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에 ‘강간’당했다는 자학적 민족주의
80년대 운동권 특유의 고아·서얼의식
김어준·유시민은 팬덤 간질이는 팬픽 창작자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게 계몽
9월 25일 해양경찰이 경비함에서 북한군에 피격 사망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공무원 시신 및 유류품을 수색하고 있다. [인천해경 제공]
아무리 집권세력이 남북관계 개선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면책을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해도, 이 같은 대북 저자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런 수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자학적 민족주의가 원인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삶은 소대가리’로 대표되는 막말을 듣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을 ‘불상발사체’라고 불렀으며,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경험하고도 여전히 대북협력 사업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북한의 명백한 적대행위를 마주하고도 평화와 종전을 희망하는 비현실적 현실인식의 심층에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의 ‘자학적 민족주의’가 있다. 예컨대 대표적 재야 지식인이던 함석헌은 “나는 우리 민족을 세계의 큰길가에 앉은 늙은 갈보라 본다. 한민족(漢民族)이 먼저 더럽히고, 그 다음 몽고 민족이 더럽히고, 만주·일본·러시아·영국·미국이 차례차례로 이 아시아의 꽃동산지기 처녀를 윤간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읽다가 그 책을 찢고 싶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함석헌, ‘새 나라의 꿈틀거림’, 1961)라고 했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이던 윤한봉은 ‘민족의 아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격하게 비유한 바 있다. “왜놈들에 윤간당해 대들보에 목매달고 되놈에게 강간당해 혀 깨물고 자결하고 양놈에게 능욕당해 우물 속에 뛰어들던 어머님을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윤한봉, ‘망명’, 2009)
위 인용문은 역사를 최대한 비극적으로 재현하려는 자학적 민족주의의 욕망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이들에게 민족의 역사란, 외세에게 ‘강간’을 당해왔던 수치의 연속이다. 따라서 광복 이후 분단과 이어진 건국은 부정한 것일 수밖에 없다. 외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다.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의 공통교양이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자학적 민족의식의 학술적 외피였다.
1980년대 운동권은 국가를 전복 대상으로 인식했다. 1970년대와 달리 1980년대 운동의 최종 목표는 정파와 관계없이 ‘혁명’이었다. 이들은 건국과 부국 같은 앞 세대의 성취를 폄훼했다. NL(민족해방) 운동권에 건국은 미제국주의 책동이며, 부국은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매판·독점자본이 민중을 착취한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심지어 5·18의 비극을 막지 못한 1970년대 학번 선배들을 패배자로 보는 경향마저 있었다.
80년대 운동권 특유의 고아·서얼 의식
앞 세대의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자 이들은 정신적 고아가 됐다. 실존하는 앞 세대 대신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을 정신적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1980년대 운동권 특유의 교조주의, 어느 정파가 원전에 충실한 계승자인지를 겨룬 인정투쟁, 혁명에 대한 낭만적 신화화 등은 모두 고아 의식의 산물이다.NL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아직도 이러한 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국부는 김구가 돼야 했다”고 밝혔다. 건국을 부정하고 싶어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으니 건국에 소극적이던 김구를 ‘국부’로 끌어들인 것이다.
정신적 고아 상태는 북한을 민족적 정통성의 주체로 인정하는 순간, ‘서얼 의식’으로 전환된다. 운동권 입장에서 자신은 외세에 의해 더럽혀진 땅에서 자란 서자나 얼자인 반면, 북한은 민족적으로 순결한 적통이다. 1980년대 일부 운동권이 일상에서 북한 말투를 따라하거나 콜라를 ‘미제의 똥물’이라고 칭한 것은 북한에 대한 동경이자, 역사적 서얼들의 소아병적 인정욕구였다고 할 수 있다.
자학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친일파 파묘, 애국가 교체, 역사부정죄, 방사형 문양에서 욱일기를 읽어내려는 편집증 등은 ‘더러운 역사’를 살았다는 열패감을 대리보충하려는 퇴행적 정화의식이다. 고아 의식과 서얼 의식으로 점철된 자학적 역사관은 언제나 정화를 갈구한다. 이들에게 정화의 완성은 외세를 배격한 ‘자주적 민족통일’이다. 이 목표를 위해 집권세력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과 모욕, 심지어 자국민의 희생까지를 감수하고자 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포탄 쏟아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쳐야” 하고, “우리 국민이 DMZ를 걸으면 북측 당국자에게도 마음이 전달될 것”이라는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극단적 문재인 지지자들이 공무원 피살 사태를 보는 방식은 결이 다른 것 같다. 만약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했다면 이들은 그것대로 잘했다고 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와 비교하면 이들의 태세 전환은 기함할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모두 밝히라고 소리치던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공감과 추모를 보냈다면, 공무원 유가족은 의심과 질타의 눈으로 바라본다. 선택적 진실규명, 선택적 추모, 선택적 분노, 선택적 책임요구다.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구호에는 타인의 죽음까지도 들어있다.
김어준·유시민은 팬덤 간질이는 팬픽 창작자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팬픽. [트위터 캡처,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 달빛회관 캡처]
팬픽은 대상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애정이 극단화한 나머지 대상을 자기 욕망에 맞춰 가공한다. 이들의 픽션 안에서 아이돌은 자기의 의도대로 움직이며 욕망을 충족해주는 대상이 된다. 문재인 팬덤도 다르지 않다.
팬덤이 창조한 서사, 즉 팬픽의 세계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항상 유능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대통령이 잘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기 때문에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팬덤은 대통령을 통해 자신이 정의롭고 올바르다는 자기인식을 끊임없이 증명 받고자 한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대통령을 매개로 자존감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팬덤에게 대통령의 오류는 자신의 오류와 같다. 자기를 위안하기 위해서 대통령은 무오류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북한이 두 번이나 사과했다’는 문장에서 집권세력은 남북관계의 희망적 메시지를 과잉 독해하고자 했다면, 팬덤은 ‘사과’를 받아낸 정부의 유능함에 초점을 맞춘다.
나아가 정치팬덤은 대통령을 무오류의 지도자로 만들고자 ‘대안적 사실’을 쏟아낸다. 사살된 공무원은 이혼과 도박 빚으로 ‘월북’한 사람이어야 하며, 사살은 어쩔 수 없는 ‘방역’이 돼야 한다. 김어준, 유시민을 비롯한 여권 스피커들은 팬덤의 입맛에 맞는 팬픽 창작자들이며, 팬덤은 스피커들이 창조한 팬픽의 세계에서 자존감을 대리보충한다. 결국 팬덤 입장에서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구호는 대통령과 자기를 위해 그 어떤 대안적 사실도 창조하고 믿어버리겠다는, 즉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해’와 같은 의미다.
구겨져버린 공론장
아이돌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팬픽 같은 B급 문화를 즐기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 더구나 정치 영역을 팬픽의 세계로 만든다면 심각한 문제다. 아이돌 팬픽은 사적공간에서 자기 욕망을 해소한다. 그러나 정치적 팬픽은 공적 공간을 비틀어서 사적 욕망을 충족한다. 자신의 반대파는 ‘적폐’이며 자신에 대한 비판은 ‘가짜뉴스’일 뿐이다. 이러한 태도가 수 년 동안 지속되면서 공론장은 구겨져버렸다. 공론장이 왜곡되니 정치가 온전할 리도 없다. 다수 여권 정치인은 팬픽의 충실한 캐릭터로 길들여진다. 한 정치인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출마하겠다고 천명하기까지 했다.대한민국 입장에서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는 고도의 현실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팬덤은 이것마저 팬픽의 소재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불과 2년 전 남북정상회담 정국에서 정치팬덤은 문재인 대통령을 ‘외교의 신’이라고 추앙했다. 심지어 시사프로그램에서 평양냉면에 대한 방담이나 떠들었고, SNS에서는 김정은 보고 ‘귀엽다’는 둥, ‘소년가장’ 같다는 둥하며 외교를 예능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더구나 정치팬덤은 당시와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기조를 비판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통해 보여준 집권세력과 그 지지층의 행태는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아병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집권세력은 북한으로부터 ‘종전’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잇조각을 받아내면 정말 평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 순진무구한 소년과 같다. 그러나 이 쪽지는 북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 위에 그림그리기’에 불과한 것이다. 자국민이 죽어나가는 종전은 항복과 동의어일 뿐이다.
북한은 가장 빈번하게 대한민국을 도발하고 위협하는 국제사회의 문제아다. 21세기 최악의 폭압적 독재국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러한 국가로부터 갖은 도발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지원과 대화를 구걸하며 끌려 다니고 있다. 외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관계에 가깝다. 그 이면에는 집권세력이 40여 년 동안 벗어나지 못한 자학적 민족주의와 그 열패감의 충족으로서 낭만적 통일관이 깔려 있다.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게 계몽
정치팬덤 역시 세계가 내 뜻대로 되기를 갈망하고, 그것이 좌절될 경우 분노하는 유아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끊임없이 대안적 사실로 가상세계를 창조한다. 문재인을 선택한 자신이 결코 틀리지 않았고, 그리하여 자신이 여전히 정의로운 편에 서 있다는 허상을 팬픽 수준의 판타지를 통해 확인받고자 한다. 칭찬에 목마른 아이와 같다.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이란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미성년의 상태는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적국의 독재자를 향한 ‘계몽군주’라는 표현 따위는 그만둬야 한다. 오히려 ‘계몽’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집권세력과 정치팬덤이다. 판타지를 찢고 현실을 봐야한다.
*필자는 1981년생으로 중앙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제3의길’ 편집위원으로 글을 쓰고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