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 발목 잡아선 안 돼”

새누리당 소장개혁파 ‘元祖’ 권영진 대구시장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4-10-22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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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혼란스러워하고 경제회복 어려워져
    • 박 대통령은 ‘정직한 소통’ 하는 분
    • 새누리당 바꾸려면 ‘영남 정치’부터 바꿔야
    • 현장 속으로…‘참여민주제 접목’ 실험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 발목 잡아선 안 돼”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권영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보좌역과 서울 신촌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그는 “당이 거꾸로 가고 있다. 수구보수화하고 있다”고 한탄하며 연신 잔을 들이켰다. 자리는 자정 너머까지 이어졌다. 얼마 뒤 그가 다리를 놓아줘 이 후보를 단독 인터뷰했다.

    인터뷰 당일, 이 후보 측에서 ‘후보님 집무실에 들어가선 목례를 한 차례 한 뒤 후보님 쪽으로 걸어가서 악수할 것, 인터뷰 시간 엄수할 것, 서면질의 외에 추가질의 하지 말 것’이라는 취지의 주문이 전달됐다. 당시 이 후보는 제왕적 후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권 보좌역은 나중에 이런 주문이 전달된 것을 알고는 기자에게 무척 미안해했다.

    이후 그는 2004년, 2008년, 2012년 총선 때 서울 노원에서 출마해 각각 졌고, 이겼고, 졌다. 그 중간에 서울시 부시장을 했다. 비박계로 알려진 그는 올해 친박의 아성 대구에서 새누리당 시장 후보가 되더니 ‘김부겸 바람’을 잠재우고 당선됐다.

    최근 대구시장 집무실에서 권 시장을 만났다. 그는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서로 알고 지낸 사이지만 어린 시절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 부분부터 물어봤다.

    사회주의자의 변신



    ▼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공부 좀 하는 말썽쟁이?”

    ▼ 성적은?

    “전교 2등과 200등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오갔죠. 공부 잘하는 친구, 싸움하는 친구, 운동하는 친구 다양하게 사귀었어요. 집이 경북 안동이었는데 방학 때마다 배낭 메고 친구 두세 명이랑 전국을 여행했어요.”

    ▼ 가정 형편은.

    “아버지는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나오셔서 작은 사업을 하셨어요. 세 번 부도난 회사를 맡아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죠. 아주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리 궁핍했던 것 같지도 않아요. ‘장남답게 동생들에게 헌신하라, 우리 집안이 선비집안이다,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을 일 하지마라’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씀을 귀에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는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 주변에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386정치인이 많은데, 권 시장께선 대학원에 가서 학생운동을 한 것 같더군요.

    “학부 시절 소위 언더에서 북한 바로 알기 운동,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운동을 했어요.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 학생운동의 전면에 나섰죠.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고 서울대, 연세대, 부산대 이렇게 여러 대학을 돌며 전국대학원총학생회를 조직했어요. 사회주의가 우리의 대안일 수 있다고 여기면서 지식인 사회가 대중운동을 주도해야 한다고 봤어요.”

    ▼ 지금은 사회주의자가 아니겠죠?(웃음)

    “철학적으로 급선회한 게, 사회주의 국가들이 추풍낙엽처럼 몰락하는 걸 지켜보면서부터였어요. 당시엔 노동운동이 학생운동을 좌지우지했죠. 노동운동세력은 늘 대중, 대중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게 내려오는 지시는 대중의 이익보다 자기 세력의 이익과 논리를 강압하는 쪽이었어요. 저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돌아가 공부를 새로 했죠.”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 발목 잡아선 안 돼”
    ▼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뭐가 다르던가요.

    “결국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 차이 같아요. 사회주의 인간은 운명이 결정된 인간이죠. 선인과 악인이 나눠집니다. 어떤 그룹은 절대 선으로서 이 사회를 지배해야 하고 어떤 그룹은 소멸해야 하죠. 타협이란 없어요. 적대적 투쟁만 존재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인간은 이성적이지만 부족한 점을 갖고 있는 인간이죠. 오류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을 인정해요. 이에 따라 관용을 바탕으로 타협과 양보를 통해 나아가죠.”

    소장개혁파 탄생 산파

    권 시장은 통일부에서 6년여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는 “밖에선 그림만 그렸는데 통일부에선 벽돌을 차근차근 쌓았다”고 말했다. 연형묵 북한 총리가 왔다 가면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남북협력기금이 생기고 통일연구원이 설립되는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정치논리로 통일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 ‘결국 정치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 누구를 통해 정치권에 들어가게 된 건가요.

    “이홍구 선생을 통해서죠. 정말 인품 있고 능력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정치에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시 학교로 가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는데 이회창 총재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좀 도와달라고. 제가 통일부에 있을 때 통일관계장관회의가 있었거든요. 이곳의 의사 결정이 느리니까 몇몇 사람이 대통령의 논리로 통일정책을 쉽게 주무르기 위해 통일관계장관전략회의를 따로 만들었어요. 공식 라인은 제쳐두고 빨리 끌고 가려고. 이회창 당시 총리는 법적 틀 내에서 하라며 반기를 들었죠. 그러면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졌고요. 제가 이 사정을 잘 알기에 ‘아, 이회창은 대쪽이 맞다.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분 곁에 가게 됐어요.”

    ▼ 무엇을 도와달라고 하던가요.

    “2002년 대선에 다시 도전할 텐데 한나라당에 젊은 부대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게 미래연대를 만든 일이죠. 제가 미래연대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고 그때 영입한 오세훈, 남경필, 원희룡, 임태희, 김부겸 등 6명이 공동대표를 맡았죠.”

    ▼ 소위 한나라당 소장개혁파의 태동…. 거기에 산파 노릇을 한 셈이네요?

    “네. 2000년 총선에 미래연대 이름으로 21명의 후보를 내보냈는데 14명이 당선돼 왔습니다. 이들 소장개혁파의 힘을 바탕으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했어요.”

    ▼ 그 구상대로 일이 됐나요.

    “2000년 총선이 지나고 나서부터 당의 수구화가 급격히 진행됐어요. 올드한 분들이 전부 전면에 나서고…. 이 총재는 ‘7년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고 2002년 대선에 실패했잖아요. 제게도 큰 번민과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2004년 총선 때 ‘아는 사람이 두 사람뿐인 동네’라는 서울 노원에 출마했다. 한나라당의 불모지에서 혁신적 보수의 깃발을 들겠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폭풍까지 불었다. 결과는 낙선. 1.9%포인트 차이의 아슬아슬한 낙선이었다.

    그는 “내겐 가장 좋은 약이었다.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는 9개 동 중 8개 동에서 이겼고 1개 동에서 졌다. 진 동네는 장애인 거주지와 임대아파트 밀집지로 그가 가장 공을 들였던 곳. 그는 “그때 깨달았다. 뭘 해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함께 같이 하자는 식이어야 한다는 사실을”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대기만 하는 자리”

    권 시장은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때 오세훈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오 후보를 도와 승리를 이끌었다. 그(1962년생)와 오 시장(1961년생)은 거의 동년배에 고려대 동문이고 같은 미래연대 출신이라는 개인적 인연도 있다.

    그러나 선거 후 그는 시장직인수위에 들어가지 않았다. 서울디지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한다. 오 당선인은 취임 9일 전 새벽, 부인과 함께 그의 아파트 입구에 찾아와 정무부시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그는 “싫다. 내외분이 부근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이나 드시고 가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오 당선인 보좌관, 노원구청장 등 주변 사람들이 채근하고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오세훈 도와주라”고 해서 맡게 됐다고 한다.

    ▼ 서울시에 출근해보니 어떻던가요?

    “언론 환경도 호의적이지 않았고, 시의회도 한나라당이 다수였지만 오 시장을 자기 편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당시 만 45세인 그를 ‘애’라고 보는 분위기였죠. 제가 오 시장에게 ‘시장은 시정(市政), 나는 바깥 일, 이렇게 나누자’고 했습니다.”

    ▼ 바깥 일이라면….

    “1년 365일 중 술 안 마신 날이 닷새밖에 안 돼요. 360일은 그냥 마신 게 아니라 완전 떡이 되게 마셨죠. 언론 관리 내가 했죠, 국회·시의회 관리 내가 했죠, 당원들 관리 내가 했죠, 시민단체 상대 몽땅 내가 했죠. 매일 저녁 약속이 두 탕, 세 탕. 서울시 출입기자가 몇 명쯤 될 것 같아요?”

    ▼ 글쎄요.

    “300명쯤 됐어요. 회식 한 바퀴 돌고 나면 6개월. 그러면 출입기자가 다 바뀌어 있어요. (웃음) 1년 되니까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오 시장에게 ‘나, 할 만큼 했다. 그만두겠다’고 했죠. 오 시장이 ‘왜?’라고 묻기에 ‘힘들어 못 하겠다’고 했죠. 오 시장이 ‘조금만 더 있자’고 해 6개월 더 있었어요.”

    ▼ 부시장과 국회의원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국회의원 4년 하면서 입버릇처럼 ‘부시장의 100분의 1의 보람도 없다’고 했어요. 부시장 땐 몸은 고달팠지만 정말 ‘해피’했어요. 제가 계획을 현실화해나갔으니까. 재산세 공동과세, 강남권 구들이 엄청 반발했지만 설득해서 했죠. 강남 양천 마포 노원의 자원회수시설을 서울시가 공동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 해당 4개 구가 반대했지만 일일이 조정해 했죠. 노무현 정부가 용산 미군기지를 상업용도로 개발해 이전비용을 충당하려 했을 때 여기에 맞서서 자연생태공원으로 관철시켰죠. 낙선의 경험을 살려 장애인의 정치 참여, 교통편의 시설 확충, 복지증진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덕분에 ‘장애인 부시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어요. 반면 국회의원은 만날 대기만 해요. 하나도 되는 일이 없어요. 소장개혁파니 뭐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죠.”

    ▼ 정쟁, 비생산성, 민생 외면…. 우리 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들인데요.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근본 원인은 정당에 있어요. 의원 개개인은 정치를 바꿀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 정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주무르고 있죠. 저는 후자를 바꿀 수 없어요. 새누리당이라도 바꿔야 더 나은 정치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정당의 기반이 영남이므로 영남 정치를 바꿔야 해요. 제가 대구에 내려오려고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타운홀미팅, 현장시장실

    ▼ 친박(親朴)계가 아님에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았는데….

    “친박은 계파가 아닙니다. 보스 격인 박근혜 대통령부터 계파 만들 생각이 없는 분이죠. 계파는 위계구조가 있어야 하고 지속적 동원이 있어야 해요. 이런 계파는 당에 없습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형성된 지지그룹의 모임일 뿐이죠. 특히 대구시민들은 친박·비박에 의미를 두지 않아요. ‘변화와 혁신, 누가 적임자인가’가 선택 기준이었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경선에서 승리할 수 없었죠.”

    ▼ 미래연대의 가치를 시 행정에 접목하고 있습니까.

    “소통과 협치. 미래연대가 고민한 과제이자 우리 보수정당이 넘어야 할 과제입니다. 민원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현장소통시장실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어요. 어제까지 37개 현장을 다녀왔어요. 제가 방문해서 묵은 민원을 듣고 이해시킬 건 이해시키고 해결할 건 해결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민원탁회의도 열고 있고요. 시민공약평가단이 제 공약을 재조정하고 있습니다.”

    ▼ 직접민주제 내지 참여민주제 성격 같네요.

    “대의제를 포기해선 안 되겠죠. 그러나 지금 대의제는 위기입니다. 보완하지 않으면 안 돼요. 직접민주제와 참여민주제 요소를 끊임없이 가미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튼튼한 대의제를 만드는 길이죠.”

    권 시장의 현장시장실이나 시민원탁회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타운홀미팅(Town Hall Meeting)과 성격이 비슷해 보인다. 미국에선 대통령이나 주지사가 언론과 의회라는 매개체를 건너뛰어 시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설득하는 이런 직접민주제 정치 행사가 많은 편이다. 또한 ‘고잉 퍼블릭(Going Public·대중 속으로)’ 담론처럼 대의제와 직접 민주제의 접목에 대한 찬반 논의도 활발하다. 우리 사회의 상황에서 권 시장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게 된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두 번 만난 것으로 아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대구의 현안을 부탁했어요. 최 부총리도 뿌리가 대구·경북이니까 이 고장에 큰 애정을 갖고 있고. 저희로선 대구의 경제발전이 제일 중요해요. 대구는 산업화 시대에서 지식기반 시대로 넘어오면서 경쟁력을 잃었어요. 1987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이었죠.”

    ▼ 얼마 전 대구시가 삼성과 함께 대구창조경제단지를 만들기로 했죠? 관련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참석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요.

    “대구엔 문자 그대로 변화, 혁신, 창조가 필요해요. 삼성이 참여하는 창조경제단지가 그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저는 몇 가지 전략을 실천하려고 해요. 대구의 뿌리 산업인 섬유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첨단화하자, 3개 대기업과 글로벌기업을 유치하자, 300개 중소기업과 500개 중견기업을 육성하자, 5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자, 이를 위한 창업기반을 만들자, 의료 물 에너지 로봇 같은 미래 산업을 선도하자…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규제? 기업을 위해 확실히 풀려고 해요. 얼마 전 ‘규제개혁 1등 도시’로 선포했어요. 요즘 기업체 임직원들은 자녀교육, 문화· 여가생활, 친환경을 매우 중시합니다. 기업이 정주하고 싶은 도시가 되도록 교육·문화·관광 서비스의 품격을 획기적으로 높이려고 합니다. 녹지도 늘려갈 거고요. 대통령 프로젝트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金·崔, 계속 이견으로 가면…”

    ▼ ‘초이노믹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초이노믹스는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을 뜻하는 말이다. 내수활성화, 민생안정, 경제혁신을 지향하며 정부 재정지출 확대, 부동산규제 완화,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 등을 구체적 정책으로 제시했다).

    “단기적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봐요. 내수 기반이 취약해 서민의 삶이 어려워요. 단기 처방을 해줘야 합니다. 그동안 관료들이 우물쭈물했던 것을 최경환 부총리가 과감하게 하고 있어요. 경제에 굉장히 유용합니다. 지금 정치가 뒷받침 되지 않아서 효과가 극대화하지 않지만요.”

    ▼ 그 부분과 관련해 최 부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이에 설전이 있었는데요. 어떻게 봅니까.

    “아니, 당은 우선 도와줘야 한다고 봐요. 표를 먹고사는 정당이 일부의 반감을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고 보지만, 근본적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표 때문에 발목 잡아선 안 됩니다. 이런 면에서 우려와 문제 제기는 하되 당은 이걸 반대하거나 막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완충과 균형과 조정을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 지금까진 균형과 조정이 조금 미비하다?

    “그 과정이라고 봐요.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에 우려를 표명하는 부분들은 그걸 막고 반대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과정이라고 봐요. 그러니 당정이 큰 틀에서 빨리 조정과 균형을 잡는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계속 서로 이견(異見)으로 가면 국민이 혼란스러워해요. 경제회복 효과도 안 나타나요.”

    ▼ 박 대통령에 대해 불통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옵니다.

    “두 가지 면이 있어요. 대통령이 가진 원칙이 유연성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기대에 못 미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정치가 대통령의 원칙을 못 따라가는 측면이 있어요. 대통령만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본 박 대통령은 가장 정확한 소통, 가장 정직한 소통을 하는 분입니다.”

    ▼ 어떤 이유로 그렇게 평가하나요.

    “박 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시방편을 취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통상적으로 우리 정치에서 소통으로 표현되는 립 서비스를 안 하죠.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두고 ‘소통이 약하다’고 해요. 우리 정치인들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지키겠다는 의지도 없이 편하게 립 서비스 하죠. 그게 일상화해 있어요. 정치의 미덕이 아니라 폐해죠. 다만 박 대통령이 조금만 더 유연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대통령의 소통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대통령만 불통이라고는 안 봐요.”

    ‘미래연대’ 세대의 꿈

    대구시청 로비엔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가 2016년 시즌부터 홈구장으로 쓸 2만9000석 대구야구장 모형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선수와 관람객 간 최단거리, 국내 최대 전광판, 팔각 다이아몬드 필드의 특색 있는 구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권 시장은 “‘대구’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싶다. 이 도시를 세련된 일류도시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권영진, 남경필, 원희룡…. 시·도지사가 된 이들 미래연대 세대는 지난 15년간 공유해온 이상을 이제 자신의 행정구역에서 실현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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