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호

진중권 “대깨문의 저주가 시작됐다”

〈진중권의 인사이트〉 “민주당, 대깨문 활용하고 동원한 비용 치를 것”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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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1-04-15 1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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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도 잘 아는 보궐선거 참패 원인, 대깨문만 몰라

    • 20대 떠난 이유? 부동산보다 조국 사태 영향 더 커

    • 민주당 지지 지식인들이 보인 정치 커뮤니케이션 수준

    • 참여민주주의 확대하려 도입한 제도가 유사 파시즘 전락

    4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4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더불어민주당은 ‘쇄신’ 과제를 안게 됐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심과 민심의 현격한 괴리가 수학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들 반성과 혁신을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민주당의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구조’ 자체가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성(聖)조국, 민주당의 타부

    뉴욕타임즈는 여당 참패의 원인으로 부동산정책, LH 사건과 함께 조국 사태를 꼽았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 등을 둘러싸고 지난해 거대한 집회들이 분출됐다. 그 스캔들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특권 없는 세상’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에는 이렇게 외신도 아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 

    “조국, 검찰개혁이 문제였다면 총선 때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친문 강경파 정청래 의원의 말이다. 그거야 코로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던가. ‘조국 키즈’ 김남국 의원 역시 재·보선 참패 원인을 놓고 “‘검찰 개혁, 조국 수호’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했다. 

    “바보야 문제는 조국이 아니라 경제야.” 

    보다 못한 민주당의 초선 의원 다섯이 모여 성명을 냈다. 

    “조국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한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그러자 대깨문(열혈 친문재인 지지자를 뜻하는 비속어로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뜻한다)들은 이들 “초선족”에게 문자폭탄을 퍼부어댔다. 이들의 극성에 초선들은 “조국이 잘못했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말을 뒤집었다. 

    재선의원 모임에서도 초선들에게 지지를 표명하며 “국민들께서 사과를 요구하면 사과할 용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입장문의 최종안에서 ‘사과’는 빠졌다. 3선 의원 모임 역시 초·재선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지만, 정작 모임에서 “조국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 조국이 ‘타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권리당원제의 함정

    민주당 상층으로 갈수록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말은 사라지는 경향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조국 사태를 주도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조국을 비호한 것이 정치적 오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사태를 주도한 그들은 당권이 걸린 선거를 앞두고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 

    당권 주자들의 말을 들어 보자. 조국 사태에 관해 “여러 반성들이 나오고 있는데 하나씩 잘라내서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우원식 의원) “조 전 장관의 개인적인 문제와 검찰개혁을 연결해서 평가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홍영표 의원) “1년 반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개인적 평가는 하지 않겠다.”(윤호중 의원) 

    ‘책임질 사람이 없다’, ‘조국과 연결시키지 말라’, ‘언급하지 않겠다.’ 성(聖) 조국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선거 평가를 하는데 다들 조국 문제를 배제하고 있다. 왜 그럴까? 대깨문이라 불리는 강성 지지층 때문이다. 당권을 잡으려면 선거에서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잖은가. 

    마침 대깨문들은 잔뜩 격앙돼 성명서까지 낸 상황. 

    “초선 의원들은 4.7 보궐선거 패배 이유를 청와대와 조국 전 장관의 탓으로 돌리는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성명서를 내며 배은망덕한 행태를 보였다.” 

    “표가 필요한 선거 기간에는 ‘친애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이고, 선거 후에는 ‘일부 극렬 지지세력’일 뿐이냐.”

    반성인 듯 반성 아닌 반성 같은 것

    “우리는 민주당의 현금 인출기가 아니며, 권리당원을 무시하는 행태는 당 강령 조항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해온 20대가 대거 떠난 데에는 부동산보다 조국 사태의 영향이 더 컸다. 이를 빤히 알면서도 대깨문들 때문에 쇄신에 필요한 반성이나 사과를 할 수 없는 게 지금 민주당의 상황이다. 자업자득이다. 쇄신을 하려니 대깨문과 척을 져야 하고, 대깨문을 데려가려니 쇄신을 할 수가 없다. 이 딜레마가 그들의 말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발표한 분들(초선의원들)도 당심과 민심의 하나의 반영이고 그것을 비판한 분들(대깨문들)도 당심이라고 생각한다.” 

    당심과 민심 사이의 확연한 괴리를 애매한 말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박진영 상근부대변인은 이 딜레마를 솔직히 드러낸다. 

    “(초선들이) 해결 불가능한 것들을 끄집어내서 갈등을 만들어냈다.” 

    즉 민주당이 조국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문제는 민주당 내에서도 완전한 합의가 쉽지 않다.” 

    당내에서 “합의”로 쇄신을 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대깨문을 버릴 수가 없다. 이미 중도층이 떠난 상태에서 마지막 보루인 대깨문마저 떠나보내면 레임덕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들은 김어준의 방송을 듣고 거의 종교집단 수준으로 세뇌되어 이미 논리적·합리적 사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왜곡된 정치 커뮤니케이션

    당과 대중 사이를 합리적으로 매개하는 것이 이른바 ‘지식인’의 일. 그런데 그 동네 지식인은 ‘어용’을 자처한다(유시민). 명색이 지식인들이 ‘조국백서’나 쓰고 앉았다(김민웅, 전우용). 초선 의원들 전화번호를 공개해 아예 대깨문들에게 좌표를 찍어 주기도 한다(김정란, 고은광순). 이게 민주당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이다. 

    그동안 민주당의 친문 강경파들은 대깨문들을 활용해 당 안으로는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당 밖으로는 권력의 홍위병으로 동원해 왔다. 그것으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다. 이제 그 비용을 치를 때가 온 것이다. 그들은 아마 대깨문들을 뜻대로 부릴 수 있다고 믿었을 게다. 군중의 속성을 몰랐던 것이다. 

    일반 독재와 파시스트 독재는 다르다. 그냥 독재에서 대중은 소극적·수동적으로 동원된다. 반면, 파시즘은 대중의 독재. 거기서 대중은 적극적·자발적·능동적인 행동주체다. 참여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유사 파시즘으로 전락했다. 이제 그들의 시간이다. 그 인간들, 우린 충분히 겪었으니, 이제 당신들도 겪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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