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文정부가 통계 목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노정태의 뷰파인더⑤] 성적 나쁘면 성적표 바꾸는 文정권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입력2020-10-19 10: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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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재·데이터 모두 알아차린 정조의 안목

    • ‘소주성’ 논란 확산 즈음 통계청장 조기교체

    • 전·월세 폭등하자 부총리 “통계 방식 한계”

    •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 자료 수집 폐지

    • 청년 고용 정책 효과, 전 정권과 비교 가능한가

    • 원자료(raw data) 존중한 정조에게 배워라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0월 6일 서울 한 공인중개사무소 입구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뉴스1]

    10월 6일 서울 한 공인중개사무소 입구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뉴스1]

    다산 정약용은 ‘인간 엑셀’이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다시 한 번 소개해보자. 1795년 3월, 정조가 명을 내렸다. 7년간 전국 여덟 고을에서 나무를 심었는데 어느 고을에서 얼마나 더 심었는지 알 수 없어 정확한 논공행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수레 하나에 가득 찰 만큼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를 내놓고는 책 한 권으로 요약해내라는 게 정조의 명령이었다. 

    정약용은 일단 장부를 고을 별로 분류했다. 또 연도와 날짜 별로 다시 나눴다. 이렇게 자료의 체계를 잡은 후 각 고을 별로 한 장씩 표를 만들어 세로축에는 나무의 이름, 가로축에는 연도 별 날짜를 적었다. 이렇게 한 수레의 장부를 여덟 장으로 요약한 후, 다산은 그 여덟 장을 다시 한 장의 표로 축약했다. 정조는 나무의 종류와 상관없이 얼마나 많이 심었느냐에 따라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세로축에는 고을의 이름, 가로축에는 연도 별 날짜에 따른 나무의 숫자를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확인된 바, 여덟 고을은 7년에 걸쳐 나무 1200만9772그루를 심었다. 정조의 손에는 어느 고을이 언제 얼마나 나무를 심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한 장의 표가 들어왔다. 정조가 나무의 종류에 따른 최종 보고서를 요구했다면 정약용은 그 또한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충실한 원자료(raw data)에 바탕을 두고 스프레드시트 작업을 끝마친 상태니 말이다.

    데이터를 요구하는 임금

    대부분 사람들은 이 일화를 두고 정약용의 지적 탁월성에 주목한다. 그 말도 옳지만 유능한 부하를 알아보았으며, 본인이 원하는 자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제출돼야 하는지 정확한 오더를 내린 클라이언트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조의 안목과 능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다산은 천주교 문제가 얽혀 있는, 말하자면 정조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럼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유능한 인재였다. 정조는 그 능력을 귀하게 여겼다. 정약용이 아무리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들, 임금이 숫자에 기반 한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떤 고을 사람들이 나무를 심을 때 더욱 정성스럽게 심었는지, 얼마나 감동적인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는지 따위를 물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자는 말이다. 정약용이 ‘인간 엑셀’로서 힘을 발휘한 까닭은 정조가 제대로 된 정량적 데이터(Quantitative Data)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숫자에 친한 권력이란 한반도 역사에서 극히 드문 예외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권력자는 숫자를 싫어했다. 숫자에 입각한 정확한 보고를 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설령 숫자에 입각한 보고를 받는다 해도 권력의 입맛에 맞을 때만 좋아했다. 쓰라린 현실과 차가운 팩트를 일러주는 숫자를 들고 가는 일은 언제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같은 일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숫자와의 악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득주도성장의 유효성과 성패에 대해 논란이 커졌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발상은 극히 실험적인 생각이며 아직까지 현실에서 검증된 바 없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확고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적어도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제시되는 통계와 지표는 건전하고 건강한 경제 상황과 퍽 거리가 멀었다. 소득주도성장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8년 1분기와 비교해 2분기에는 소득분배 지표가 급격히 나빠졌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이 한 해 전보다 각각 8%와 7.6%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 동력을 유지‧강화하면서도 소득 분배를 고르게 한다는 정책 목표가 전혀 달성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실험적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주역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장하성 현 주중 대사의 경질을 점쳐볼 만했다.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목이 잘린 사람은 장하성이 아닌 통계청장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마음에 안 드는 숫자가 나와서 통계청장을 잘랐다’고 하지 않았지만, 여당과 정부를 옹호하는 이들은 통계청이 소득 조사 표본을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확대하면서 통계에 오류가 발생했다는 논리를 들이밀었다.

    목이 날아간 통계청장과 ‘소주성’

    강신욱 통계청장이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관세청·조달청·통계청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강신욱 통계청장이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관세청·조달청·통계청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대체로 2년 내외 임기를 채웠던 통계청장이 고작 1년 1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 자리는 강신욱 현 통계청장이 채웠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장관님들의 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돌아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에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슬그머니 정책 방향을 철회했다. 8000가구로 늘어난 표본을 5500가구로 다시 줄였는지, 아니면 그들이 말하던 ‘문제’를 시정했는지와 무관하게, 통계가 정치에 휩쓸렸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권과 숫자와의 전쟁은 부동산 문제를 놓고 또 불거졌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핀셋 규제’를 해가며 집값을 잡겠다고 했지만 공급을 틀어막고 수요만 억누르려 하니 집값이 잡힐 리 없었다. 아주 초보적 경제학 상식을 거스르고 있었지만 청와대는 자신들의 정책이 옳았음을 숫자로 확인하고 싶었다. 

    당연히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온갖 대책은 집값을 낮추기는커녕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정부와 무관한 거의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요지부동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옳다고, 혹은 지금은 과도기지만 곧 효과가 날 거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냥 우기기만 하면 얼마나 다행일까.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통계의 기준을 만지는 정황이 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8월 1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살펴보자. 그는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통계에 대해 “현행 전세 통계는 집계 방식의 한계로 임대차 3법(새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한 전세 가격 안정 효과를 단기적으로 정확히 반영하는 데 일부 한계가 있다”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보완 방안을 신속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침대에 누웠는데 사람의 발목이 삐져나왔으니, 침대를 늘리는 게 아니라 사람 발목을 자르겠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통계를 주무르다보니 말도 안 되는 희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부는 8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매주 0.01%씩 상승했을 뿐이라고 했다. 정부의 규제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런데 같은 기간 월간 상승률은 0.29%다. 한 달은 4주니까, 단순히 합산하건 누적 계산을 하건, 주간 상승률을 모두 더해도 월간 상승률에 미치지 못한다. 숫자가 안 맞는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산수와의 전쟁이다.

    바다 위의 갈매기와 물고기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오른쪽 서 있는 사람)가 2018년 10월 15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통계청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날 가계동향조사와 관련해 “매 분기 발표 때마다 정치적 공방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오른쪽 서 있는 사람)가 2018년 10월 15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통계청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날 가계동향조사와 관련해 “매 분기 발표 때마다 정치적 공방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바다 위에 갈매기가 모여들면 물 밑에 물고기들이 모여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가 ‘이 통계는 잘못된 통계’라고 손가락질하면 해당 영역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매년 수행하는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의 자료 수집을 폐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던 생각이다. 시험을 망쳐놓고 나쁜 결과가 나올까봐 채점하지 않고 있는 학생처럼, 문재인 정권은 지표가 나쁘게 나올 것 같으면 통계 자체를 없애는 선택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생긴다는 말이다. 

    진보성향 젊은 사회학자인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에 “고용노동부에서 GOMS 자료 수집을 폐지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신 청년 패널을 행정자료와 붙여서 보완하려는 계획이라는데, 더 구체적 안을 봐야겠지만 상식적으로 GOMS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썼다. 

    한국고용정보원은 GOMS를 “매년 새롭게 졸업하는 전문대 및 대학 졸업생들의 노동시장 진입 과정 등을 조사하는 대졸자 코호트 조사”라고 소개한다. 진보성향 사회학자인 김창환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블로그에 “한국에서 수집되는 자료 중 (a) 고교 정보, 고등교육 정보, 대졸 직후 초기 노동시장 정보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b) 표본수도 크고 (c) 10년 이상 자료가 누적돼 추세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라고 썼다. 

    매년 졸업하는 대학생들이 어떤 직장에 어떻게 취직하는지, 그것을 매년 조사한 자료가 누적돼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에도 같은 기준으로 수집돼온 귀중한 데이터 세트(data set)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지만 현재 직장과 부서까지 추적한다. 이런 정보를 갖고 있어야, 취업하는 회사에 따른 소득 불평등과 그 장기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올바른 정책 대안도 여기서 비롯한다. “정책적으로 무엇을 해야 20대 후반 대졸 청년층의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지, 그 증거를 가장 명확하게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가 바로 GOMS”라고 김창환은 결론짓고 있다. 

    훌륭한 자료가 있으니 학자들 역시 좋은 연구 성과를 낸다. 김창환은 진보성향의 젊은 사회학자인 최성수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에 출판된 계층, 불평등, 공정성 관련 핫한 사회학 연구들은 GOMS를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이 자료가 꾸준히 축적된다면, 문재인 정권이 펼친 청년 고용 정책의 영향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와 같은 기준으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료 수집을 관두고, 다른 연구의 자료를 활용하는 간접적 조사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성적이 마음에 안 들면 성적표를 바꾸려 드는 이번 정권의 일관된 경향을 부정할 수도 없지 않은가.

    성군이냐 암군이냐

    미국의 통계청과 국세청은 대단히 상세한 통계 정보를 장기간에 걸쳐 수집한다. 사생활 침해 여지가 없도록 적당히 처리한 자료를, 약간의 요건만 갖추면 어느 연구자건 다운로드받고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완비해 놨다. 가장 보수적 정치단체뿐 아니라, 토마 피케티나 이매뉴얼 사에즈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들 역시 정부의 통계에 근거해 연구하고 정치적·정책적 방향을 제안한다. 

    민주 국가의 정부가 통계를 두루 수집한 뒤 대중 일반에 공개하는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기 전, 즉 갓 연방국을 구축했을 때부터 미국의 국회도서관은 세계의 모든 책과 정보를 한 곳에 모으고 국민에 공개해 왔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쓸 때 영국 정부의 통계 자료를 적극 활용했다. 근대 국가의 민주주의란 곧 정보의 민주주의다. 

    애석하게도 문재인 정권은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 정책의 실적이 나쁘게 나오자 곧장 통계청장을 갈아치운다. 부동산 정책의 약발이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통계의 기준을 바꾸겠다고 한다. 예고 없이 갑자기 GOMS 자료 수집을 중단한다니, 현 정권의 청년 고용 정책이 실패한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렇게 통계가 엉망이고 신뢰하기 힘든 나라에서는 마르크스가 살아서 돌아와도 혁명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문 대통령을 정조에 빗대는 건 타당하지 않다. 정조는 신하의 출신이나 정파, 종교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능력을 보고 중용했다. 정확한 숫자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올바른 자료를 요구했다. 문재인 정권은 숫자와 논리에 의해 정책을 펴지 않는다. 외려 멀쩡히 잘 작동하는 통계마저도 조사 범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려 든다. 

    나는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해야 알아듣는 현 정권과 지지자들이니, 비유를 해보자. 성군은 고사하고 암군으로 남지 않으려면 문재인 정권은 통계에 손대는 일을 멈춰야 한다. ‘성종실록’을 열어보겠다고 우기던 연산군으로 기록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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