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9월 24일 제69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주요 일정 가운데 절반 이상을 외교 관련 업무에 할애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7~9월엔 캐나다와 미국 순방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보낸 49일 중 20일을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데 썼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니발 카바쿠 실바 포르투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도쿄도지사, 미국 하원의원 등도 청와대를 예방했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같은 주요국 경제인도 만난다. 새로 부임한 주한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수여하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가운데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도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다. 순방과 각종 외교 일정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대통령의 외교는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귀국의 이익에도 부합”
“분단 70년을 돌아보면 굴곡의 역사였습니다. 이산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대치 상태의 숨 막히는 긴장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고통과 긴장의 역사를 더 이상 후손들에게 물려줘선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는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10월 13일 2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통일을 위해 진격하자는 출정식처럼 비장한 발언을 쏟아냈다. 통일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나 평양 쿠데타설과 같은 북한 관련 소문은 신뢰하지 않는다. 폐쇄성이 강한 북한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기에 설익은 정보에 따라 판단하면 오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북한 급변사태로 인한 것이든 북한이 우리 영토를 침략할 경우 그 반격 과정에서든 통일이 갑자기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생각지 못한 때 찾아올 통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크게 세 가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첫째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일이다. 갑자기 통일이 닥쳤을 때 국제사회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전부터 고민해온 ‘통일 기반 구축’의 핵심이다. 9월 24일 뉴욕 유엔 총회연설장에 선 박 대통령은 15분짜리 연설의 3분의 1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썼다.
“통일된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출발점이자, 인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안정 속에 협력하는 동북아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그 자체로 유엔의 설립 목표와 가치를 구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이같은 통일 대비 행보에 대해 “각국 정상들과 회담할 때도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는 기록을 공동성명서에 꼭 첨부해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으로 안다. 갑작스럽게 통일의 순간이 왔을 때 이것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통일을 어젠다로 제시한 것은 집권 2년차인 올해부터다. 하지만 취임 후 모든 정상회담에서 상대 정상의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 의사를 확보했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북한과 별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들과의 정상회담 때도 꼭 언급한다.
박 대통령이 통일 문제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나라는 역시 중국이다. 시진핑 국가주석과는 통일과 관련해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베트남, 라오스 같은 공산국가와의 회담에도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다.

박 대통령이 7월 3일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맨앞)과 정상회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