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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판결의 오류를 상식으로 뒤집겠다고?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판결의 오류를 상식으로 뒤집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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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그러지 않았겠어’라는 믿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이나 만삭부인 살해사건에서, 부인을 살해하는 장면을 본 사람이나 그걸 기록한 CCTV 자료가 없는 한, 남편이 범인이라는 것을 100%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확신이 들면 유죄고, 그에 못 미치면 무죄가 선고된다. 아니 무죄가 선고돼야만 한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판결은 때로 바뀔 수 있다. 이는 누구의 잘못이나 오류가 아닌, 그냥 사법체계의 본질에서 비롯된 한계다.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

사법 판단에 내포된 불확실성이라는 본질은 법률을 공부하는 전문가들이나 사법체계 종사자들이 논의하기를 원치 않는 개념이다. 사법 판단의 불완전성, 오류 가능성과 연결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법률 원칙은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유죄가 확정, 선고되기 전까지 모든 피의자를 무죄로 간주하는 무죄추정의 원칙, 법정구속을 포함해 법률에 근거한 모든 불이익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확신을 요구하는 원칙들이 바로 그러하다.‘열 명의 도둑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 바로 사법체계의 근간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법망을 피해가는 나쁜 놈의 숫자보다 (전혀 없지는 않지만) 억울하게 처벌받았다는 사람의 숫자가 더 적다. 실제로 수많은 나쁜 놈이 법망을 피해간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게 된다. 하지만 나쁜 놈을 하나라도 더 처벌하기 위해 확신의 수준을 좀 낮춰 잡고, 그래서 만약 나 자신이 억울하게 처벌받을 확률이 커진다면 이걸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다. 



사법 판단은 본질적으로 진실 규명이 아니라(물론 진실 규명이 궁극적 목표이기는 하지만) 어떤 판단 오류의 위험을 감수하느냐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판사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사법 판단에서 유죄 판결을 내릴 때는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할 오류의 가능성을 떠안아야 한다. 반대로 무죄 판결을 내릴 때는 진범을 풀어줄 오류의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오류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비슷한 개념들과 일맥상통한다. 통계학적인 개념에 비유하면, 처벌 오류인 전자는 1종 오류에 해당하고, 무처벌 오류인 후자는 2종 오류에 해당한다. 또한 심리학의 신호탐지이론(signal-detection theory)에서는, 처벌 오류인 전자는 허위경보(false alarm)에 해당하고 무처벌 오류는 놓침(missing)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레이더 기지에서 적기의 기습을 감시하는 레이더병은 레이더에 나타난 수상한 물체가 적기인지 새떼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적기가 날아오는데도 새떼로 오인하면 아군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반대로 새떼인데도 적기로 오인하면 아군은 쓸데없는 경계태세로 물질적 손해를 입고 피로감만 쌓이게 된다.

이런 개념들의 특징은 한 종류의 오류를 막으려면 다른 종류의 오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레이더병의 상관이 평소에 절대 적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면, 레이더의 애매한 신호에도 레이더병은 쉽게 비상사태를 외칠 것이다. 이때는 당연히 허위경보의 빈도도 높아진다. 반대로 상관이 쓸데없는 허위경보로 인한 피해를 강조한다면, 레이더병은 웬만하면 비상벨을 울리는 것을 망설일 것이고 실제 공습을 놓치는 빈도가 높아질 것이다. 

사법 판단의 오류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단지 사법체계는 제도적으로 허위경보와 1종 오류, 즉 처벌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게 차이다. 그래서 사법부의 판결은 국민의 기대에 늘 미흡하다. 세월호 사건, 윤 일병 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만삭부인 살해사건 등과 같은 일반적인 형사사건은 불쌍한 피해자가 억울한 피해를 당했기에, 국민에게 강한 처벌 욕구를 일으킨다. 그래서 반드시 나쁜 놈을 잡아서 처벌하고픈 마음과 동시에 그 나빠 보이는 놈을 처벌하지 못할 때 강한 자책감과 함께 불안감을 갖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너무나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처벌 오류를 피하려는 사법부를 보면, 마치 무슨 눈치를 보는 듯한, 피의자를 처벌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 왠지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법부가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일반 국민을 만족시키려는 판결을 내린다면 사법 판단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다. 동시에 원칙을 지키는 사법부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판결의 오류를 상식으로 뒤집겠다고?

세월호 사고 피의자 15명의 1심 선고 공판이 지난 11월 11일 광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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