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文과 통화에서 “韓은 인도-태평양 핵심축”
미국의 중국 봉쇄 단위 인도-태평양
애플 혁명, 혁신·공유 새 문명가치 창출
세계적으로 中에 대한 경계심, 적대감 늘어
美 인도-태평양 전략에 올라타 北·中 관리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1월 11일(현지 시간) 대선 승리 선언 후 첫 외부 공식 행사로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첫 전화 통화를 갖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과 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AP 뉴시스]
현재의 미국을 만들어낸 변화는 2000년 무렵에 기원을 두고 있다. 2000년~2020년 사이 일어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는 기업 브랜드 가치 순위다. 10월 20일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20년 최고 글로벌 브랜드’에 따르면 1위~5위를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전자가 차지했다. 페이스북은 13위, 인스타그램은 19위를 기록했다. 이중 일부 기업은 2000년 이전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구글은 1998년, 페이스북은 2004년 설립됐다.
애플發 기술 大혁신 결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10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진행된 ‘애플 스페셜 이벤트’에서 아이폰12를 소개하고 있다. [애플코리아 제공]
그로부터 파생된 변화를 살펴보자. 먼저 중동과 중남미다. 미국과 중동·아랍 관계는 극적으로 붕괴했다. 1970년대 ‘오일 머니’를 갖고 있던 중동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국이 셰일가스를 채굴하기 시작하고 산업기반이 첨단 산업으로 재편되면서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극적으로 줄었다.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후퇴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중동·아랍의 정치적 재편이 시작됐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다. 중동 정세는 복잡해 보였다.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라는 상이한 현상이 중동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지수였다.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두 개의 정치적 사건이 중동·아랍의 운명을 갈랐다. 하나는 이슬람국가(IS) 궤멸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의 봄이다. 중동·아랍은 자신만의 건설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원시적 봉건주의와 테러로 빠져 들었다. 아랍의 봄은 스티브 잡스가 촉발한 스마트폰 혁명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랍의 봄의 궁극적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그것이 건설적 미래와 연결돼 있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2000년대 ‘중남미의 길’은 베네수엘라와 우고 차베스를 통해 살펴봐야 한다. 2000년부터 본격화된 ‘차베스의 길’은 직접민주주의와 폭넓은 복지제도를 통해 미국적 세계질서를 거스르는 대안적 미래를 지향했다. 차베스의 노선은 베네수엘라를 넘어 중남미로 파급됐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시점에서 보면 ‘중남미의 길’ 또한 2000년대에 걸맞은 대안을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있고, 베네수엘라 사태가 본격화될 무렵 일선에서 사회운동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9·11 테러에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반대는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9·11 테러에 대한 당시 판단에 대해서는 깊은 자성의 생각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9·11 테러와 베네수엘라의 상황에 대해 나와 유사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그들은 지금 과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애플, 구글, 삼성전자와 中금융파워
유럽은 어떨까. 역사적으로 현대 문명의 주도권은 미국과 유럽의 범대서양 동맹에 있었다. 범대서양 동맹은 1차~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팽창을 저지했고 냉전에서 소련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벌어진 세계적 규모의 게임에서 유럽은 극적으로 퇴장했다.다시 기업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영업이익 기준 전 세계 기업 순위(2018년 재무제표 기준)는 1위 사우디 아람코, 2위 애플, 3위 중국 공상은행, 4위 삼성전자, 5위 중국 건설은행, 6위 JP모건, 7위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8위 중국 농업은행, 9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10위 중국은행이다.
명확한 것은 떠오르는 두 개의 경제블록이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애플, 구글, 삼성전자 등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중국경제의 발흥에 따라 형성된 중국의 금융파워가 있다. 유럽계는 몰락했다.
2000년대 20년간 기업과 산업, 기술은 가장 치열한 전장 중 하나였다. 단순히 상품을 얼마나 싸고 견고하게 만드는지와 같은 제작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유능한 인력을 어떻게 영입할지, 또 이들에게 혁신의 유인과 동력을 어떻게 제공할지 등 사회 시스템과 철학, 가치관이 결합한 문제였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은 애플과 구글의 선전을 두고 또 다른 거대 기업의 출현이 아니라 혁신 시스템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탐욕스러운 기업가가 아니라 혁신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럽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독일의 폭스바겐 정도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 정치지형을 상징하는 것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 3국의 정치 판세다. 전통적으로 이 세 나라의 정치지형은 온건 좌·우파가 권력을 균점하는 양상이었다. 2000년대를 거치며 이 구도가 무너졌다. 프랑스만 놓고 보면 사회당이 무너지고 2017년 5월 마크롱 정부가 들어섰다. 유럽의 전통적 사민주의 정당이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자본주의 질서 변동, IT 등 기술혁신, 이민에 대한 대처 등에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한국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운동권은 미국형 자본주의 모델보다는 유럽형 사민주의 모델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책 없이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며 유럽적 경로에 호의적 생각을 품었다. 이 연장선에서 북유럽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이 유포됐다. 이런 성향은 지금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미국식과 유럽식 사이에서 좌충우돌
10월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작전 7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중국의 6·25전쟁 참전 의미를 “제국주의의 침략 확대를 억제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베이징=AP 뉴시스]
①중국은 1980~2010년 30년에 걸쳐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편승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어쩌면 미·중 사이의 동상이몽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시장경제가 점차 공산당이 주도하는 이념적 성향을 약화시킬 것으로 본 반면,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공산당의 주도권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식 혁신·자유주의 모델과는 다른 중국만의 표준, 국가와 공산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냈다.
중국이 공격적 성향을 드러냄에 따라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필리핀, 태국 등 중국 인근 약소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늘고 감정이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전혀 매력적 체제가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줄고 냉소와 적대감이 확산된다. 그렇다면 한국 내부 사정은 어떤가.
②한국 대기업은 넓은 견지에서 미국식 혁신 시스템의 적자이거나 수혜자다. 삼성전자의 기록적 성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한국 정치 지형은 박근혜 정권과 같은 구시대형 리더십 모델이거나, 문재인 정권과 같이 민족주의에 유럽식 사민주의 모델을 결합한 형태다. 문재인 정권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이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한 유일한 주체다. 그 힘을 오남용하는 삼성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다.”(2016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진화하고 있다”(2017년 9월)
“이해진 전 의장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처럼 우리 사회에 미래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아쉬웠다.”(2017년 9월)
한마디로 유럽식 사민주의 모델과 미국식 혁신 모델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근거 없는 자부심, 미국과 유럽을 제멋대로 조합하는 인식의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2000~2020년 미·중 대호황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으면서도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한반도를 계선(界線)으로 깊게 파인 미·중 갈등
③남북관계도 유사하다. 2000~2020년 세계적 맥락에서 보면 중동과 베네수엘라, 북한은 같은 위상을 가졌다. 중동과 베네수엘라가 파산했다면, 북한은 정치적 위기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그 결과는 친중 라인(장성택)을 제거하고 대남 공세(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와 핵미사일 전략을 강화한 것이다.평화 추구와 협상은 불가피했을 것이나 남북, 북·미 정상 간 회담은 냉정한 전략적 타산보다는 이벤트에 가까웠다. 이 기이한 발상은 미국 대선에 대한 인식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친문(親文) 세력은 남북, 북·미 이벤트를 기대하며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했다. 필자는 미국 대선 이전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를 지지하는가 물었다. 문재인 정권 지지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강하게 지지하는 모습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초보적 상황인식조차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④이런 맥락에서 한일관계도 조명할 수 있다. 2012년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됐고 아베노믹스를 채택했다.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일본은 어쨌거나 스마트폰 혁명 등 변화하는 현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바야흐로 미·중관계 완화기(2000~2010년대 중반)에서 미·중관계 대치기(2013년 시진핑 집권~2018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구체화)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이른바 위안부 협상 등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불거졌다. 과거사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죽자고 싸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2010년대 후반 동아시아 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기이한 반일 운동이 한국을 휩쓸었다.
⑤한국의 기이한 대응이 지속되는 사이 미·중 간 갈등은 한반도를 계선(界線)으로 점점 깊게 파이고 있다. 미국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다. 2020년 7월 10일 백선엽 장군의 사망에 대해 미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7월 12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한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백선엽과 다른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고 썼다. 백선엽에 대한 추모는 NSC는 물론 마이크 펜스 부통령, 국무부에 이어 전직 미군 장성 등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10일 23일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중국 지도부 전원이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작전 7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 “중국은 자국의 주권, 안보 및 발전이익이 피해를 입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고 우리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거나 분열시키는 시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국 인민은 반드시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시 주석은 중국의 6·25전쟁 참전 의미를 “제국주의의 침략 확대를 억제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미·중이 6·25전쟁을 두고 이견을 드러내는 것은 양국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민감하게도 한반도를 매개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①~⑤를 정리해 보자.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글로벌 자본주의의 거대한 변화는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국식 혁신·자유주의 모델과 중국식 국가주도형 모델이라는 단층선을 따라 갈등과 대립이 수렴되고 있다.
美대선과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미국 대선에 관해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핵심은 미국 대선으로 형성된 정치 지형을 가장 근저에서 지탱하는 지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2000~2020년 미국의 산업기술계가 만들어낸 혁신 시스템과 가치가 세계질서를 근본에서 구획했고, 그에 기초한 충돌 구조가 미·중 갈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한 청사진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정의했다.미·중 갈등이 한반도를 계선으로 충돌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가 공존하던 시기는 우리 손을 빠르게 떠나가고 있다. 2013년 시진핑 집권과 2018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공식화까지의 어떤 시기가 과도기가 아니었나 싶다. 2019~2020년은 잠재돼 있는 갈등 구조가 지표면을 뚫고 융기하는 시기다.
상황을 가능한 단순하고 드라이(dry)하게 보고, 그에 맞춰 복잡한 문제를 정돈해야 한다. 삼성에 대한 폄하, 남북·북미 이벤트에 대한 기대, 한일 문제에 대한 집착 등은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중심이 되는 문제를 먼저 설정하고 나머지 문제는 그에 맞게 배치해야 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요약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하되 북한과 중국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1965년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