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형 서점에는 혐한 서적이 즐비하다. 지금 일본은 ‘홧김에 서방질’하는 심정으로 한국을 때리고 있다.
-그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겁니까?
“예, 그는 일본의 역린(逆鱗)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일본인들은 타국으로부터 과거사 문제가 거론되면, 무조건 원숭이처럼 거듭해서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부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2012년 8월 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일왕의 사죄를 요구한 후 홋카이도대 박사과정에 있는 일본 지인과 나눈 대화다. 일본인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데 외국인인 내게 ‘역린을 건드렸다’고까지 했으니 어지간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최고 존엄’ 능욕?
그런데 양국 간에 뉘앙스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인들이 화를 낸다고 이해했으나, 일본인들은 일왕의 사죄를 요구한 것에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일왕에게 사죄를 요구했다는 데 대한 분노는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외교적으로는 이 대통령 발언이 좀 경솔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지금도 ‘진행형’인 혐한론(嫌韓論)이 본격화한 것 같다. 일본에 피해를 당한 우리는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은 우리가 간과한 다른 것을 근거로 분노를 표출한다. ‘일왕이 사죄해야 한다’는 데 대해 한일 간에는 큰 온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 발언은 일본 언론에, ‘일왕은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식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엎드려 사죄하라’는 식으로 와전됐다. ‘엎드려 사죄’는 일본어로 ‘도게자(土下座)’라고 번역되는데, 이는 조선의 인조가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와 맞먹는다. 일본인들은 제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에도 전범인 일왕 히로히토가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았는데, 승자가 아닌 한국이 전범도 아닌 현 일왕에게 ‘도게자’를 요구하니 ‘최고 존엄’을 능욕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기도 좋지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민주당이 이끈 일본은 ‘선진국’이란 자존심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공황상태에 빠져 칩거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가 방사능이 두려워 빨래도 수돗물 대신 생수로 한다는 폭로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일왕 부부가 아무 거리낌 없이 후쿠시마를 포함한 피해지역을 방문해 주민을 위로했다. 그러자 적잖은 일본 국민이 입헌정치에서 실종된 리더십을 일왕에게서 찾으려는 ‘정치적 퇴행’을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으니, ‘울고 있는데 뺨을 때린 격’이 됐다. 패전 후 수십 년간 봉인된 ‘우경화’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었다.
“한국에 한 방 먹이고 싶다”
그리고 한류 열풍을 만든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짝사랑은 일방적인 ‘배신감과 혐오감’으로 변모했다. 홋카이도대의 지인처럼 북한보다도 싫은 존재로 바뀌었다. 그에 발맞춰 일본의 옐로페이퍼들이 일방적인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덕분에 판매부수가 늘자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