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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인터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바텐더 알바’ 고려대 여학생의 고백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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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요즘 청춘은 정말 아프다. 치솟는 등록금과 취업난에 ‘스펙’ 열풍까지…. 황새 따라갈 엄두를 못 내는 뱁새 대학생들에게 정말 절실한 건 아주 약간의 금전적 여유다.
  •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밤 알바’를 거부하지 못하는 대학생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대학 학보사 기자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과감해져야 해!” 이렇게 되뇌며 화장을 시작했다. 눈가에 검은색 아이라인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굵게 칠하고 눈꼬리 쪽으로도 길게 그렸다. 체리주스 색 틴트를 바르니 입술이 새빨갛게 정열적으로 보였다. 백팩을 메고 책을 든 수수한 여대생은 온데간데없었다.

8월 27일 저녁 7시, 서관 2층 여자화장실에서 단장을 하고 건물을 나서자 한 친구가 “야, 화장이 너무 과한데…”라고 말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멈칫하면서 “이건 뭐지?”라는 경멸조의 호기심을 잔뜩 드러낸 것이었다. 나는 도발적인 내 얼굴 화장에 만족하며 일터로 출근했다. 고작 이틀 만에 내가 스스로 바뀐 것이다.

-9월 29일 ‘고대신문’ 1면 ‘그는 물었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 중에서

9월 29일 오후 8시. 퇴근길 버스에 앉아 있었다. 유난히 지친 하루였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관성처럼 엄지손가락으로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내렸다. 수백 명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저마다 뽐내듯 올려놓은 일상(日常)과 이상(理想), 그리고 사상(思想)…. 그 사이에 눈에 띄는 게시물 하나가 있었다.

댓글 200개, 조회 수 1만 건



고려대 학보 ‘고대신문’ 페이스북에 올라온 ‘고대신문 여기자의 바텐더 체험기’였다. 고대신문 기자 유민지(21) 씨가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토킹바에서 한 달간 바텐더를 체험하고 쓴 기사였다. A4용지 5장 분량쯤 되는 기사를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그리고 곧장 모바일로 유씨에게 e메일을 보냈다.

“고대생 바텐더라는, 특수한 상황을 설정해 보여주면서 등록금, 알바 문제까지 건드린 접근이 참 도발적이면서 참신하네요.”

곧이어 카카오톡으로 한 뼘 넘는 답장을 보내온 유씨와 10월 6일, 13일 두 차례 만났다. 한 달 이상 그가 경험한 바텐더 체험기와 함께 대학 언론의 현실, 그리고 요즘 대학생 문화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를 나눴다.

유씨가 쓴 기사는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고대신문 기사 최초로 인터넷 조회 수 1만 건을 돌파했고, ‘ㅍㅍㅅㅅ’라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기사를 링크하면서 댓글이 200개 넘게 달렸다. 반응은 비판과 비난이 공존했다. “성을 상품화했다” “자극적 소재의 옐로 저널리즘” 등 유씨와 고대신문을 비판하는 댓글도 많았다.

이에 유씨는 “비난하는 댓글조차 관심이라는 생각에 반가웠다”고 말했다. 고대신문 주간인 박재영 미디어학과 교수는 “최근 대학 언론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인데, 이처럼 대학 신문에 실린 기사가 사회적인 관심을 끌어낸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이 기사는 대학 언론 기자가 한 달간 체험해서 쓴 최초의 내러티브 기사”라고 평가했다. 현재 고대신문의 취재기자는 6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고대신문 관계자는 “수시로 수습기자를 모집하지만 합격자 절반 이상이 일주일을 못 버티고 나간다”며 대학 언론의 현실을 전했다.

유씨는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3학년으로 올 초부터 고대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길게 뻗은 두 다리 때문에 실제 키(168㎝)보다 훨씬 커보였다. 허리를 높게 올려 입은 짧은 치마가 큰 키를 더욱 강조했다. 풍성한 웨이브 머리와 뾰쪽한 빨간 입술, 쌍꺼풀 없이 도톰한 눈매가 꼭 홍콩 여배우 수치(舒淇)와 닮아 보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정열적인 느낌이 좋아 스페인어학과를 택했다”고 발랄하게 재잘거렸다.

질문을 받으면 한참 머릿속에서 질문내용을 곱씹은 후 짧게 답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살짝 불편한 듯했다. 앳된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토킹바 어두운 조명 아래 서 있을 유씨를 상상해봤다. 사실 남자 동료들을 따라 비슷한 업태의 바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20대 후반 남짓이었을‘언니’들과 웃으며 대화도 많이 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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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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