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오디션 왕국의 대국민 사기극… CJ ENM 채널 ‘엠넷(Mnet)’의 추락

접대받고 전 시즌 투표 조작

  • 김도헌 음악평론가(웹진 ‘IZM’ 편집장)

    zener1218@gmail.com

    입력2020-01-17 14: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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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 경쟁’ 내세운 최악의 불공정 오디션

    • 접대, 일부 출연자 특혜, 투표 조작 사실로

    • 당당하게 선발된 멤버도 ‘조작 그룹’ 낙인

    • CJ ENM은 모르쇠…엠넷과 CJ ENM은 별개?

    • 엠넷 눈치 보며 ‘울며 겨자 먹기’ 방송 출연

    • 진심 어린 사과와 뼈 깎는 쇄신으로 거듭나야

    “음악 방송만큼은 공중파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음원 업계 관계자) 

    “방송가의 오디션 프로그램 양산을 주도하며 소위 ‘대박’ 친 프로그램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엠넷(Mnet)의 경쟁력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방송가 관계자) 

    “엠넷에 줄을 대지 않으려는 아이돌 기획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돌 시장의 트렌드를 이끈 것도 엠넷이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곳도 엠넷이다.”(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 

    업계 관계자들에게 엠넷에 대한 평가를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이는 엠넷이 한국 대중음악, 특히 아이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규모를 가늠케 한다. 엠넷이 음악 관련 케이블 채널로 출발해 최근 방송가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채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건 ‘슈퍼스타K’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시리즈의 잇따른 성공 덕이다.

    ‘공정 경쟁’ 내세운 ‘불공정’ 오디션

    ‘오디션 왕국’이라 불릴 만큼 잘나가던 엠넷이 한순간 ‘대국민 사기극의 제국’으로 전락했다. 엠넷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조작 의혹이 검찰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민 프로듀서’인 시청자가 직접 투표해 최종 멤버 11명을 선택하고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배출한다는 슬로건이 무색해졌다. 



    이번 사태로 업계 관계자들과 아이돌 연습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애초에 프로듀스 시리즈가 내세운 최고의 가치는 ‘공정 경쟁’이었다. 여기에는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 등 어떤 요소도 개입될 수 없다. 오로지 피땀 흘린 노력과 열정으로 꿈을 이룬다는 프로그램 정신에 대중은 열광했고 기꺼이 투표에 참여했다. 그러나 프로듀스 시리즈는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최종 순위가 미리 결정돼 있는 최악의 불공정 프로그램이자 대국민 사기극임이 확인됐다. 

    한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실력과 재능만 있으면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다는 희망이 깨져버렸다. 채용 비리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방송가 관계자는 “거대한 기업이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계약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환상이 아니었나 싶다”며 씁쓸해했다. 

    무한 경쟁에 놓인 아이돌 연습생에게 프로듀스 시리즈는 인생에서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절실한 기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번 사태로 적지 않은 아이돌 연습생이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연예기획사들이 ‘괜히 아이돌 연습생을 방송에 출연시켰다’며 후회하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무기력감에 빠진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시청자 투표 조작 사실로 드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엠넷 제작진은 2016년 첫선을 보인 프로듀스 101(시즌1)부터 2019년 7월 막을 내린 프로듀스×101(시즌4)까지 전 시즌을 조작했다고 한다. 이 시리즈를 기획·연출한 김모 CP(총괄 PD)와 안모 PD는 사기·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2019년 11월 5일 구속됐다. 김 CP와 안 PD는 시즌1·2 당시 1·4차 투표 일부만 조작했지만, 시즌 3·4에서는 아예 프로그램 종료 후 탄생할 아이돌 그룹(각각 아이즈원과 엑스원) 멤버를 미리 선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검찰은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배출된 아이오아이(IOI, 시즌1), 워너원(Wanna One, 시즌2), 아이즈원(IZ*ONE), 엑스원(X1) 등 총 4팀 멤버 45명 가운데 적어도 24명은 순위 조작을 통해 데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초 안 PD는 기획사별로 출연할 수 있는 연습생 수를 2명으로 제한했다 한다. 그러나 프로듀스 각 시즌을 전후해 연예기획사 관계자로부터 특정 연습생의 방송 출연 부탁을 받고 수십 회에 걸쳐 수천만 원 상당의 접대와 향응을 제공받고 투표를 조작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 검찰은 안 PD가 특정 기획사에는 4명 이상 출연권을 주는 등 혜택을 줬다고 밝혔다. 또 그룹 기획 단계부터 어느 정도 순위와 데뷔를 보장하며 섭외에 나섰다고 한다. 특정 기획사 연습생은 ‘픽미’ ‘나야 나’ ‘내꺼야’ ‘지마’ 등 시즌별 단체곡을 미리 연습했고, 미션곡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이 특정 연습생에게 초점을 맞춰 방송하면 시청자는 자연스레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스레 득표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 조작 의혹이 처음 불거진 시점은 2019년 7월 19일. 당시 제작진은 데뷔 평가 무대를 선보인 연습생 20명에 대한 시청자 투표 결과(온라인 및 생방송 실시간 유료 문자 투표)를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당시 8위와 9위, 16위와 17위 연습생 간 득표수 차가 각각 7494표로 동일했다. 9위와 10위, 17위와 18위 연습생 간 득표수 차도 각각 7495표 차이로 같았다. 이처럼 특정 표차가 반복되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투표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제작진은 “득표수 집계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라고 해명했으나 검찰 수사 결과 대담한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작 그룹’ ‘조작 멤버’ 낙인 찍혀

    문제는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탄생한 아이돌 그룹의 향후 활동이다. 아이돌 그룹 엑스원은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논란을 넘지 못하고 조작 오명만 남긴 채 해체를 결정했다. 1월 6일 엑스원 멤버 소속사는 “CJ ENM과의 회의에서 각 멤버 소속사와 전원 합의를 원칙으로 진행했으나 합의되지 않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이즈원은 “그룹 해체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발표했지만 국내 활동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현재로서는 “아이즈원과 엑스원 멤버들의 활동 재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한 CJ ENM의 약속이 지켜지기 어려워 보인다. 이로써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는 결국 조작과 해체로 끝맺게 됐다. 

    일각에서는 ‘조작 그룹’이라는 낙인이 멤버들의 향후 활동을 방해할까 우려한다. 유료 투표에 참여했던 시청자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 및 연습생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제 실력으로 당당하게 최종 멤버로 선발된 출연자는 투표 조작 논란으로 무너진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 한다. 탈락한 출연자들도 데뷔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므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누군가 조작으로 혜택을 입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봤다면 이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CJ ENM은 “투표 조작으로 인한 수혜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다”고 한 상황이다. 다만 “프로듀스×101(시즌4)과 프로듀스 48(시즌2)로 벌어들인 수익과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합친 300억 원을 모두 포기하고 프로듀스 투표 조작 논란으로 피해를 당한 연습생들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피해 보상 범위와 방법을 정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엇보다 팬들과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금전적, 물질적인 보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앞으로의 개선 방안 발표 등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엠넷과 CJ ENM은 별개?

    허민회 CJ ENM 대표가 2019년 12월 30일 서울 상암동 CJ ENM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조작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허민회 CJ ENM 대표가 2019년 12월 30일 서울 상암동 CJ ENM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조작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로 개국 25주년을 맞은 엠넷은 개국 초창기만 해도 음악 방송이나 뮤직비디오, 팝송 등을 틀어주는 케이블 채널에 불과했다. 그러다 2005년 개국 10주년을 맞아 음악 방송은 물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까지 자체 제작하며 방송의 외연을 넓혔다. 

    엠넷의 성공적인 변신에는 CJ ENM 덕이 컸다. 엠넷은 1997년 3월 제일제당에 인수됐는데, 케이블방송 채널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는 2006년, 엠넷 운영권이 CJ뮤직으로 넘어갈 무렵부터다. 그 뒤 CJ그룹 계열사 간의 복잡한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엠넷은 CJ ENM 품에 안겼다. 오늘날 엠넷은 CJ ENM이 운영하는 국내 최고 음악·엔터테인먼트 케이블 채널로 활약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엠넷이 2006년을 기점으로 CJ ENM이라는 대기업 자본의 ‘버프’를 받아 채널의 위상과 규모를 차차 키워나갔다”는 말이 나온다. 버프(buff)는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모든 효과를 지칭하는 은어다. 그러나 CJ ENM 안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CJ ENM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 얘기다. 

    “이번 사태가 터진 뒤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문한 내용이 있다. ‘제작진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꼬리 자르기’가 벌어진 셈이다. 회사가 압수수색까지 당했지만 정작 이번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직원은 거의 없다. 엠넷과 CJ ENM은 별개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다.” 

    실제로 2019년 12월 3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윤용 CJ ENM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이 사건을 프로그램 제작진의 ‘개인 일탈’이라고 못 박았다. 신 담당은 “일각에서 ‘꼬리 자르기’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대중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와 방송가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시장 왜곡을 시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로듀스 시리즈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 국내 아이돌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아이돌 준비생들이 외면받는 등 피해 사례가 늘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프로듀스 시리즈가 시작한 해부터 아이돌 사이에 묘한 위계질서가 형성됐다. 한 음악평론가는 “3대 대형 기획사(SM·YG·JYP엔터테인먼트) 출신과 중소형 기획사 출신으로 위계가 나뉘던 아이돌 세계가 2016년을 기점으로 ‘프로듀스 출신’과 ‘비(非)프로듀스 출신’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방송 출연

    2016년 방영된 프로듀스 101(시즌1)에 출연한 아이돌 연습생들. [동아DB]

    2016년 방영된 프로듀스 101(시즌1)에 출연한 아이돌 연습생들. [동아DB]

    “항간에 ‘끼와 실력, 외모가 출중한 아이돌 연습생 중 프로듀스 시리즈에 나가지 않은 친구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많은 아이돌 연습생이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이들 대다수가 중소형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이라고 보면 된다. 데뷔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이들에겐 최종 11명에 선발되면 곧바로 데뷔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설령 11명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방송에서 화제를 모아 인기를 얻으면 인지도를 활용해 향후 가수 활동을 도모할 수 있어 방송 출연을 원하는 연습생이 많았다.” 

    한편 연예기획사 중에는 아이돌 연습생 보호 차원에서 프로듀스 시리즈 참여를 망설인 곳도 있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 얘기다. 

    “아이돌 연습생을 TV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인지도를 얻어 데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습생은 지나치게 긴장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제작진의 ‘악마의 편집’에 희생양이 된다. 섣불리 방송에 출연했다가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중도 탈락하면 기획사로선 아이돌 연습생의 이미지만 소모한 꼴이 된다. 만일 예기치 못한 논란으로 구설에 오를 경우 해당 아이돌 연습생은 물론 회사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 때문에 프로듀스 시리즈에 소속 연습생을 출연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엠넷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연습생을 내보냈다고 토로하는 기획사도 적잖다. 업계 관계자는 “연예기획사와 연습생에게 프로듀스 시리즈는 사탕 속에 감춰진 마약이 아니었나 싶다”며 씁쓸해했다.

    뼈 깎는 쇄신으로 거듭나야

    이번 사태로 엠넷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엠넷은 2009년 슈퍼스타K 시리즈를 성공시킨 뒤 오랫동안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최근 시청자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엠넷이 2012년부터 방송해 온 ‘쇼미더머니’도 잦은 공정성 논란과 시비에 시달려왔다. 대중이 신뢰할 수 있는 방송 포맷을 제시하지 않는 한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부활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그러나 엠넷은 프로듀스 투표 조작 논란이 일던 당시에도 차기 오디션 프로그램 '십대가수' 제작을 추진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대해 하용수 CJ ENM 부사장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프로듀스 101 시즌은 모두 제작을 중단한 상태다.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작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CJ ENM의 공식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비소가 흘러나왔다는 후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논란으로 경찰 조사가 한창인 와중에 차기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CJ ENM의 공식 발언을 보니 일면 수긍이 간다. 엠넷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제작진 교체가 아니라 진정 어린 사과와 반성, 뼈를 깎는 쇄신뿐이다. 이제라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도헌
    ●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 편집장
    ● 멜론 아티스트 DB 작업 참여
    ● JYP A&R 음원 모니터링 참여
    ● 소셜 살롱 문토 ‘뮤직 나잇 아웃’ 진행
    ● 커넥츠(Connects) 뮤직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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