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무책임한 정부·기업에 분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족모임 강찬호 대표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4-10-21 1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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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마켓에서 독성물질 팔아도 방관한 정부
    • “보상 근거 없다”던 환경부의 이중성
    • 접수자 절반 이상 피해자 인정 못 받아
    • 5만여 화학물질 중 정부 관리 10% 남짓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무책임한 정부·기업에 분노”

    강찬호씨의 외동딸 나래(7) 양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 이후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국가와 이웃이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며 내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산산이 깨졌고, 나와 내 가족 역시 저 비참한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찾아든 것. 1년이 멀다하고 끔찍한 사건·사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만큼은 언제나 안전할 것이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지난 6월 발족한 ‘생명을 살리는 안전사회포럼’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모임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사회 구성원은 각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의논하기 위해 최열 환경재단 대표, 김재옥 소비자시민모임 회장 등 시민 99명이 뜻을 모았다.

    9월 23일 ‘생명을 살리는 안전사회포럼’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2차 월례포럼을 열었다. ‘거리의 엄마 아빠에게 듣다.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려면?’이라는 제목을 내건 이날 포럼에는 “내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거리에 나선 엄마, 아빠들이 앞장서 목소리를 냈다.

    이날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강찬호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모임(이하 피해자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늦둥이 외동딸 나래(7) 양은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고는 참 닮았다”고 했다. 사고 발생 직후 정부의 엉터리 대처, 특별법 제정을 두고 벌어진 정치권 갈등, ‘안타까운 사연’에만 초점을 맞춘 언론보도, 엉뚱한 ‘정치 성향’ 때문에 본질이 흐트러진 것 등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문제점이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불거졌다는 것. 그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의 유독성을 인정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문제는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9월 26일 경기 광명시 한 카페에서 그와 다시 만났다.

    2011년 6월 15일 새벽. 다섯 살이던 나래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긴급 입원했다. 곤히 자던 나래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기 때문. 그간 나래는 콧물, 기침, 비염 증세가 나아지지 않아 몇 달째 동네 병원에서 처방받은 감기약을 복용했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검사 등을 마친 뒤 담당의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강씨에게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을 꺼냈다. 나래의 병명은 ‘원인불명 간질성폐렴’. 사망확률이 60%라고 했다.



    마트에서 사온 유해물질

    한 달간 치료가 이어졌다. 거듭된 스테로이드 처방으로 아이의 몸은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그래서 강씨는 한때 치료를 거부했다. 간호사이던 아내와 지역 시민단체에서 근무하던 강씨는 나래를 돌보기 위해 모두 일을 그만뒀다. 의사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도 나래는 생명을 건졌다. 강씨는 “아내가 간호사였기 때문에 아이가 호흡곤란 단계에 이르기 전에 응급실을 찾았다. 천운(天運)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래의 폐는 이미 섬유화(장기 일부가 굳는 것)가 상당부분 진행됐다. 강씨는 “폐렴, 천식, 비염은 이제 일상이 됐다. 나래는 평생 폐암과 같은 무서운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나래는 체육시간에 뛰지도 못하고 늘 별도 수업을 받는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나래의 폐는 악화될 뿐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왜 아이가 ‘원인불명 간질성폐렴’이라는 질환을 앓게 됐을까. 강씨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유사한 질환으로 사망한 환자 사례가 많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것.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무책임한 정부·기업에 분노”

    8월 31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관련 기업 처벌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유해성 알면서도 계속 팔아

    두 달 뒤인 8월 31일, 보건복지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손상 위험요인”이라며 사용 자제와 판매 중단, 회수 권고를 내렸다. 늦둥이 외동딸에게 더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구매한 가습기살균제. 하지만 이 때문에 아이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했다. 어떻게 마트와 인터넷에서 파는 제품에 그토록 끔찍한 유독성분이 들었던 것일까.

    정부 발표 이후, 여러 언론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사례를 보도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씨는 “TV 다큐멘터리, 신문 기사 등은 피해자들의 사망 사례, 비참한 현실 등 감정적인 부분을 주로 조명했을 뿐 근본적 원인이나 배상 문제에 대한 접근은 없었다”며 “피해자 처지에서 보면 3년간 전혀 해결된 부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정부 발표 이후 피해자 및 가족 측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제품 수거였다. 5월 말 정부는 ‘원인 불명 폐손상 사망 사고의 위험요인은 가습기살균제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가 해당 제품에 대해 강제 수거 명령을 내린 건 11월 11일이다. 6개월 가까이 해당 제품이 멀쩡히 마트에서 판매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업체 이름을 밝히거나 제품을 수거할 수 없다’고 발뺌했다. 정부의 무책임 때문에 피해자를 줄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 사실 8월 질병관리본부 공식 발표 직후 실시된 국정감사에서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강한 해결 의지를 가진 것 같았는데.

    “부처 간 ‘핑퐁게임’으로 문제의 본질이 묻혀버렸다. 가습기살균제 문제에는 3개 부처가 관여한다. 공산품 판매는 기획재정부 관할이고, 역학조사는 보건복지부가 질병관리본부에서 진행한다. 또한 화학 물질은 환경부 담당이다. 문제가 발생하자 3개 부처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 당시 복지부는 “정부합동 TF를 구성해 생활화학가정용품에 대한 안전성 검증체계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TF는 없었다. 철저한 언론 플레이였다. 2011년 하반기부터 2013년 초까지, 정부가 한 일이 없다.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보상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보상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였다. 정권이 바뀌고 진영 당시 복지부장관이 취임하면서 정부 담당자를 처음 만났다. 그때 처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국민 혈세로 조의금’

    이후 심상정 의원 등 여야 의원 27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국회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어서 장하나, 심상정, 홍영표 의원이 특별법을 발의했는데 가습기살균제를 국무총리실에서 총괄하고, 환경부가 타부서와 협력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방안을 마련하며, 재난지역에 준하는 예산집행 계획안을 마련하고, 중증환자나 생계 곤란자 우선지원을 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상임위에서 입법공청회도 열고 피해자 발언에도 귀를 기울였다. 4월 말 국회 환노위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책 예산으로 50억 원을 신규 증액하는 추경안도 의결했다.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줄 알았다.”

    ▼ 아직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았는데.

    “특별법 발의 직후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폐질환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하는 내용으로 환경보건법 시행규칙 일부를 수정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게 보상해준다는 것이다. 그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보상을 미루던 정부가 특별법 통과를 앞두고 ‘꼼수’를 부린 거라고 본다. 그마저 ‘정부가 먼저 보상해주되 가해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논리였다. 해당 제품을 판매, 유통하게 허가한 정부는 정작 책임지지 않겠단 얘기다.”

    ▼ 추가 책정된 예산은 어떻게 됐나.

    “당시 50억 원 추경은 기획재정부 반대로 전액 삭감됐고, 2014년 국회 환노위가 증액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지원 예산 역시 대부분 삭감됐다. 기획재정부는 ‘국민 혈세로 조의금을 내는 꼴’이라는 식의 논리를 폈다.”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무책임한 정부·기업에 분노”

    2011년 11월 11일, 전병률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이 보건복지부에서 논란이 된 가습기살균제 6개에 대한 수거 명령을 발표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를 사망 원인으로 추정한 지 6개월 만이다.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았더라도 환경보건법 시행규칙 수정으로 피해자 보상 근거가 마련됐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강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2013년 7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당시까지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의심사례 394건에 대해 개인별 가습기살균제 관련성 평가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단이 환자 집을 직접 방문해 집안 환경 구조, 유해 요인, 가습기살균제 사용 증거 등을 살피고 환자 진료기록을 검토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정도를 밝힌다고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사에 나서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 3월 발표된 결과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 결과가 어땠길래….

    “조사 신청한 361건 중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이 거의 확실한 1등급 127건, 가능성이 높은 2등급 41건, 가능성이 낮은 3등급 42건으로 판정됐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4등급이 144건으로 가장 많았다.”

    ▼ 1~2등급을 받은 환자는 어떤 경우인가.

    “대부분 사망했거나 폐 손상이 중증인 경우다. 전문가들이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발생한 질환 범위를 ‘원인 미상의 폐질환’ 등 몇 가지로 한정했다. 본래 지병이 있는데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지병이 악화된 경우는 1~2등급 판정을 받지 못했다.”

    ▼ 3~4등급을 받은 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

    “상실감이 크다. 1~2등급으로 판정받는다 해도 지원이 충분치 않지만, 3~4등급을 받은 이들은 ‘국가가 판매를 허가한 제품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국가의 잘못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 인정받은 피해자는 어떤 보상을 받게 되나.

    “크게 의료비와 장례비인데, 최소한의 수준이다. 폐손상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치료비만 받을 수 있다. 사실 피해자 상당수가 가장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치료비 때문에 가산을 탕진했다. 이혼한 가정도 많다. 하지만 생계비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모임 정파성 논란도

    2013년 11월 1일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 샤시 쉐커라파카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장 많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사용한 제품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판매한 회사다. 당시 쉐커라파카 대표는 “우리는 진심으로 제품 유해성을 알지 못했다”며 “법률적인 절차를 거쳐 가습기살균제가 사망 원인으로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 먼저 인도적인 차원에서 5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해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강씨는 “쉐커라파카 대표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보상’이 아니다”라며 “그 기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두고 갈등 중”이라고 밝혔다.

    ▼ 무슨 문제가 있었나.

    “정부는 이 돈을 받은 후 환경부 내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해당 기금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산하단체인 환경보전협회에서 기금 운영을 맡고 9인의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각 관련기관 추천을 받은 전문가 7명과 피해자 대표 2명이 포함된다. 그런데 피해자 대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지난해 피해자모임 총회에서 피해자 대표 2명이 선정됐는데, 운영위원회 설립 직전 한 여당 위원이 ‘왜 야당 측 의견을 가진 피해자 대표들만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느냐’며 대표성을 문제 삼았다.”

    ▼ 피해자모임 내부의 문제인가.

    “피해자모임 구성원은 같은 원인으로 고통 받지만 그간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정치 성향이나 성격,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을 놓고 의견이 다르다. 그간 특별법 발의에 야당 의원들이 적극 나서다보니 피해자모임 대표단이 야당과 여러 차례 협의를 했다. 그걸 두고 여당 의원이 ‘피해자 대표들이 야당 의견만 반영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이후 모든 진행이 멈춰버렸다.”

    이에 대해 환경보전협회 측은 “여당 의원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박을 받은 적 없다”면서도 “피해자모임 내부에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간사 구실을 할 뿐이다. 내부 갈등이 봉합된 후 다시 운영위원회를 조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기 닦는 화학물질 들이마시게

    현재 대다수 피해자가 집단, 혹은 개인 단위로 국가와 업체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강씨는 “소송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경우,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업체 자체가 폐업해 소송할 곳이 없어졌다.

    “우리 가족은 ‘세퓨’라는 중소기업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를 썼다. 당시 인터넷에서 ‘친환경 선진국인 덴마크에서 쓰는 가습기살균제’라고 광고하며 판매했다. 하지만 사고 이후 폐업했다. 소송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

    피해자 중 가장 많은 수가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변호사를 고용했다. 옥시 측은 ‘피해자가 가습기살균제가 아니라 다른 세균에 특이반응을 해 사망한 것’이며 ‘정부가 동물 실험해 발표한 독성평가는 오류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손해배상 청구금액을 최대한 낮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당신들은 가족이 없나’라고 묻고 싶다.”

    ▼ 피해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소송을 위해 본인이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다는 영수증부터 챙겨야 한다. 수년 전 마트 구매 영수증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피해자 중 폐 이식을 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휠체어를 타는 중증 환자가 많은데, 이 사람들이 휠체어 타고 마트를 쫓아다니면서 본인 구매 내역 영수증을 찾는 실정이다.”

    ▼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런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시중에 유통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각종 제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종류만 5만 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중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10% 남짓하다. 문제를 제기하니 정부는 ‘모든 독성을 다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발을 빼더라. 가습기살균제의 원료가 되는 화학제품은 피부독성에 대한 규제가 있지만 호흡기로 들이마시는 호흡독성 관련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제조, 판매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 가족이 쓴 가습기살균제는 유럽에서 화장실 변기 세척제를 만드는 화학물질이었다. ‘인체에 무해합니다’라고 광고했는데 이는 피부독성이 없을 뿐 호흡할 때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물질이었다. 정부는 이런 부분을 관리 감독하지 못했다.”

    ▼ 다른 나라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문제가 없었나.

    “외국에는 가습기살균제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거주자가 많고 건조한 공기에 대한 우려가 커 가습기살균제수요가 있었다. 이를 노리고 업체들이 유해독성 물질을 이용해 무분별하게 가습기살균제를 제작해 판매했다.”

    ▼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나.

    “사고 이후 알아보니 2011년 문제가 터지기 몇 년 전부터 유아호흡기학회 등에서 가습기살균제를 호흡할 때 치명적인 독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내 손으로 아이를 죽였다’

    ▼ 피해자모임은 매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뭘 주장하나.

    “정부가 3~4등급으로 판정한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을 찾아주고, 폭넓은 책임을 인정하길 바란다. 향후 피해자를 관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화학물질을 더욱 엄격히 규제하길 요구한다. 먼저 가족을 잃고 피해 입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 제2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사실 우리 주장은 2011년 사고 초기 주장한 내용과 전혀 다를 게 없다. 나야 몸이 괜찮은 편이지만 중증 피해를 입은 사람은 휠체어 타고 호흡기 끼고 나와서 1인 시위를 한다.”

    ▼ 지금이라도 특별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나.

    “아마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특별법 제정은 유사한 사건이 났을 때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제성이 있다. 하지만 ‘매번 사고가 날 때마다 법을 만드나’ ‘현행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데 왜 법을 또 만드나’라는 ‘물타기 논리’가 팽배하다. 그 이면에는 정부가 절대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해서 가습기에 넣은 장본인이 바로 엄마, 아빠들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내 손으로 내 아이를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에 몸서리친다. 나 역시 아이가 ‘아빠, 나는 왜 항상 아파?’라고 묻는 날이 올까봐 늘 두렵다.”

    강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몇 차례나 “우리 사고는 세월호와 꼭 닮았다. 아니, 더 끔찍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사고처럼 전근대적인 하드웨어 문제로 발생한 거라면, 가습기살균제는 화학물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사람이 사망까지 이른 신종 사고다. 현재 스프레이, 물티슈 등 유사 화학제품 역시 호흡기 독성평가가 안 된 채 판매된다.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채 사용되는 신종 화학물질도 수만 가지다. 또 어떤 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 평생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내 딸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꼭 매듭짓고 싶다. 국민이 ‘내 가족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관심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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