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잊힐 권리’는 일종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으로 인정된다. 자신에 관한 개인정보를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공개하고 이용되도록 할지에 대해 정보주체인 개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한다. 헌법재판소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헌법 10조)과 관계된 기본권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및 저작권법 등을 통해 구현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정정 또는 삭제 요청을 인정하고 정보처리자는 이를 조사, 처리해 그 결과를 정보주체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해놓았다. 정보통신망법도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가 훼손된 경우 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이 침해된 경우 복제전송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법들이 다루는 개인정보가 주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과 관련이 있을 때나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것이 없는 일반 개인정보의 삭제 요청,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의 ‘잊힐 권리’까지 인정하는지는 사실상 불분명하다.
‘잊힐 권리’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나온 중요한 판례로는 몇 년 전 여자친구의 자살로 오랫동안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남성의 사례가 꼽힌다.
자살한 여성의 어머니가 올린 미니홈피 글과 관련된 위자료 청구 사건이다. 이 남성은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와 댓글이 게재된 인터넷 사이트를 상대로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명예훼손적인 게시물에 대해 인터넷 사이트는 관리통제, 삭제 등의 의무가 있으며 이를 게을리하는 경우에는 처벌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대법원은 피해자의 적극적인 삭제 요구가 없는 경우에도 인터넷 사이트가 개인정보 보호를 목적으로 삭제 등 관리 의무를 져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한때 만들어진 개인정보로 인해 이후의 삶이 지배된다면, 이는 분명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정보가 공공의 이익과 전혀 무관하며 이미 해결된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필자는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빅 브라더(검색엔진)에 대응하는 디지털 소비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이란 측면에서 ‘잊힐 권리’는 적극적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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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형사적인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복권이란 제도를 적용해 보호한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자유를 보장받는 제도다. 파산제도를 통해 경제적으로도 갱생 기회를 제공한다. 디지털 흔적으로부터의 자유도 이 같은 차원에서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절차적인 부분에서도 ‘잊힐 권리’의 적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검색엔진이나 검색엔진의 자체 위원회가 직접 수행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본다. 검색엔진이 과도한 권한을 갖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요즘 경향에 비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이 담당토록 하는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