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경제3법 더해 노동법 개편하자”
與분열, 이낙연 “부적절” 홍영표 “원칙적 동의”
산업별·직능별 노조가 金의 지론
金 “내가 말하는 건 ‘쉬운 해고’ 아냐”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 “대선 공약 될 것”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0월 5일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노사관계와 노동법 개편을 정부에 제의한다”고 말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당과 끈끈한 결속을 과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17년 5월 1일 한국노총을 직접 찾아 정책연대협약을 맺었다. 김주영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은 “5월 9일 대선까지 조직적 역량을 총집중해 대선 승리의 길을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함께 열겠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경기 김포갑에 당선됐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최근 들어 여권과 각을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과 여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했다는 연대의식이 있다.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는 목소리도 많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 역시 민주노총 출신이다.
뒤바뀐 공수와 적전분열
민주당 지도부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그간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한 목소리로 “김 위원장이 경제3법 개정 의지를 밝힌 것을 환영한다”고 말해왔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김 위원장 덕에 경제3법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점쳐왔다. 이 틈에 김 위원장이 허를 찌르듯 노동법 카드를 들이밀었다. 경제3법 국면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가 구석에 몰렸다. 김 위원장의 한 마디로 이번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수세에 몰렸다.적전분열 양상도 보인다. 이낙연 대표는 10월 6일 “야당이 거론하는 노동법 개정은 부적절하다. 수많은 노동자가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이 시기에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은 노동자들께 너무 가혹한 메시지”라고 했다. 반면 노동계 출신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노동법 개편 제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김 위원장의 제의를 계기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사회개혁 방안을 도출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에게서 ‘쉬운 해고’라는 표현이 나온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대 노총은 노동개혁 논의가 확산할 때마다 ‘쉬운 해고’라는 프레임으로 방어막을 쳐왔다. 해고라는 단어를 써야 여론의 향배가 자신들에 유리하다 보기 때문이다. 대권주자인 이 대표가 양대 노총의 프레임을 재활용한 셈이다.
김 위원장도 방어막을 쳤다. 그는 10월 13일 김종철 정의당 대표를 만나 “내 얘기가 해고를 쉽게 하자는 게 아니다. 전반의 근로자들이 혜택 받을 수 있는 노조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시급한데 지금의 노사관계법으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내 얘기를 해고를 쉽게 하자로 몰아가면 논의 자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지론은 3월 출간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잘 드러나 있다. 9장의 제목은 ‘노동조합은 절대선인가: 탐욕이 만든 결과물, 기업노조’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80년 신군부가 만든 기구의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노동관계법이었다.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산업별, 직능별 노조를 기본 골격으로 하면서 기업에는 노동조합이나 외부 노조의 지부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가·화이트칼라·블루칼라 3자가 참여하는 노사협의체를 만들어 기업 내부의 일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기업노조는 안정적이고 규모가 큰 회사, 직원에 대한 처우가 좋아 이직률이 낮은 회사에서 조직률이 높다. 이에 대기업 노조가 중소기업 노조를 쥐고 흔드는 현상을 낳는다. ‘비정규직 문제’라는 것도 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기업노조 시스템하에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 기업노조는 해결 못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9월 14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을 찾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이철승 서강대 교수와 정준호 강원대 교수, 전병유 한신대 교수가 5월 ‘한국사회학’에 게재한 논문 ‘세대·계급·위계Ⅱ: 기업 내 베이비부머·386세대의 높은 점유율은 비정규직 확대, 청년 고용 축소를 초래하는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55세 이상 비중이 높은 기업은 연공 임금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청년고용을 줄였다. 호봉제를 바탕으로 일자리를 과잉·장기 점유한 장년 탓에 청년 실업이 악화하고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연공 위주 호봉제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만들어 연차에 비례해 연장자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상승분을 청년 고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사용해야 한다”고 결론 냈다. 논문에 명기되지 않았지만 기업노조 체제하에서 양대 노총이 벌인 임금투쟁이 고용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방증이다.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 철폐’를 주창하면서도 대기업·공공부문에서 임금 인상을 자제하겠다는 양보안은 내놓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제안처럼 산별노조 체제로 바뀌면 산업별로 임금이 정해지니 정규직도 임금을 깎아야 한다. 단체행동을 해도 산업과 직능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노동법 개정을 이슈화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은 고려했겠지만, 그간에도 대기업 중심으로 기득권화 된 노총을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에 미래가 없다는 소신을 수차례 밝혀왔다”며 “이 벽을 걷어내지 못하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 막힌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고려한 포석
김 위원장이 노동법 개정 카드를 내놓자 정치권은 국면 전환용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경제3법에 대한 당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노동법을 협상 지렛대로 꺼냈다는 시각이다. 당내 일각에는 김 위원장의 셈법이 한층 복합적이라는 분석도 있다.국민의힘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노동법이 이번 국회에서 개정되기 쉽지 않다. 의원 배지가 없는 김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적”이라면서 “노동법 개정은 김 위원장 자신이 출마하건 안 하건 그가 설계하는 대선판의 공약으로 나올 것이다. 그는 차기 대선에서 나라를 뒤바꿔 보겠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내놓을 텐데, 노동법 개정은 이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