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신동아 에세이

코로나가 알려준 또 다른 행복 찾기

  • 오휘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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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11-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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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곳에는 아픈 사람이 모인다.” 얼마 전에 메모장에 써둔 문장이다. 근사한 장소에는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듯, 아픈 곳에는 아무튼 아픈 사람이 모이는 법이라고. 그래서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 곁에도 다른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나타나,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기도 하는 거라고, 정말이지 아픈 곳에는 아픈 사람이 모인다. 병원이 늘 그랬고 지금의 온 세상이 그렇다. 

    아픈 사람이 없는 곳이 없는 요즘이다. 비단 생리학적으로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마음의 병 같은 것을 거의 모든 사람이 지니게 됐다. 누군가는 그 아이에게 ‘코로나 블루’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던데. 

    못 가게 된 곳이 많다. 연초에 계획해 둔 프랑스 출장은 당연히 무산됐고, 거의 유일한 취미인 미술관 구경도 쉽지 않게 돼버렸다. ‘내게도 다른 누군가처럼 요리나 영상 제작 같은 멋들어진 취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한때는 글쓰기가 취미였지만 이 행위가 직업이 된 후로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됐고 내게 남은 취미라곤 집에서 잠을 자는 것과 날을 잡아 미술관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그마저 마음 편히 하지 못하게 됐으니까.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말, 그리고 사람은 가장 일상적인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말에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고 있다.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게도 그 마음의 병 같은 게 생긴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어느 정도 영향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늘 가라앉은 채로 살고 또 쓰는 사람이다. 지금껏 낸 몇 권 책의 명도를 측정해 보자면 나는 밝은 쪽보다는 주로 어두운 쪽으로 쓰곤 했다. 

    그렇게 오래 살아온 건 아니지만, 나의 삶은 늘 잃고 잊는 일의 연속이었다. 겨우 세 번 빨았을 뿐인 사탕을 떨어뜨린 날이 있었고, 아끼는 목도리를 잃어버린 날이 있었다. 내 일생의 로맨스라고 여겼던 사람, 그리하여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한 사람과의 기억도 속절없이 잊혀갔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이번 생일에는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려서 반깁스를 했고…. 



    그렇게나 나름대로 불행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 옆에서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너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았어. 그만큼 좋은 경험도 많이 했는데?” 


    행복은 불행보다 싱겁다

    사람들에게 “오늘의 뉴스에 활기차고 긍정적인 소식이 있었나요?” 하고 묻는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뉴스는 늘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고, 높아야만 했던 어떤 수치가 감소하고 있다는 소식을 통상적으로 전한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이 가난한 날이면 뉴스 보는 일이 버겁기도 하다. 안 그래도 사는 것이 퍽퍽하고 안 좋은 일도 많아서, 좀 듣기 편한 이야기나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틀어둔 TV에서도 퍽퍽한 이야기가 나오니 버틸 수가 있어야지. 그럴 땐 밥 한술 뜨기도 어려워진다. 

    어쩌면 사람은 불행의 맛을 더 좋아하는 동물이 아닐까? 우리는 좋은 소식보다 좋지 못한 소식에 민감하며 좋았던 날을 기억하기보단 좋지 않았던 날을 기억하는 일을 훨씬 더 쉽게 해낸다. 그러니까 나도 즐거웠던 추억이나 행복했던 이야기를 책에 많이 담지 못했다. 사실은 불행과 행복이 반반 섞인, 반반까진 아닐지라도 행복이 없지만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행복과 불행에도 맛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행복은 불행보다 더 밋밋하고 싱거운 맛을 지녔을 것 같다. 분명 있기는 있었는데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지 않고, 자주 그 맛을 까먹어 버리곤 하니까. 

    내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불행만 겪으며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아무리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중간중간 소소한 재미와 웃음거리들을 반드시 누리긴 누렸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책임하게 뱉는 말이 아니다. 일에 쫓겨 열흘 밤을 새우다가도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웃기도 하는 게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햇빛을 자주 본다면야 물론 더없이 좋겠지만, 근무 여건상 머무는 곳의 구조적 특성상 해를 볼 기회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영양제로 비타민 D 같은 것을 보충해 줘야 한다. 영혼의 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슬프더라도 꾸역꾸역 세상의 좋은 것들을 기억해 내야 한다. 오늘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내 주변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구경해야 한다. 

    현재가 행복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당장은 여러모로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조금 억지로라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누리고,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복잡한 날에 탁 트인 곳을 찾아가면 눈이 한결 맑아지고, 울적한 날에 좋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과 좋은 것을 먹으면 조금 기분이 나아졌듯이. 


    그래도 살아 숨 쉬고 있어 다행

    전철을 타고 동작대교 위를 지나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곳에서 보는 한강을 사랑한다. 사실 한강을 제대로 보기에는 당산과 합정 사이를 지날 때, 그리고 청담과 뚝섬 사이를 지날 때가 가장 좋지만, 나는 동작대교 위에서 보는 그 ‘희미한 한강’이 내심 더 마음에 든다. 동작대교에서는 한강을 보려면 시선을 저 멀리로 던져야 한다. 철로 양옆으로 차선이 있어 시야가 그리 잘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수고롭게 한강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꼭 뭐라도 이뤄낸 것처럼 작은 성취감과 행복감이 느껴진다. 

    오늘 동작대교 위를 지날 때는 시선이 닿은 곳의 한강이 마침 기가 막히게 반짝이고 있었다. 태양이 마치 나를 위해 저곳의 물을 비추는 것 같다는 생각에 무한한 감사와 행복감마저 느꼈다. 

    저번 달에는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최근에 아, 행복하다, 좋다,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던 것 같아. 복권에 당첨됐다거나 비싼 옷을 입게 됐을 때의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볕과 바람이 좋은 날에 창문을 열어두고 운전할 때의 느낌 같은 것.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누군가를 만나고 또 같이 걷고, 집으로 돌아와 잠드는 순간까지 걱정이나 불편함 같은 게 없었던 하루를 보냈을 때의 느낌 같은 것 말이야.”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데, 정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혼잣말을 하듯 건넨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다음 날 출근길에, 그 순간의 공기가 참 맑아서, 지금 듣고 있는 음악과 커피의 맛이 잘 어울려서 “행복하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과 음악, 커피였는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은 지 오래된 것 같아’하는 생각,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면 ‘소소한 행복을 누려봐야겠어’하는 생각을 전날에 했기 때문이었겠다. 

    만약 내가 언젠가 작은 방송국을 차린다면, 하다못해 1인 방송의 크리에이터가 된다면, 편성표에 자극적이고 공포감을 주고 절망감을 안겨주는 뉴스가 아닌, 시시콜콜하고 편안하고, 때로는 웃기기도 한 소식을 들려주는 뉴스 프로그램을 꼭 마련해 두고 싶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찌개의 간이 딱 마음에 들었어요, 그 집은 밥도 무한 리필이라네요, 친구 딸이 벌써 말을 한대요, 옆집 할머님께서 드디어 퇴원하셨대요, 그런 소식을 꾸준히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끔 하고 싶다. 


    또다시 행복할 수 있다

    삶이 늘 힘든 것만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좋은 일도 못지않게 많았다. 작년보다는 벌이가 좀 나아졌다. 흔들리지 않는 법을 알게 됐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만큼 무언가를 베풀 수 있게 됐다. 물론 내년의 벌이가 도로 내려가 작년보다도 안 좋아질 수도 있고, 나를 흔드는 전대미문의 사건사고가 터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난리통에서도 분명 웃을 수 있는 일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마냥 낭떠러지에서 허우적대기보단, 지금 있는 곳에서 반짝이는 것을 찾는 삶을 살고 싶다. 

    한강의 반짝이는 물결이 한 번도 똑같은 모양이 아니었듯이, 우리에게 매일 똑같은 하루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었고 잃은 것, 잊힌 것도 많았다. 

    괜찮다. 세상이 변하면 우리 삶의 방식도 바꾸면 된다. 변한 세상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버티고, 또 즐기며 살아가면 된다. 우리 행복의 시야를 방해하는 사건사고가 많아도 우리는 어떻게든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 늘 그랬듯이.

    오휘명
    ● 1990년 서울 출생
    ● 소설 ‘AZ’ ‘서울사람들’ 에세이 ‘일인분의 외로움’ 발표
    ● 출판사 언노운 스튜디오 대표 편집자
    ● Crush 정규 2집 작사 참여
    ● 2019 개인전 ‘Writing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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