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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SNS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덕질, 소신 발언, 사생활 보호 OK…MZ세대 부계정 활용법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사바나] SNS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 ● 정체 감추고 내밀한 관심사 표현하는 창구
    ● 페미니즘 주장은 페이스북, 탄탄한 몸매는 인스타그램
    ●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자유발언대
    ● 언제든 팔로우 끊을 수 있는 ‘느슨한 연대’
    ● “포장 아닌 자아실현 수단으로 활용해야”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MZ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본계정 이외 부계정 여러 개를 활용하며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사진=GettyImages]

MZ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본계정 이외 부계정 여러 개를 활용하며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사진=GettyImages]

“이 그림 안 본 눈 삽니다.”

직장인 윤재성(29·남) 씨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 같은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해당 사진에는 관람객들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초상화를 감상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기할만한 점은 초상화 속 인물이 다름 아닌 아이돌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이라는 사실. 신화를 좋아하는 윤씨가 루브르 박물관 미술작품을 김동완 얼굴과 합성해 초상화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신화 팬들은 윤씨의 게시물을 재밌어 하며 “덕질계 주접 킹” 같은 애정 어린 농담을 댓글로 남겼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분양에 깊이 빠져들어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정체 감추고 내밀한 취향 표현하는 창구

아이돌 그룹 ‘신화’ 팬인 윤재성 씨가 트위터에 개설한 덕질 전용 계정. [사진=윤재성 씨 제공]

아이돌 그룹 ‘신화’ 팬인 윤재성 씨가 트위터에 개설한 덕질 전용 계정. [사진=윤재성 씨 제공]

이 계정에는 윤씨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100여 개에 달하는 신화 관련 사진과 동영상으로 채워져 있다. 윤씨가 원래 사용하던 본계정이 아니라 덕질을 목적으로 별도로 만든 부계정이기 때문이다. 윤씨는 이 부계정을 3년 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친구, 회사 동료 중 누구도 그가 신화를 지지하는 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학교 동창이나 직장 동료와 어울리는 소통 창구인 트위터 본계정과 달리 부계정은 주위에서 모르게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기록하는 용도로 활용해서다. 윤씨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SNS 사용자가 서로 팔로우하는 경우, 상대의 팔로우와 팔로잉 목록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정을 따로 개설해 계정명과 아이디를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도록 만들면 자신의 내밀한 취향과 관심사가 지인들에게 드러나지 않죠. 덕계에서는 신화 관련 게시물에 마음껏 ‘좋아요’를 누르고 덕질에 몰입해도 ‘남자가 남자 아이돌을 덕질하는 게 정상이냐?’ 같은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할 수 있어 편해요.”



요즘 젊은 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본계정과 용도가 다른 부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 운영한다. 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유튜브 같은 SNS는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엄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가 부계정 활용에 적극적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는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드러나는 게시물이 본계정에 올린 일상적인 게시물과 뒤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SNS 채널별로 부계정을 만들어 활용한다.

부계정의 쓰임새도 SNS마다 다르다. 예컨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메시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다면 페이스북 부계정을, 필라테스로 탄탄하게 만든 몸매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관심 분야를 탐구하고 싶다면 트위터 부계정을 활용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얼마나 많은 부계정을 갖고 있을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웹인덱스’가 2019년 발표한 ‘2019년 1분기 플래그십 리포트(2019 Q1 flagship report)’에 따르면 SNS 이용자당 평균 8.1개의 계정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 보면 Z세대와 밀레니얼(M) 세대가 보유한 계정 수는 각각 9.0개, 9.1개인 반면 X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가 보유한 계정 수는 각각 7.0개, 5.0개로 집계됐다.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자유발언대

트렌드 전문가인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장(경제금융학부 교수)은 부계정 문화에 대해 “MZ세대는 멀티 페르소나에 익숙해 일상생활에서 써온 사회적 가면을 벗고 새로운 자기 모습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게다가 취향과 취미를 중요하게 여겨 직업 정체성보다 취향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특성이 매 순간 가면을 쓰듯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부계정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멀티 페르소나는 다중적 자아를 뜻하는 용어로,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근래에는 본업을 마친 후 취미나 특기 활동으로 소통할 때 나타나는 개인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쓰인다. 지난해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이 제시한 2020년의 트렌드 키워드 10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학생 최훈(23) 씨가 부계정을 사용하는 이유도 자아 표출에 있다. 최씨는 여성 운동을 지지하고 여성 혐오 표현을 규탄하는 20대 남성이다. 그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유명 페미니스트가 작성한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젠더 문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드러내지 않는다. 몇 년 전 대학 동아리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 말을 내뱉은 후 그를 바라보는 일부 동기의 시선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씨는 “누구나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소신이나 생각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런 소신이나 이념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부계정”이라고 말했다.

MZ세대가 부계정을 사용하는 배경에는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깔려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SNS에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를 바라지만 그 ‘누군가’에 친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최혜주(29) 씨는 2년 전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본계정에 올렸다가 다음날 직장 상사에게 ‘주말에 남자친구와 벚꽃 보러 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입에 올리는 게 거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최씨는 연애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는 것으로 고민을 간단히 해결했다. 해당 계정에는 최씨와 그의 남자친구의 추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최씨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연애사가 공개된다고 생각하니 게시물을 올리기 부담스러웠다”며 “회사 동료와 상사한테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 부계정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언제든 팔로우 끊을 수 있는 ‘느슨한 연대’

MZ세대는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로 부계정을 활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특기나 취미와 관련된 콘텐츠를 일기를 쓰듯 꾸준히 올리는 것이다. 인디밴드로 활동하는 박민우(29) 씨가 그런 경우다. 박씨는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년 전부터 유튜브에서 추천 음악을 올리는 부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출근길에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 ‘일상이 따분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 ‘우울할 때 우울하게 해주는 플레이리스트’ 등 주제에 맞는 곡을 선정해 1시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린다. 박씨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동영상을 보고 ‘추천 곡을 들어보니 정말 좋다’며 댓글로 반응을 보인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 또 다른 영감을 얻고 내가 관심 갖는 분야에 더 깊이 파고들게 된다”고 말했다.

언제든 관계를 끊기 수월한 ‘느슨한 연대’라는 점도 부계정 활성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느슨한 연대란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처럼 일상에 영향을 주는 관계와 상반된 개념으로, SNS 상에서만 ‘친구(팔로우)’로 이어진 관계를 말한다. 목적 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MZ세대에게서 이런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직장인 천형우(36) 씨는 가치소비를 지향한다. 그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부계정에는 수익금 일부를 소외계층에 후원하거나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 리스트가 게시돼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이 계정에서 불매운동 대상이다. 천씨는 “SNS에서 전개하는 사회 운동이 반드시 조직적일 필요는 없다”며 “개별적으로도 영향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러한 느슨한 연대는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다 싶으면 언제든 관계를 끊어낼 수 있어 교류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평했다.

“포장 아닌 자아실현 수단으로 활용해야”

SNS 전문가들은 부계정이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표현 수단 증가, 표현에 자유로운 MZ세대의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장은 “젊은 층은 SNS에서 인증과 공유를 놀이처럼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며 “그 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온라인상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포장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건강한 자아실현과 자기 발전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계정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동아 2021년 5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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