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한 세기에 몇 명 나오기도 힘든 예외적인 사람의 자녀가 아버지만큼 예외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과 같은 사람은 1000만 명 중에 1명, 좀 더 관대하게 잡아도 100만 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두 사람은 삼성과 현대라는 굴지의 재벌기업을 창업했다.
하지만 그런 굴지의 창업 재벌 2세 역시 100만 명 중 1명 정도의 예외적인 사람이면서, 손자대(代)에도 예외적인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칠게 말해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쯤 된다. 물려받은 자원, 최고의 교육, 물심양면의 지원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초극단적으로 낮은 확률이다. 다수 기업이 2세, 3세를 거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일이 다반사 아닌가.
그런데 삼성과 현대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 벌어졌다. 창업자의 2세인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경영능력 면에서 그들의 아버지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두 재벌기업은 2세 때에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건희, 정몽구 회장 본인뿐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삼성과 현대는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의 확률을 뚫은 셈이다.
이런 행운이 3대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100만분의 1 곱하기 100만분의 1에다 다시 100만분의 1을 곱한 숫자는 지면에 표기하기도 어렵다. 삼성그룹을 사실상 물려받은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자동차 그룹을 물려받을 정의선 부회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예외적으로 뛰어나다면 20년쯤 후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우주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국내 및 세계 최고 수준의 경영자가 생물학적 3대를 거쳐 탄생하기를 바라는 것이 합리적일까. 선대 회장들처럼 기업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일만 하는데도 엄청난 능력이 요구된다. 재벌의 상속자들은 너무나 힘든 과제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다.
한국 재벌의 가업 승계를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 또한 심리학과 관련한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뛰어난 자질을 가진 후계자가 나올 확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그나마 경영 자질이 나은 자녀를 선택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면에서 과거에 비해 선택지가 현저히 줄었다.
장남, 차남은 어떻게 다를까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아들이 하나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요인보다 장남이자 외아들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심리적 특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는 탄생 순서에 따라 형성되는 성격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형제 중 첫째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동생이 태어나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을 조금 잃을 수는 있지만 동생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월감을 느낀다. 성격이 형성되는 아동기까지 동생에 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끼며, 동생보다 더 강한 발언권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첫째는 세상은 원래부터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가질 확률이 높고, 사회적 체계와 규범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며, 그것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을 띠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첫째는 부모와 사회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바른 생활을 추구한다.
반면 둘째는 태어나면서 열등감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자신보다 앞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첫째의 존재가 늘 거슬린다. 우선권과 결정권, 기득권을 첫째에게 ‘근거 없이’(둘째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빼앗긴 사회적 체계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반항적이고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될 소지가 크다. 기존의 규범이나 사회적 제약을 거부하고 그것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때문에 사고와 행동이 자유롭고 혁신적이며 모험적인 경향이 있다.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고 때로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