑이다. 장정 서넛이 손잡이를 힘껏 돌리면 동력이 발생하고 그 힘으로 사이렌 소리가 퍼져 나간다. 무장공비가 심심찮게 나타나던 시대에는 요긴했으나 지금은 퇴적한 유물로 오히려 가치가 있어 보인다.
물걸리 곳곳에는 작약과 금낭화가 자주 눈에 띈다.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리는 금낭화는 그 옛날에는 너무 귀해 눈에 띄면 ‘심봤다’라고 고함치고 경배를 올린 뒤 관찰했다는 꽃이다.
강원도 영서지방 홍천은 이제 지척의 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홍천 고속도로에 이어 2015년 개통을 목표로 동홍천-양양 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무려 서른다섯 개의 터널을 뚫는 험한 공사가 끝나면 강원도는 이제 경기도 땅만큼이나 서울 사람에게 가까운 곳이 된다. 그리하여 인제로 연결되는 사연 많은 행치령 고갯길은 잊힌 과거로 사라질 것이다.

물걸리 사지 석조비로자나 불상. 보물 541호다.
강원도는 설움 많고 버려진 땅이라 구슬픈 민요가 많다.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난다”는 ‘한오백년’부터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등이 그것이다.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 마라/ 누구를 괴자고 머리에 기름.”
강원도아리랑의 한 구절이다. 노래에 등장하는 ‘괴다’는 말은 사랑하다는 의미의 토종말로, 짝사랑에 애태우는 산골 큰애기의 가슴앓이를 묘사하고 있다.
“산중의 귀물은 머루와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네.”
맞는 말이다. 강원도는 한국 사람에게 이제 하나의 귀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정든 님 오기만 기다린다.”
그러나 그 많은 굽이굽이 옛길은 개발 바람에 밀려 울창한 숲 속으로 하나둘 스스로를 숨기고 있다. 감꽃을 주우며 헤어진 사랑, 그 감이 익을 땐 오시겠느냐고 단봇짐을 싸던 산골처녀의 슬픔을 담은 그 옛날의 노랫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