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내 몸은 잔뜩 화가 나길 원한다” 서른 살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⑮·끝

[사바나]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 바디프로필은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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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여성동아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0-11-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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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 후 먹을 생각에 산 빵 가격 3만6000원

    • 물도 끊은 촬영 당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

    • ‘인생사진’ 건졌지만 많은 걸 잃어

    • ‘노력한 만큼 얻는다’ 틀리지 않아

    • 2030에게는 외모가 아니라 자극이 필요하다

    *8월 5일부터 매주 수요일 연재한 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 마지막회입니다.

    11월 12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엔투스튜디오]

    11월 12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엔투스튜디오]

    “회원님, 지금까지 만든 몸이 너무 아깝잖아요. 2주 만 더 노력해서 곧 있을 사회인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보는 건 어때요?” 

    바디프로필 촬영을 목전에 둔 기자에게 트레이너가 이렇게 권유했다. ‘아니, 이 사람이 날 죽이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안 해요. 이제 한계예요.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어요.” 


    프로젝트에 앞서 8월 3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왼쪽)과 11월 12일 촬영한 몸(오른쪽). 체형이 명확히 변화했다. [지호영 기자, 엔투스튜디오]

    프로젝트에 앞서 8월 3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왼쪽)과 11월 12일 촬영한 몸(오른쪽). 체형이 명확히 변화했다. [지호영 기자, 엔투스튜디오]

    결승점에 임박할수록 숨이 차는 법. 촬영일(12일)이 가까워질수록 육체와 정신에 한계가 왔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운동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다. 11일엔 힘이 났다. 이유는 딱 한 가지. 하루만 있으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난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참아온 식탐은 절정에 달했다. 촬영 당일엔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흡수가 빠른 탄수화물을 섭취해주면 좋다. 그때 먹을 식빵을 구입하고자 11일 한 빵집에 들렀다. 식빵만 사고 나왔으면 됐는데, 촬영이 끝나면 먹을 빵도 미리 사자는 생각에 하나 둘씩 바구니에 담았다. 고르다보니 눈이 뒤집혔다. 계산대에서 받아든 금액은 4만 원. 포인트 할인을 받아 3만6000원에 구입했다. 집까지 들고 오는데 애를 먹을 만큼 빵을 많이 샀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온몸에 힘을 줬다!

    15주차 섭취 식단.

    15주차 섭취 식단.

    촬영일에는 물과 음료도 끊었다. 기자는 배가 고프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공복감에 1시간 30분밖에 자지 못했는데, 물까지 못 마시니 컨디션이 최악이다. 그나마 식빵과 뻥튀기, 딸기잼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기상 직후, 오전 10시, 촬영 1시간 30분 전, 세 차례에 걸쳐 소량을 섭취했다. 천상의 맛이다. 더 먹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오후 2시 30분 헤어 세팅과 메이크업을 진행한 후 촬영에 들어갔다. 준비한 의상을 갖춰 입은 후 스튜디오의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근육이 도드라지도록 온 몸에 힘을 줘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 돼 힘이 든다. 3시간 가까이 촬영이 이어졌고 찍은 사진은 1000장에 달한다. 지친 상태에서 긴 시간 포즈를 취하니 기진맥진했다. ‘이러다 쓰러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시작 직전인 7월 31일 측정한 인바디(체성분 분석기) 결과(왼쪽)와 바디프로필 촬영 당일(11월 12일) 인바디 결과(오른쪽). 체중은 12.5㎏, 체지방은 10.7㎏, 체지방률은 10.6% 낮아졌다.

    프로젝트 시작 직전인 7월 31일 측정한 인바디(체성분 분석기) 결과(왼쪽)와 바디프로필 촬영 당일(11월 12일) 인바디 결과(오른쪽). 체중은 12.5㎏, 체지방은 10.7㎏, 체지방률은 10.6% 낮아졌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남은 기력을 쏟아냈다. 결과물을 확인했다. 깜짝 놀랐다. 첫 번째로 사진 기술에 놀랐고 두 번째론 ‘정말 이게 내가 맞나’ 싶어 놀랐다. 아직 사진을 보정하기 전이었는데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찍은 모습 중 가장 멋진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근육의 선명도가 좀 아쉬웠다. 체지방을 더 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인생사진’을 건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진 않은 듯해 뿌듯했다. 촬영이 끝나고선 탈이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죽을 먼저 먹은 후 빵과 초콜릿을 미친 듯이 먹었다. 너무 맛있어 배가 불러도 멈출 수가 없었다.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먹었다. 이러다 보면 살도 금방 다시 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당분간은 좀 먹어야겠다.

    식상한 말이지만 겉모습이 전부는 아닙니다

    15주차 운동.

    15주차 운동.

    인생사진을 건진 건 맞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식상한 말이겠지만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얻은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잃은 게 많다. 첫 번째로 건강을 잃었다. 단기간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니 몸에 무리가 왔다. 영양이 부족한 탓인지 탈모 증상이 나타나 약을 복용했다. 심각한 변비로 화장실 갈 때마다 고통 받았다. 간수치가 높아져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두 번째론 활력을 잃었다. 프로젝트 기간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아파 보인다”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을 비롯해 매사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본업에 소홀해지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고 마음이 불편했다. 세 번째론 외로워졌다. 식단을 지키고자 모임을 피하고 ‘혼밥’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 멀어졌다. 

    마지막으론 배가 고프고 몸에 힘이 없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늘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벌컥 신경질을 내고 화를 쏟아냈다. 매사에 부정적으로 변했다.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뭐가 좋다고 웃는 거야’ 하는 고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섬뜩했다. 사진 속의 나는 웃으며 그럴싸해진 겉을 뽐내고 있지만 속은 이렇게 문드러져 있었다.


    그래도 왜 하는지 알 것 같다

    촬영 다음날인 11월 13일 저녁 횟집에 가서 파티를 즐겼다. 촬영 이후 매일 폭식을 동반한 파티를 벌이고 있다. 몸엔 급속도로 지방이 다시 끼고 있지만 행복하다.

    촬영 다음날인 11월 13일 저녁 횟집에 가서 파티를 즐겼다. 촬영 이후 매일 폭식을 동반한 파티를 벌이고 있다. 몸엔 급속도로 지방이 다시 끼고 있지만 행복하다.

    물론 아무 의미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기자 역시 촬영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으나 끝내고 나서야 의미를 깨달았다. 달리기에선 설령 꼴찌라 해도 ‘완주’를 해야 기록을 부여받는다. 결승전 1m 앞이었을지라도 포기하면 인정받지 못한다. 바디프로필 역시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을 보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단순히 ‘인생사진’을 건져서가 아니다. ‘내 노력의 대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한 때는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믿었다. 나이가 들면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게 믿는 게 마음이 덜 아프다는 걸 서서히 배웠다. 지인 중 한 명은 이걸 ‘철이 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치솟은 집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고 계층 이동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노력해도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게 부질없게 느껴질 때도 많다. 괜히 젊은 세대 사이에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가 유행하는 게 아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직장인으로 살면서 하루하루 뱃살만 늘어가는 스스로에 한심함을 느낀 적도 있다. 노력해도 안 되고, 된다 해도 한 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는 세상에서 바디프로필은 정직하다.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그 결과가 고스란히 몸에 나타난다. 잃어버린 열정을 일깨워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말이 아직 틀리지 않았음을 작게나마 느끼게 해준다. 2030 사이에 바디프로필 열풍이 부는 현상을 단순히 외모지상주의의 산물이라고 볼 순 없는 까닭이다. 

    굳이 할 필요는 없다. 겉만 그럴싸해서 뭐하겠는가. 단, 삶에 자극이 필요하다면 한 번 쯤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젊은 날의 초상’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사바나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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