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절망의 길목에서 분투하는 인류 최후 판타지

[황승경의 Into the Arte ⑮]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0-10-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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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세계 극장가 강타, 2016년 부활한 우주 전쟁

    • 지구 종말에 맞선 지구촌 특공대의 맹활약

    • 에디 머피 ‘대타’로 출연한 윌 스미스, 흥행배우로 ‘우뚝’

    • 美 문화패권주의 비판 속 다양한 舌戰 일으킨 영화

    • 세계 각국 전투기들의 마지막 혈투, 강력한 몰입

    • 前作 돌풍 넘지 못한 ‘리써전스’, 20년간의 변화 찾는 재미

    • 외계 침공에서 승리…코로나 전쟁에서도 승리 기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2016’ 포스터. [Twentieth Century Fox]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2016’ 포스터. [Twentieth Century Fox]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6년은 한국 영화계가 부산하던 해였다. 영화사전심의제 철폐와 영화진흥법 제정, 대기업의 영화산업 지원 확산 등으로 한국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1000만 관객 시대를 여는 초석을 다졌다. 이듬해 불어닥칠 IMF 외환위기의 회오리는 예상하지 못한 채 국민의 85%는 ‘나는 중산층’이라며 생활에 만족스러워했다.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쟁이 없던 유럽의 1세기를 지칭) 마지막 해였던 것이다. 

    그해 여름 개봉한 SF블록버스터 ‘인디펜던스 데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다. 애초 ‘인디펜던스 데이’는 관객에게는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는 작품이었다. ‘외계의 침략’이라는 소재가 기존의 자연재해나 인간 변종의 공격·여행·화재·테러라는 소재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졌고, 조악한 컴퓨터그래픽(CG)과 허탈감을 주는 특수효과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관객의 예상은 빗나갔다. 백악관과 자유의 여신상 등 대도시 랜드마크는 영화에서 실감 나게 산산조각 나고, 전투기들이 빌딩 숲을 뚫고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스펙터클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수입 8억1700만 달러가 넘는 흥행 대박을 터뜨려 그해 ‘월드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며 SF재난영화의 새 장을 연 영화가 됐다.

    지금도 손색없는 24년 전 스케일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힐러 대위로 열연한 윌 스미스. [Twentieth Century Fox]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힐러 대위로 열연한 윌 스미스. [Twentieth Century Fox]

    ‘인디펜던스 데이’는 거대 UFO(미확인비행물체)가 출몰해 지구를 초토화하다가 지구특공대의 활약으로 평화를 되찾는다는 만화영화 같은 스토리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는 특수분장이 돋보였던 SF판타지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1996년 2월 설날에 맞춰 4개월간 개봉돼 SF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7월에 불어닥친 ‘인디펜던스 데이’의 광풍은 지구 종말에 대한 오싹한 두려움과 지구 특공대의 신나는 활약으로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독일 출신의 롤랜드 에머리히(65) 감독은 할리우드 데뷔 세 번째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초대박 흥행으로 블록버스터 전문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주연배우 윌 스미스(52)는 할리우드 오락영화를 짊어질 차세대 흥행배우로 단번에 떠올랐다. 사실 그는 당대 최고 배우이던 에디 머피의 ‘대타’로 등장한 차선책이다. 신인이던 그는 전작 ‘나쁜 녀석들’의 흥행으로 인지도는 높았지만 대작의 주인공으로는 아직 역량이 부족해 보였다. 그는 영화에서 저돌적인 전투기 파일럿 힐러 대위를 연기하며 흥행의 견인차가 됐다. 

    어느 날, 지름 550km, 달의 4분의 1 정도 무게인 정체불명의 거대 우주선이 빠른 속도로 지구로 돌진해 온다. 우주선이 태양과 달의 빛을 가려 지구는 스산하기만 했고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난다. 위성은 우주선과 충돌해 파괴되고 모든 전자시스템이 뒤죽박죽되는 난리법석 상황이 펼쳐진다. 미우주항공연구소는 당초 미확인물체를 거대한 운석으로 예측했지만 물체가 지구에 다가오며 속력을 줄이자 그제야 외계 우주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거대 우주 모선(母船)은 지구를 접수하기 위해 자선(子船)을 지구로 보내기 시작한다. 우주선의 야욕을 눈치채지 못한 미국의 지도부는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다독이지만 불안은 점차 커진다. 휴가를 즐기던 힐러 대위(윌 스미스 분)도 황급히 부대로 복귀하고, 세계는 비상 전시체제에 돌입한다. 

    케이블방송사에서 위성기술자로 일하는 데이빗 레빈슨 박사(제프 골드브럼 분)는 우주선에서 나오는 신호를 분석해 우주인들이 지구를 공격할 것을 간파한다. 미국 정부는 우주선의 선제공격을 받고서야 위기를 직감하고 국민 대피령을 내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외계인들이 총공격을 퍼붓자 지구촌 곳곳은 잿더미로 변한다. 지구 종말이 가까워지던 즈음 전투기 조종사 힐러 대위가 그랜드캐니언 계곡을 아슬아슬 곡예비행하며 외계인 전투기 1대를 격추시키고 외계인을 생포한다.

    불바다로 변한 도시에서 피어나는 용기

    ‘인디펜던스 데이’ 스틸컷. [Twentieth Century Fox]

    ‘인디펜던스 데이’ 스틸컷. [Twentieth Century Fox]

    영화에서는 미국이 외계인을 가두고 실험하는 시설로 알려진 51구역이 등장한다. 51구역은 실제로는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공군의 실험시설(정식 명칭은 그룸 레이크(Groom Lake) 공군기지)로 신무기 개발 및 실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곳에서 UFO를 봤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외계인과 관련된 음모론도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51구역을 외계와 연관 짓는다. 

    간신히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을 타고 탈출한 미국의 토머스 휘트모어 대통령(빌 풀만 분)과 그 일행은 힐러 대위가 생포한 외계인을 연구하는 51구역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를 공격한 외계인들은 우주를 약탈하면서 떠돌아다니는 ‘우주 해적’들로 밝혀진다. 지구연합군은 핵무기까지 총동원해 공격하지만 외계인들이 구축한 고도의 방어막에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바로 이때, 레빈슨 박사가 외계인 전투기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심어 방어막을 해제하는 발상을 떠올린다. 뾰족한 방도가 없던 상황이라 레빈슨 박사는 힐러 대위와 함께 로스웰에 보관 중이던 외계 전투기를 타고 외계인 모선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일단 모선의 해킹에 성공하고, 세계 각국의 전투기들이 마지막 혈투를 치를 각오로 합심해 치열한 공중전을 벌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천신만고의 상황은 관객을 강력하게 몰입시킨다. 

    걸프전(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계기가 돼 미국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 참전용사였던 제42대 휘트모어 대통령도 직접 전투기 조종석에 앉는다. 사지로 출동하기 직전, 그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조종사들을 앞에 두고 “7월 4일은 더 이상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전 세계의 독립기념일”이라고 연설한다.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은 영화의 제목과 내용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영화사는 미국 내 개봉일도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맞췄다. 미국 패권주의라는 논란과 ‘오락영화를 보는데 웬 훈계냐’는 관객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지구와 우주의 컴퓨터 체계가 통해야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는 관객들의 설전과 걸프전(1991)에 참가한 군인이 1996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설정 등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 전개는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20년 뒤 우주전쟁 다시 깨운 에머리히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에서 주인공 제이크 모리슨 역을 맡은 리암 헴스워스와 외계 우주선, 전투 장면(왼쪽부터). [Twentieth Century Fox]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에서 주인공 제이크 모리슨 역을 맡은 리암 헴스워스와 외계 우주선, 전투 장면(왼쪽부터). [Twentieth Century Fox]

    에머리히 감독은 2009년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2012’를 끝으로 더는 재난영화를 제작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2016년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작인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의 감독과 시나리오, 제작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워낙 전작의 향수가 강해 에머리히 감독의 과거 발언은 유야무야됐다. 캐스팅이 불발된 윌 스미스를 빼고는 전작의 히어로들이 거의 모두 등장했지만, 영화는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선방’으로 볼 수도 있지만 화제를 모았던 1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감독의 명분은 무색해졌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는 전작의 문화패권주의 비난을 의식한 듯 유색인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중국 비디오 게임 회사인 텐센트사(社)의 투자금과 중국 영화시장을 의식한 탓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영화 속 달 기지의 라오 사령관과 그의 조카인 조종사 제인 등 중국인 캐릭터가 조연급으로 활약한다. 

    1996년 이후, 전 세계는 유엔 산하 지구우주방위군으로 하나가 돼 어떤 무력분쟁도 없었다. 지구는 외계인들의 앞선 기술을 그대로 습득해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이 태평성대는 20년 전 패전한 외계인들이 숨어 지내다 우주로 조난 신호를 보내며 깨진다. 이 요청을 받은 외계 침략군에 또다시 지구는 초토화된다. 이후 러닝 타임 동안 영화는 절망이라는 막다른 길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는 인류의 판타지를 부각한다. 

    초반 대규모 전투 장면 이후 잠잠하던 화면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강렬한 전투신이 전면을 수놓는다. ‘역전의 용사’들은 전편처럼 의기투합해 난관을 극복하지만 뻔한 스토리와 참신함의 부재는 극적 긴장감을 반감시킨다. 다만 관객은 개봉 20년 차이가 나는 1, 2편을 한 세트처럼 관람하며 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절망의 순간에 ‘승리의 V’를 거머쥐는 영화 속 지구인들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 속에서도 지구인들의 ‘방역 승리’를 기원해 본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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