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재벌 재산 절반만 내놔도 복지 수준 확 달라질 것”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14-12-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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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교회 예산 1% 통일기금으로 적립하자
    • 기회 된다면 北 김정은 만나겠다
    • 조용기 원로목사 설교 중단은 교인 선택권 박탈
    • 이건희 회장 벌떡 일어나 ‘전 재산 기부’ 선언하면…
    • 보편적 복지보다 선별적 복지를
    “재벌 재산 절반만 내놔도 복지 수준 확 달라질 것”
    여의도로 넘어가는 마포대교에 은행잎이 너덜너덜 흩날린다. 멀리서 겨울의 발걸음 소리가 희미한 포성처럼 들린다. 낙엽이 머물던 자리는 곧 흰 눈으로 채워질 것이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긴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영훈(60) 목사는 희망을 얘기했다.

    이 목사는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등록교인 49만7000명)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2014년 9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했다. ‘신앙은 보수, 행동은 진보’라는 지론을 가졌기에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을 지낸 그가 보수 성향의 한기총 회장을 맡은 건 ‘이례적이지만 예정된’ 변신이라 할 만했다. 11월 하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 나이가 들어선지 낙엽을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고.

    “시간을 의미 있고 보람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고 한 번뿐인 인생인데, 우리 사회는 불필요한 일에 너무 에너지를 쏟고 낭비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워요.”

    ▼ 2014년의 가장 큰 사건은 세월호 참사인데, 순복음교회 교인들이 두 번인가 안산시장을 찾아갔지요?



    “인천순복음교회를 포함하면 우리 교단(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에서 세 번 갔죠. 처음 갔을 땐 마치 죽은 도시처럼 적막감이 감돌았어요. 가게 문은 열어놓았지만 물건 사는 사람이 없었지요. 시장을 찾기 전에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어요. 첫째, 깎지 말라. 둘째, 전도하지 말라….”

    “힘 가진 쪽에서 양보해야”

    “재벌 재산 절반만 내놔도 복지 수준 확 달라질 것”
    하루 4시간 잔다는 이 목사의 눈동자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엔 생기가 넘쳤다. 트레이드마크 같은 푸근한 미소도 여전했다. 그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한민국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절망만 얘기해왔다”고.

    “그날이 대한민국 시계가 멈춘 날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정치권과 유족 간 갈등의 연속이었죠. 거기엔 정부의 엉거주춤한 태도도 한몫했고요. 9·11 테러 났을 때 미국인 30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일주일 만에 정치권이 합의해 원만하게 수습했어요.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으면 안 된다’면서. 새로운 내일을 향한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죠.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절망만 얘기했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꿈과 희망을 얘기하자. 어떻게?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그래서 (안산시장에 가서) 물건 사는 일을 시작한 겁니다. 세월호 관련 모든 재판이 끝날 때까지 두 달에 한 번씩 가기로 했어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공방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민생과 시급한 정책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정쟁에 국민은 지쳤다. 관용과 포용을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봤을까.

    “가장 큰 문제는 힘을 가진 쪽의 양보가 부족한 데 있어요. 노사관계나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유가족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을 때 정부에서 즉각 이를 수용하는 답변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면 더는 그런 말 안 하거든요.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진상 규명을 요구해요. 정부가 모든 문제에 대해 투명하고 당당하게 처리했다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가 정부 관계자한테도 얘기했어요. 왜 유가족 요구에 곧바로 답을 주지 않고 애매모호한 말로 늑장부리느냐고. 그러니 더 오해가 생긴 것 아니냐고. 천안함 사건도 처음부터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그토록 의혹이 커지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걸 진실하게 얘기하고 사과할 건 사과했다면.”

    ▼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근본적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불신이 굉장히 깊습니다.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다 공개했어야 한다는 제 말이 바로 그 뜻입니다. 결국 나중에 CC(폐쇄회로)TV니 동영상이니 해서 (진상이) 다 드러났잖아요. 잘못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과하고 시작했더라면 훨씬 덜 섭섭했을 겁니다.”

    ▼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논란도 그렇지요.

    “사실 별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처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다보니 이상해진 거예요. 오해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상황이 됐죠.”

    ▼ 세월호 참사는 인재(人災)였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이었지요.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신학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빚은 참사죠. 이 사건에서 우리가 꼭 짚어야 할 문제는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의식과 사명감입니다.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지도적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성을 반성해야 해요. 철저한 반성과 회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계 분열과 이단 논란

    한기총 대표회장 임기는 2년이다. 하지만 이 목사의 임기는 2016년 1월까지다. 자진사퇴한 전임 회장 홍재철 목사의 잔여 임기인 까닭이다. 2012년 18대 회장에 이어 2014년 19대 회장에 취임했던 홍 목사는 선거 부정, 교단 분열 등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현재 보수 기독교계는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으로 분열된 상태. 201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탈퇴한 것이 한교연 결성의 계기가 됐다. 이후 한기총이 이단 시비에 휘말린 일부 교단을 회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양측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이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 위기에 처한 전임 회장의 꼼수가 아니냐는 거죠. 전임 회장과 그 추종세력에 이 목사님이 실권 없이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저도 들었습니다.”

    그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이 아니고요. 전임 회장님의 결단 덕분에 제가 그 자리에 가게 된 거죠. 취임할 때도 밝혔지만 한국교회 연합에 힘을 쓰고 논란이 된 이단 문제를 임기 중 해결하겠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가 통일을 준비하는 데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1월 한기총은 천사동원설을 주장하는 다락방 류광수 목사를 이단에서 해제했다. 12월엔 전도관과 통일교의 혼합 교리로 역시 이단 소리를 듣는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도 받아들여 한기총 분열의 빌미를 제공했다.

    ▼ 사실 순복음교회도 초기에 이단 시비에 휘말렸잖아요? 교계 일부에선 주류와 비주류가 있을 뿐 정통과 이단 시비는 주류 세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통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해명한다면 함께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교회 연합을 위해 좋다고 봅니다. 사회윤리적 통념도 중요한 기준이겠죠. 신앙을 내세워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면 안 되죠. 노예처럼 인권을 무시당하거나 모든 재산을 갖다 바친다거나….”

    ▼ 그래도 그쪽에선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겠죠.

    “선택이라기보다 세뇌로 봐야죠.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세뇌해 잘못된 길로 이끄는 건 막아야 합니다.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선도해야죠.”

    ▼ 이단이나 사이비, 혹은 유사 기독교 단체가 많다는 건 그만큼 기존 교단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뜻 아닐까요.

    “사회적 불안 탓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해요. 없는 사람들의 사회적 박탈감이 심하다보니 급진 좌파가 생겨났어요. 남미에서 유행했던 해방신학도 그런 거죠. 물론 기존 종교가 제 기능을 못하고 불신받는 것도 큰 원인이죠.”

    ▼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이 강제로 차에 태워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한기총 소속 목사가 주도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인권 침해 시비도 있고요.

    “그 사건의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잘못된 길로 빠진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이 꼭 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건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통일 준비하자”

    이단 문제와 관련해 이 목사는 최근 250여 개 기독교 교단과 교계 단체 등에 공문을 보내 이의 제기를 받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문제가 된 두 교단의 이단성을 재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한기총과 한교연 사이엔 우호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한교연은 이 목사의 행보를 반기면서 재통합에 적극적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목사의 꿈은 보수 개신교 통합에 그치지 않는다. 진보 성향인 NCCK와도 연대해 범(汎)개신교 협의체를 꾸리겠다는 구상이다. 협의체를 통해 북한·통일 문제를 비롯해 노사갈등, 다문화가정 등 갖가지 사회 현안에 대해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불교, 가톨릭 등과의 연대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 환자를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부터 해야겠지요. 목사님께서 생각하는 한기총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한기총뿐 아니라 많은 교단에서 문제가 돼온 것이 금권선거잖아요. 저는 정말 어떤 선거비용도 안 치르고 추대 받아 대표가 됐습니다만…. 서로 경쟁하고 당선되기 위해 돈을 쓰는 선거 풍토를 없애려면 많은 사람이 추대한 후보를 투표 없이 총회에서 인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평소 북한 지원을 강조한다. 물론 북한 정권이 아닌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다.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사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교회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통일과 관련해 어떤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내년(2015년)이 광복 70년입니다. 북한이 워낙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통일이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게 한국의 5500여 개 모든 교회가 1년 예산의 1%씩을 통일기금으로 적립하자는 겁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교회와 학교, 병원을 짓는 데 많은 돈이 들 겁니다. 그때 적립한 기금을 유용하게 쓰자는 거죠. 새해에 정식으로 캠페인을 벌이려 합니다.”

    “대북전단 불필요”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에 지지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순복음교회의 북한지원사업 중 대표적인 것이 심장병원 건립이다. 2007년 평양에서 착공했는데,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공사가 중단됐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교류를 전면 금지한 5·24 조치 때문이다.

    “6개월이면 마무리할 수 있는 공사가 5년 넘게 중단된 상태예요. 물자가 못 올라가니. 북한 당국자들도 이 병원을 남북 갈등의 상징으로 봅니다. 통일부에서도 이 문제를 풀려 하는데 협상이 잘 안 됩니다.”

    ▼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남북 갈등은 물론 남남 갈등까지 빚어졌습니다. 한쪽에선 북한 동포에게 남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도움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남북화합과 통일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굳이 그것 안 보내도 남한이 잘사는 것 다 압니다. 고위층은 물론 일반 주민까지. TV와 DVD 통해 볼 것 다 보고 있어요. 한류가 뭔지도 다 알아요. 북에서 우리 대통령의 사생활 관련 루머가 담긴 삐라를 남쪽으로 날려 보낸다면 우리 국민이 좋아하겠습니까. 최고 책임자에 대한 인격모독으로 받아들이죠.”

    ▼ 남북관계가 안 풀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북한의 위협이 가장 큰 문제지요. 핵개발, 미사일 실험으로 계속 위기를 고조하니….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가 막혔는데, 이럴 때 종교계에서 뚫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계를 대표해 김정은을 만나는 건 어떻습니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겠죠. 지금 우리가 북한에 나무심기도 시작했고, 100여 군데에 보건소도 세우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정부가 대북관계에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문을 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북한 가보고 싶은 사람 갔다 오라고. 북한에 수백 명, 수천 명이 갔다 온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손해 끼칠 일이 없습니다. 수천 명이 갔다 오면 북한의 수만 명, 수십만 명에게 한국이 자유로운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약이 너무 많아요. 누구는 가면 안 되고 뭐는 전달하면 안 되고…. 뭘 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너무 마음에 여유가 없이 경직된 게 아닌가 싶어요.”

    ▼ 그쪽에서 자꾸 위협하고 사고를 치니까….

    “그럴수록 더 냉정하게 대응해야 해요. 없는 사람이 떼쓰는 겁니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면서 한 대 맞았다고 두 대 때리려 해선 안 되죠. 잘 달래야죠. 우리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갑의 처지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만으론 안 된다”

    “재벌 재산 절반만 내놔도 복지 수준 확 달라질 것”

    이영훈 목사는 “교회나 사회나 정의와 사랑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려졌다시피, 순복음교회는 지난 몇 년간 조용기 원로목사와 그 가족을 둘러싼 잡음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조 목사 가족과 친인척, 일부 장로들, 국민일보 노동조합 간의 분쟁은 법정으로 옮겨졌다.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목사는 2014년 2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 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들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도 이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형량을 낮춰 똑같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에 따라 조 전 회장은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 불편하시겠지만, 조용기 목사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유죄판결이 나온 후 일부 장로들이 조 목사의 설교 중단을 요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교회 재판에 회부됐다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나요.

    “문제가 된 것은 현재의 일이 아니라 과거 조 목사님 가족에 관한 일입니다. 목사님 가족으로 인해 교회가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었고….”

    ▼ 조 목사와 그 가족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장로들의 행동이 잘못된 건가요.

    “그분들은 공의, 정의 차원에서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정의와 사랑이 함께 가야 하는 곳입니다. 사회도 정의만 내세우면 피폐하듯이 교회도 공의만 내세워 잘못을 지적하면 성도들이 실망감과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교인들이 떠나가면 교회에 또 다른 피해를 입히는 거지요.”

    ▼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건가요.

    “문제가 된 장로들의 교회 내 모든 자격을 정지하고, 주도한 3명은 제명하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총회에서 다시 풀었습니다.”

    순복음교회는 일반 법원처럼 3심 제도를 운용한다. 1심인 당회 당기위원회는 조용기 원로목사 부자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장로 29명에 대해 징계를 결정했다. 그중 3명은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심인 지방재판위원회에서는 이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에 해당되는 총회 특별재판위원회는 이들 전원을 사면복권했다.

    논란이 일었지만, 조용기 목사의 일요일 4부 설교(오후 1시)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선택권’을 강조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독립한 지교회가 20개가 넘어요. 그리고 전국 650개 교회가 위성으로 함께 예배를 봅니다. 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싶어 하는 신도가 많아요. 그분들의 선택과 소망을 짓밟을 순 없지요.”

    ▼ 조 목사께서 한국 교회에 끼친 공, 특히 순복음을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시킨 공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가족 문제, 재산 문제, 공금 비리에 이어 여자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렇듯 과오가 크니 공이 많더라도 교회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는 게 순리이지 않느냐는 시각이 많습니다.

    “아니, 실제로 교회 내 모든 공직과 직함을 내려놓고 저한테 다 위임했습니다.”

    ▼ 복지재단에서도요?

    “대부분의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설교는 다른 영역이지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끊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혁명적 조치’

    ▼ 그것이 교회의 대외적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득실을 따진다면….

    “그런 걸 떠나 저의 영적인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그분을 잘 모시는 것은 제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교회의 중요한 임무라고 봅니다. 새로운 리더가 나타날 때마다 전임자의 그림자를 지운다면 역사 인식이 부족한 거죠. 과거의 실패나 실수를 새로운 발전의 토대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 목사님의 좋은 점은 계승하고 문제가 된 부분은 하나하나 해결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다보니 특히 재정 투명성이 문제가 됐습니다. 2008년 제가 취임한 후 재정을 완전히 공개했습니다. 1년에 석 달가량 회계법인에서 4명이 나와 교회 재정을 감사해 보고서를 냅니다. 예산의 3분의 1은 구제와 선교에 씁니다. 지금은 누구도 재정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순복음교회 안팎에서는 이 목사의 교회 재정 공개를 ‘혁명적 조치’로 평가한다. 이전까지 조 목사와 그 가족, 회계 담당자 등 소수의 사람만이 알던 내역을 모든 교인에게 공개해 교회 재산 사유화 등 비리가 개입될 소지를 원천 차단했다는 것이다.

    ▼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는 공의 못지않게 화해와 용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법정에서 세월호 선장에 대해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은 데 대해 유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분노합니다. 성직자로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법은 공정하게 집행돼야 하고, 사회 부조리나 악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다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하고 뉘우친다면, 즉 그들이 유가족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변화한 모습을 보인다면 관용을 베풀 수 있겠죠.”

    ▼ 사실 법리적으로는 살인죄를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해요. 그런데 국민정서 때문에….

    “법치국가에서 법을 감정으로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봅니다. 다만 진정 뉘우친다면 관용과 용서를 베풀 수 있다는 거죠.”

    ▼ 최근 무상보육, 무상급식 논쟁이 뜨겁습니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대립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복지에는 차등을 둬야 합니다. 제가 강남 학부모들에게 직접 들은 얘깁니다. 자기네는 무상급식이 고맙긴 하지만 사실 필요 없다는 거죠. 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반깁니다. 성경의 복지는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치의 힘으로 지원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선심성으로 제공합니다. 재원 마련은 나중에 생각하고, 인기나 표를 의식해 우선 쓰고 보는 거죠. 보편적 복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9회말 역전 만루홈런

    ▼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이 화제가 됐습니다. 부의 불평등, 세습자본의 문제를 다뤘죠. 목사님은 전에 저와 인터뷰할 때도 재벌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 시점에서 한국 재벌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본다면….

    “우리나라 재벌 중 누군가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가진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는 운동을 시작한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이 확 달라질 겁니다. 대학 반값 등록금도 2조 원이면 된다는데, 대기업에서 그 정도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돈을 쌓아두고 안 풀잖아요.”

    ▼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아니죠. 자발적으로 내놓는 거니까.”

    ▼ 재벌이 보기엔 급진적인 사고겠지요.

    “아니, 한국 역사에 남는 재벌이 되는 거죠.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게요. 제가 신앙인이니까 엉뚱한 꿈을 꿔봐요. 만약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 재산 가진 게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 다 내놓겠다’라고 선언해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고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있어요. 미국의 록펠러가 실제로 그랬습니다. 록펠러는 50대에 중병으로 죽게 되자 많은 재산을 쌓아둔 것을 반성합니다. 사회에 내놓겠다고 결심하자 건강이 회복됐어요. 90세까지 살면서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 내놓은 재산이 당시 일본 정부 1년 예산의 8배였다고 해요. 록펠러는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겠다고 했죠. 야구로 치면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이죠.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 우리 사회에서는 꼴통보수와 급진좌파가 늘 문제를 일으킵니다. 특히 급진좌파는, 세월호 사건에서도 그랬듯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이용해 유언비어와 무책임한 언동으로 분열과 대립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여기에 일부 급진적인 종교계 인사들이 가담하는데, 이들의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순수한 종교적 열정이나 사명감인지, 아니면 정치적 행위인지.

    “급진적 진보, 즉 사회질서를 파괴하면서까지 개혁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쪽 계통에 있는 어느 교수와 얘기했다가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급진 좌파의 폭력성을 지적하자, 그걸 합리화하더라고요. 권력의 폭력이 더 무섭기 때문에 자기네는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는 보수, 진보의 개념을 간단한 이분법으로 정리했다. 보수는 지키는 것이고, 진보는 바꾸는 것이라고.

    “꼴통보수는 지키지 않아야 할 것을 지키고 바꿔야 할 것을 안 바꾸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진보는 바꾸자는 건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바꿔야지 법을 무시하면 진보의 정체성을 잃은 거라 생각해요. 보수와 진보가 조화를 이뤄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그간 우리 사회가 성장 일변도로 달려와 뒤늦게 분배를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분배에 치우친 양상입니다. 보편적 복지 같은 게 성장의 발목을 잡아요. 두 개가 나란히 가야죠.”

    ▼ 예부터 성직자는 영적 지도자로서 국가 통치자에게 조언을 해왔습니다. 박 대통령의 잘잘못을 지적하신다면.

    “그분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지적됐던 문제가 아직 안 풀리는 게 있어요. 바로 소통입니다.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것 같은데, 소통이 안 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와 답답합니다. 약자와 소외된 자들의 얘기를 들어만 줘도 그런 얘기가 덜 나올 텐데….”

    “국모 노릇 해주길…”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가 들린다. 주변에 따르면, 이 목사는 박 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일이다. 꽤 비중 있는 정치인이 이 목사에게 “대통령 만나면 꼭 소통의 문제를 지적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목사가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소통’을 얘기하자 박 대통령이 반문했다. “제가 그래요?” 이어 “제가 소통은 잘하는 편인데요”라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머쓱해져서 더 얘기를 못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이 목사는 청와대에 4차례 들어갔다. 당시 이 대통령은 주로 일요일 저녁에 목사들을 초청해 예배를 보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각계각층 사람들을 불러 식사하거나 얘기하면 그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다 대통령 편이 돼줄 텐데…(웃음) 아쉬움이 있어요. 남은 임기 동안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얘기에 귀 기울이고 품어주는 국모 노릇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할 때 손이라도 한번 잡아줬다면 좋았을 텐데요. 교황이 오기 전에 말이죠.

    “아쉽죠. 따뜻한 국밥이라도 나눠 먹으면서 같이 울어주셨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대통령 잘못만은 아니라고 봐요.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거죠. 왜 그런 자리를 못 만들어냅니까.”

    ▼ 사실 교황이 와서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돌아갔지만, 대외적으로 좀 창피하기도 했지요. 우리 대통령이 그 역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죠.

    “그분이 와서 원론적 얘기만 하고 갔거든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는데…. 그분이 행동을 한 건 아니거든요.”

    ▼ 그런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좀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언론이 그런 문제점을 대통령에게 자꾸 말해줘야 해요. 언론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 이 인터뷰 기사는 신년호에 실립니다. 새해 소망에 대해 한 말씀해 주세요.

    “이제 더는 절망을 얘기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얘기해야 합니다. 과거 회귀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꿈과 희망을 갖고 내일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각자의 마음가짐을 업그레이드해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자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한 지 2주쯤 지나 대통령 비선(秘線)의 권력암투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한 해를 반성하며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시점에 우리 사회는 또다시 분열의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라면 “새해엔 꿈과 희망을 갖고 전진하자”는 이 목사의 소망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10년 시작된 순복음교회의 연말 희망나눔 행사는 5년째 계속된다. 서울시 각 구에서 지정한 극빈자와 장애인 등 1만8000가구에 쌀, 식용품 등 10만 원 상당의 생필품 세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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