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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신세계’와 인천 연안부두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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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영화 ‘신세계’ 주요 촬영지인 인천 연안부두. 사방에는 컨테이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익숙한 타인’ 같은 연안부두

모두 여덟 개의 부두로 구성돼 있는 인천 연안부두는 사실상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갖지 못한다. 어쩌면 인천 바다가 그렇다. 국내 최초의 개항지이지만 이곳은 기이하게도 버려지고 낙후된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사진기자와 함께 연안부두에 다다랐을 때는 해가 중천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방에는 컨테이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땡볕 아래 두 사람 역시 덩그러니 내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여기 어디쯤, 어느 컨테이너의 숲쯤에서 영화 ‘신세계’의 도륙 장면을 찍었겠지만 그 악의 근원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낯설고 비현실적인 공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현실의 현실성. 현실은 원래 가공된 것이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현실인 상황. 연안부두는 익숙한 타인처럼 사람들을 감싸는 곳이다.

연안부두의 정식 명칭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이다. 이른바 서해 5도(백령도, 연평도, 대청도,소청도, 우도)라 불리는 섬들, 그리고 그 유명한 실미도나 덕적도, 굴업도 같은 옹진군에 널려 있는 섬들을 가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야 한다. 예컨대 단 일곱 가구만이 살아가는 무인도 같은 섬, 굴업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세상에 그만한 절경이 없다고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뱃길이 쉽사리 열리지 않아 수시로 드나들 만한 곳은 아니라고 한다.

옹진군의 섬들은 그러니까, 너무나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녀와 ‘만리장성’을 쌓지 못한 남자들이 자신의 허접스러운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진부한 변명이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가 끊겼네? 오빠 믿지?” 마음속에서 희멀건 웃음이 기어 나온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영화 ‘신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 곳이다. 이곳을 통해 ‘옌볜 거지’들이 입국하는데, 그 모습이 그리도 우스꽝스러울 수가 없다. 거지들의 대장(김병옥)은 따라오는 두 사람(우정국, 박인수)을 향해 연신 소리를 지른다. “두리번게리지 말라우야. 사람들이 다 쳐다보지 않간?”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치열한 일상, 전쟁 같은 삶

똘마니 둘은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분내를 풍기는 하얀 얼굴의 한국 여성들을 향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침을 흘린다. 그러나 대장이라는 자 역시 여성용 선글라스를 끼고,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깔맞춤’이어서 튀는 모습이기는 매한가지다. 더럽고 냄새나는 이들은 이후 영화 속에서 가장 극악한 살인극을 벌인다. 특히 이자성을 돕는 또 다른 언더커버 여자경찰(송지효)을 죽일 때 살벌한 활약을 펼친다.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결박당하고 입에 재갈이 물린 이 여자는 이미 온몸이 피와 땀, 오물투성이다. 조직의 2인자이자 이자성과 같은 화교 출신으로, 피보다 더 진한 형제애를 지켜 온 정청(황정민)은 거지들에게 이제 그만 그녀를 없애버리라고 말한다. 거지 대장은 바지춤에서 인간 도륙에 쓰는 칼을 뽑아 들며 그녀에게 다가선다.

“내레, 저 쌍년을, 제발 이제 그만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갔어.”

대낮의 여객터미널, 그리고 연안부두는 아직 인적이 뜸해선지 적막하기 그지없다. 연평도해전, NLL, 그리고 남북한의 꽃게잡이…. 어부와 병사가 같이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이런 갈등에 대해 오히려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살아가는 건 전쟁터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은 정작 이런 곳에서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일상의 치열함이 내재한다. 그래도 밤이 되면 연안부두의 횟집들이 불야성을 이룰 것이다. 술과 질펀한 농담, 비틀거리는 인생살이에 대한 하소연이 이어지겠지.

인천 연안부두를 전경으로 바라보고 싶으면 월미도 공원 내에 있는 월미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물범카’라 불리는, 바다에서라면 마치 통통배 같은 느낌의 다소 치기 어린 놀이공원 차를 타고 2~3분만 가면 된다. 모든 사물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비루함이 싹 걷힌다. 인천 연안부두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꽤나 광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갈한 차림의 큰 밥상처럼 아주 잘 정비돼 있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한 나라의 입항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 모습을 갖추기 위해 사람들은 악다구니로 살아왔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인생의 진정성은 그 악다구니에서 나온다. 전쟁 때는 상륙작전이 벌어졌을 터이다. 이제는 그 상흔을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아이들은 ‘이곳’이 ‘그곳’이라는 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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