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일본 납북자 문제 껴안아 北-日 ‘검은 거래’ 막자”

일본에 먹힐 한국의 통일전략

  • 김영림 │在日 통신원·군사평론가 c45acp@naver.com

    입력2014-10-23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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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이 건드린 일본의 ‘역린’
    • ‘통일한국’ 재 뿌리는 아베의 ‘헛발질’
    • 북-러-일본 신3국동맹
    • 日 고립시키는 친중외교 자제해야
    “일본 납북자 문제 껴안아 北-日 ‘검은 거래’ 막자”

    일본 대형 서점에는 혐한 서적이 즐비하다. 지금 일본은 ‘홧김에 서방질’하는 심정으로 한국을 때리고 있다.

    “김상! 지금 일본인 기분 같아선, 북한이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한국을 버리고 북한하고 동맹을 맺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겁니까?

    “예, 그는 일본의 역린(逆鱗)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일본인들은 타국으로부터 과거사 문제가 거론되면, 무조건 원숭이처럼 거듭해서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부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2012년 8월 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일왕의 사죄를 요구한 후 홋카이도대 박사과정에 있는 일본 지인과 나눈 대화다. 일본인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데 외국인인 내게 ‘역린을 건드렸다’고까지 했으니 어지간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최고 존엄’ 능욕?



    그런데 양국 간에 뉘앙스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인들이 화를 낸다고 이해했으나, 일본인들은 일왕의 사죄를 요구한 것에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일왕에게 사죄를 요구했다는 데 대한 분노는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외교적으로는 이 대통령 발언이 좀 경솔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지금도 ‘진행형’인 혐한론(嫌韓論)이 본격화한 것 같다. 일본에 피해를 당한 우리는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은 우리가 간과한 다른 것을 근거로 분노를 표출한다. ‘일왕이 사죄해야 한다’는 데 대해 한일 간에는 큰 온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 발언은 일본 언론에, ‘일왕은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식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엎드려 사죄하라’는 식으로 와전됐다. ‘엎드려 사죄’는 일본어로 ‘도게자(土下座)’라고 번역되는데, 이는 조선의 인조가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와 맞먹는다. 일본인들은 제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에도 전범인 일왕 히로히토가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았는데, 승자가 아닌 한국이 전범도 아닌 현 일왕에게 ‘도게자’를 요구하니 ‘최고 존엄’을 능욕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기도 좋지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민주당이 이끈 일본은 ‘선진국’이란 자존심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공황상태에 빠져 칩거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가 방사능이 두려워 빨래도 수돗물 대신 생수로 한다는 폭로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일왕 부부가 아무 거리낌 없이 후쿠시마를 포함한 피해지역을 방문해 주민을 위로했다. 그러자 적잖은 일본 국민이 입헌정치에서 실종된 리더십을 일왕에게서 찾으려는 ‘정치적 퇴행’을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으니, ‘울고 있는데 뺨을 때린 격’이 됐다. 패전 후 수십 년간 봉인된 ‘우경화’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었다.

    “한국에 한 방 먹이고 싶다”

    그리고 한류 열풍을 만든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짝사랑은 일방적인 ‘배신감과 혐오감’으로 변모했다. 홋카이도대의 지인처럼 북한보다도 싫은 존재로 바뀌었다. 그에 발맞춰 일본의 옐로페이퍼들이 일방적인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덕분에 판매부수가 늘자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실었다.

    최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의 발단이 된 박근혜 대통령 스캔들 오보 사건의 밑바닥에는 그들의 ‘최고 존엄’을 능욕한 것을 되갚고 싶다는 황색 저널리즘의 ‘관음증적 집착’이 깔린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중국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일본 언론은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 잡지인 ‘주간문춘’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하자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다’(7월10~17일자)란 제목의 특집을 게재했다. 일본 언론은 ‘친중적인’ 통일한국을 만들어주는 것보다는 한국의 ‘통일대박론’에 한 방 먹이고 싶다는 감정을 품었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강한 일본 재건’을 표방한 아베 정권이 ‘북-일수교’ 공작을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북-일수교 시도 같은 극단적 행동을 하기 전,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2012년 말, 박근혜 정부보다 조금 먼저 탄생한 아베 내각은 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바로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등 맹렬한 ‘러브콜’을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 발언 소동이 있었지만, 센카쿠 문제로 대표되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차갑게 거절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함께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북한체제를 결딴내야 한다고 결심한 듯했다. 올 초 박 대통령이 내놓은 ‘통일대박론’은 그 결심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였다.

    ‘통일대박’을 위한 외교 구도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두 가지의 선택지에 직면했다. 하나는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중시하되 북한의 스폰서인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분리·고립시키며 통일로 나가는 것이다. 둘은 일장일단이 있다.

    전자는 기존의 외교동맹관계를 해치지 않아 ‘보수적 안정성’이 있으나, 한미일 해양세력 강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이 돌출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은 북한을 영구 장악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후자는 중국의 한반도 무력개입 가능성은 줄일 수 있으나, 중국에는 눈엣가시인 한미일 삼각체제를 파괴하고, 나아가 한미관계를 붕괴시키는 공작으로 역이용될 수 있다.

    “차라리 북한과 소통”

    박근혜 정부는 일단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의 콜 정부가 대소(對蘇)외교에 주력해 가장 큰 외부장애 요인을 제거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국수주의자인 아베 신조가 이끄는 일본과 섣불리 관계를 개선했다가 야당의 ‘친일 프레임’ 공세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도 했을 것이다.

    남북통일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은 실질적인 키를 쥐고 있으나, 일본은 그 정도는 아닌 ‘미국에 딸려 있는 종속변수’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을 놓고 양자택일하라면 중국에 더 기울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 또한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 해서 쟁점인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에 대해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2012년 여름 ‘강한 일본’ 재건 요구에 편승해 탄생한 아베 정권은 더더욱 그러한 양보를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한국이 일본의 정상회담 요구를 거절하고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한국을 자극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일본과 대화하지 않은 박 대통령은 타국 정상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일본의 과거사 태도를 비판했다. 노다 전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의식해, 이를 ‘한국 토뿌(top·최고지도자)의 고자질 외교’라고 비난했다. 한국을 담당하는 일본 외교관 사이에서는 “차라리 북한과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그 자조가 실천으로 바뀐 게 일본인 피랍자 문제 해결을 빌미로 한 북-일수교 공작이다. 아베 정권은 역대 일본 정권 가운데 피랍자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올 3월부터 피랍자 가족의 상봉을 위한 대북공작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4월에는 일본에 온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피랍자 송환을 위해 대북접근을 하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일본 납북자 문제 껴안아 北-日 ‘검은 거래’ 막자”

    집단자위권을 향해. 북-일수교 공작을 추진할 정도로 우경화한 일본은 헌법을 개정해 전수방위를 포기하고 자위대를 군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가지를 요구했다. 모든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자세히 미국에 보고해줄 것,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었다. 이를 미국의 ‘암묵적 허가’로 받아들인 일본은 그 후 북-일수교 공작을 공개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한일관계의 파탄에서 북-일수교 공작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행보를 보면 ‘홧김에 서방질’ 하자는 충동이 보인다. 그러나 외교노선의 급전환은 감정적, 충동적 동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일수교 공작의 이면에는 당연히 정략적인 계산이 있고, 일본이 처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반영한 면도 있다고 본다.

    일본은 군사강국 아니다

    근대화 이래 일본은 아시아 최강국의 지위를 누려왔다. 지금도 대부분의 일본인은 일본을 ‘대국’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지금 일본이 동북아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궁색하다.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남북한을 제외할 경우 핵심변수는 미-중의 의향이지 일본의 뜻이 아니다.

    1·2년 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은 오랜 시간 ‘오로지 방어만 한다’는 전수(專守)방위 전략을 유지해왔다. 집단자위권을 확보한다고 해도 일본의 군사력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전수방위에 특화된 군사력으로는 중국은커녕 한국과 북한군에 대한 우위도 자신할 수 없다.

    한국을 상대로 한다면 지상군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일본이 빈약하다. 공군력은 방공 능력과 대함(對艦) 공격 능력에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나, 대지(對地) 정밀폭격 능력은 한국 공군보다 한참 열세다. 항공자위대가 대지 정밀공격 능력을 갖추지 않은 것은, 그것이 방어가 아닌 공격이므로 전수방위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군력만이 확고한 우세를 보인다. 그러나 원자력 잠수함과 항공모함, 해병대가 없어 전국(戰局)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이러한 설명을 믿지 못할 독자가 많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일본 자위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이 없다. 지난해 세계적 군사력 보고서인 ‘밀리터리 밸런스’는 일본의 국방비는 510억 달러, 한국의 국방비는 346억 달러로 밝혀놓았다. 자위대는 직업군이기에 국방비의 상당액을 인건비로 쓴다. 이 때문에 양국의 방위력개선비(전력증강비)는 100억 달러 남짓으로 비슷해졌다.

    따라서 집단자위권을 통해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한다고 해도, 현 시점에서 가능한 것은 다국적군에 대한 후방 지원이나 일본이 “전 세계에서 제일 우수하다”고 자부하는 소해(掃海)부대의 파견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일본의 군사전문가들도 인정한다(‘군사연구’ 2014년 10월호 참고). 이러한 능력으로는 북한 급변과 한반도 통일에 개입해도, 한국이나 미국에 크게 밀리기에 일본은 제 몫을 주장하기 어렵다.

    반대로 통일한국이 한미동맹 기조를 강고히 유지한다면,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비 축소에 따라 기대하는 ‘재무장을 통한 아시아의 헌병’ 로드맵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예상된다면 일본은 한국의 통일보다는 분단 고착화가 더 이익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통일한국이 친중이 아닌 친미 노선을 걸을지라도, 반일을 견지한다면 일본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에 약한 일본의 한계

    그렇기에 일본은 ‘한국의 친중외교를 과장해 한국과 미국을 이간한다. 다 죽어가는 북한에 수교와 피랍자 송환을 명분으로 한 경제지원을 해줌으로써 한중 양국을 견제한다’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 한국이 통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크게 돕지는 못해도 재를 뿌릴 힘은 남아 있다는 것을 한국 정부와 외교 당국자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혐한기류에 빠진 일본 국민에게 피랍자 문제 해결과 ‘한국 엿 먹이기’라는 통쾌한 외교적 ‘승전보’를 띄워준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달성되는 데도 결정적인 리스크가 있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의 외교적 불성실성이다.

    오바마가 아베에게 주문한 것과 달리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거나 일본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 대가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고 피랍자를 송환받으면서 북한에 건네줄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지원금은 100억~300억 달러로 거론된다. 이 돈은 죽어가는 북한을 회생시키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북한 지도부의 마음먹기에 따라선 남한을 상대로 ‘통일대전’도 치러볼 만한 규모다.

    그러한 지원을 했는데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폐기한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큰 낭패가 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결과가 된다. 오바마가 잠정적으로 일본의 북-일수교 공작에 동의한 것은 자국민(피랍된 일본 국민) 구출이란 보편적 인권 문제에 동의한 것이지 미국의 이익에 대해서까지 분탕을 치라는 것은 아니었다.

    ‘新삼국동맹’

    그런데도 아베는 자국민에게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려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러시아와 서방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남(南)쿠릴열도를 반환받기 위해 러시아에 재빠르게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북-일수교 공작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일본의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혐한론을 조장한 언론도 우려를 표시했다. 7월 31일자 ‘주간문춘’은 ‘일본·러시아·북한 신(新)삼국동맹의 악몽’이란 자극적 표제의 기사를 통해 아베 정권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 신삼국동맹은 과거 일본이 미국·영국 등과 외교적 불화를 빚어 고립되자 돌파구로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은 ‘구(舊)삼국동맹’, 즉 ‘추축동맹’을 빗댄 것이다.

    ‘주간문춘’과 인터뷰한 익명의 일본 정부 관료는 “미·중·한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한편으로, 세계에서 고립되는 북한·러시아와 관계가 개선되는 모습은 외교상 큰 마이너스다. ‘신삼국동맹’처럼 비친다면 악몽이다. 아베 정권은 민주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와 연계하는 ‘가치외교’를 제창하지만, 현실적으로 관계가 진전되는 곳은 독재국가인 러시아와 북한뿐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베 정권이 외교적 성과에 급급하면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함정은 북한의 약속 불이행이다. 북한은 핵 포기를 약속해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내고서도 비밀리에 핵무장에 성공한 전과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제거하며 수교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자국의 영향력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겨우 남아 있는 체면마저 잃게 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지 못하고 수교한다면, 일본은 주변국과의 어리석은 자존심 싸움으로 불량국가를 기사회생시켜준 바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북한 ‘채무’, 우리가 떠안자

    북-일수교는 성공하건 실패하건, 우리에게는 백해무익한 ‘남의 밥상에 재 뿌리기’다. 그러나 그런 일본이 밉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 대한 대항책으로 친중외교를 더 강화한다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홧김에 서방질’ 하는 것이다.

    우리의 대중외교가 어느 정도 먹히는 것은 한국의 뒤에 미국과 일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이 사라지는 순간 중국은 안면 몰수하고 패권외교를 구사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통일 뒤에는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한일 간의 감정적 악화는 이미 관성이 붙어버렸다. 일본이 북-일수교라는 무리수까지 들고 나온 상황이라 일본과의 관계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일본의 일반 국민까지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품게 된 지금은 더욱 어렵다. 외교적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면서 일본이 내민 북-일수교 공작이라는 ‘장군’을 저지할 우리의 ‘멍군’은 무엇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려는 도덕적 명분은 상당히 취약하다. 북한에 있는 일본인 피랍자 문제인데, 수교는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한 범죄자를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몸값’을 주고 범죄를 눈감으며 친구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 취약한 도덕적 명분을 우리가 건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대박론’을 통해 통일 의지를 천명했다. 그렇다면 합병의 대상인 부실기업 ‘북한’이 진 책무는 합병의 주체인 우리가 청산해야 한다. 일본인 피랍자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통일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인권적 공약으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문제와 함께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거론하는 건 어떨까. 이는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앙금을 해결하는 포석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다시 만난 홋카이도대 박사과정의 일본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피랍자 송환을 빌미로 한 일본의 대북수교가 한국의 통일을 교활하게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한국인은 같은 동포(북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 북한은 같은 민족이기에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저지른 문제도 같이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일본 국민도 한국의 통일 진정성을 실감할 것이다.”

    우리의 통일외교전략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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