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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이 박재홍보다 더 뛰어난 선수였을까

[베이스볼 비키니] KBO 레전드 40인 선정, 엇갈린 펜심과 팬심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이순철이 박재홍보다 더 뛰어난 선수였을까

  • ● 전체 1위 선동열, 전문가 1위 최동원
    ● 해설위원 이미지로 선방 이순철
    ● 단장 맡은 뒤 부진으로 팬심 돌아선 정민철
    ● 레전드 40인 너무 많아
1988년 5월 7일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2회초 2루 도루에 성공한 이순철. OB 베어스 2루수는 김광수. [동아DB]

1988년 5월 7일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2회초 2루 도루에 성공한 이순철. OB 베어스 2루수는 김광수. [동아DB]

프로야구 7월 최우수선수(MVP)는 이창진(31·KIA 타이거즈)이었습니다. 이창진은 기자단 투표에서 11표를 받아 폰트(32·SSG 랜더스)보다 한 표가 적었습니다. 그러나 팬 투표에서 16만5021표(42.5%)를 받아 4만8369표(12.5%)에 그친 폰트를 제치고 총점 1위에 올랐습니다. 이창진은 그러면서 2018년 8월 MVP 박병호(36·당시 넥센 히어로즈) 이후 처음으로 기자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고도 월간 MVP를 받은 선수가 됐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원래 기자단 투표만으로 월간 MVP를 선정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부터 기자단 투표 50%, 팬 투표 50%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기자단과 팬 의견이 같을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습니다. 2018년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월간 MVP는 총 27명이 나왔는데 그중 59.3%(16번)는 기자단과 팬이 같은 선수를 1위로 지목했고 40.7%는 결과가 달랐습니다. 요컨대 다섯 번 중 두 번 정도는 ‘펜심(pen + 心)’과 ‘팬심’이 서로 달랐던 겁니다.

그러면 KBO에서 리그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레전드 올스타 40인’ 투표 결과는 어떨까요? 이 투표는 기자단을 포함해 KBO 경기운영위원회, 현역 단장 및 감독, 선수 등 162명이 참가하는 ‘전문가 투표’ 80%와 팬 투표 20%를 반영해 최종 순위를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이른바 전문가 비율이 높으면 팬 투표 결과만으로 순위를 뒤집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 그렇다고 전문가와 팬 의견이 크게 엇갈린 경우가 전혀 없는 건 물론 당연히 아닙니다.

‘라면 수비’ 원조에서 ‘모두 까기 인형’으로

군더더기 없는 외야수비로 ‘라뱅(라면 사러 가는 동네 병규 형)’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병규. [동아DB]

군더더기 없는 외야수비로 ‘라뱅(라면 사러 가는 동네 병규 형)’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병규. [동아DB]

2006년부터 2016년까지 LG 트윈스에는 이름이 이병규로 똑같은 두 선수가 (준)주전급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두 선수를 구분할 수 있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라뱅’이었습니다. 1997년 신인상 수상자였던 이병규(48)가 외야 수비를 하는 모습이 ‘동네 형이 슈퍼에 라면을 사러 가는 것 같다’는 평가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외야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수비하려면 당연히 타구 예측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사실 프로야구에서 이 ‘라면 수비’ 원조로는 이순철(61) SBS 프로야구 해설위원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85년 신인상 출신인 이 위원은 원래 해태(현 KIA) 타이거즈 입단 후 3루수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OB(현 두산) 베어스에서 국가대표 3루수 한대화(62)가 건너오면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습니다.



KBO는 당시 이 위원의 활약에 대해 “타고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새 포지션에 빠르게 적응하며 1988년 시즌을 시작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4회나 수상했다.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타구 판단 능력에서 나오는 여유 넘치는 외야 수비는 이순철의 전매특허였다”고 소개했습니다. 라면 수비로 유명했던 선수를 ‘근성의 야수’에 포함시키려면 이 정도 소개는 필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위원은 연세대에서도 외야수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이 데뷔 첫해 이 위원을 3루수로 기용한 건 이전까지 주전 3루수였던 김성한(64)을 이 시즌에는 아예 투수로 변신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순철이 광주상고(현 광주동성고) 시절 유격수로 뛰었으니 3루수 자리를 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걸었던 겁니다.

그러니 데뷔 첫해 3루수로 뛰면서 신인상을 차지한 게 오히려 ‘근성’과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1~9번 타자로 전부 홈런을 날린 기록 역시 굳이 꼽자면, 근성과 관계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런 전천후 활약이 오래가지는 못했다는 것. 이 위원은 프로 데뷔 10년 차이던 1994년까지 통산 타율 0.277, 126홈런, 492타점, 631득점으로 레전드로 뽑힐 만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대신 이후 4년 동안에는 타율 0.211, 19홈런, 120타점으로 기록이 낮아졌습니다. 그 결과 이 위원은 전문가 투표에서는 39위(34.87점)을 받아 전체 37위에 그쳤습니다.

팬들 의견은 달랐습니다. 이 위원은 팬 투표에서 8.66점으로 1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팬 투표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레전드 올스타 투표에서 전체 17위에 자리한 박재홍(49)보다 이순철이 팬 투표 점수가 더 좋습니다. 박재홍은 팬 투표에서 7.99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두 선수가 해설위원으로 쌓은 이미지 차이도 분명히 이 투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의심이 드는 건 억측일까요?

한화 투수로는 넘버 2 or 3, 단장으로는…

정민철 한화 단장의 선수 시절 모습. 정 단장은 KBO 선정 프로야구 레전드 40인 중 34위를 기록했다. [동아DB]

정민철 한화 단장의 선수 시절 모습. 정 단장은 KBO 선정 프로야구 레전드 40인 중 34위를 기록했다. [동아DB]

거꾸로 전문가 투표 순위와 비교할 때 팬 투표 순위가 가장 낮았던 건 정민철(50) 한화 이글스 단장이었습니다. 정 단장은 전문가 투표에서 69.23점으로 11위에 이름을 올린 반면 팬 투표에서는 5.76점으로 34위에 그쳤습니다. 현역 시절 라이벌로 평가받았고, 역시 ‘최강 선발’ 부문 레전드로 이름을 올린 정민태(52) 한화이글스 투수코치가 팬 투표에서 10.23점(3위)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 보입니다.

사실 정 단장이 팬들로부터 이렇게 과소평가를 받은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스포츠 전문 주간지 ‘스포츠 2.0’은 정 단장이 2007년 5월 4일 대전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20번째 완봉승을 거두자 인터뷰 기사를 같은 달 25일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이 스포츠 전문 주간지는 ‘정민철은 꽤 오랜 기간 팬들에게 잊힌 선수가 됐다’면서 그 이유를 아래처럼 꼽았습니다.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탓도 있다. 1990년대는 뛰어난 투수들이 넘쳐나던 프로야구 황금기였다. 정민철은 훌륭한 투수였지만 시대를 이끄는 최고의 투수는 아니었다. 1992년 프로에 데뷔한 정민철은 8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빙그레와 한화에는 이상군과 한용덕 그리고 송진우 등 대투수가 있었다. 그는 리더라기보다 넘버 2나 넘버 3였다. (중략) 정민철이 가장 주목을 받았던 때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2000년과 국내 복귀 뒤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인 2002년이었다.”

그러니까 팀에 정말 좋은 투수가 많던 시기에 활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팬들 관심에서 멀어진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상군(60) 북일고 야구부 감독, 한용덕(57) KBO리그 경기운영회 위원, 송진우(56) 전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이 ‘강호’ 빙그레를 대표하는 투수였던 것과 달리 정민철은 약체 ‘한화’ 에이스로 뛴 시간이 길었습니다. 정 단장은 팀이 한화라는 이름을 처음 쓴 1994년 평균자책점 2.15(1위)를 기록하고도 10패(14승)를 해야 했고, 1997년에도 평균자책점 2.46(4위)으로 11패(14승)를 당했습니다.

그가 친정팀 단장을 맡은 2020년 이후 팀 성적이 10위-10위-10위(현재)에 그치고 있다는 것도 팬 투표 결과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정 단장은 데뷔 초에는 이렇게 인기 없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야구 마니아로 유명한 구율화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장은 2011년 ‘스포츠동아’에 여고생 시절 자신이 정 단장의 열렬한 팬이었으며(당시 야구장은 ‘아재’들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정 단장의 결혼 소식에 그의 차를 긁고 도망가기도 했노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비교 체험, 극과 극

KBO 선정 프로야구 레전드 40인 중 1, 2위를 기록한 선동열(왼쪽) 전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과 최동원. 두 사람은 선수 시절에도 라이벌 관계였다. 동아DB

KBO 선정 프로야구 레전드 40인 중 1, 2위를 기록한 선동열(왼쪽) 전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과 최동원. 두 사람은 선수 시절에도 라이벌 관계였다. 동아DB

레전드 올스타 투표 결과를 보고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건 전체 1위 선동열(59)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기자단 투표에서는 만점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딱 한 표가 모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프로야구 전문가 중에는 프로야구 역사상 선동열보다 잘한 선수가 40명이 넘는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팬 투표에서는 선 전 감독이 1위(11.56점)였습니다.

사실 전문가 투표 만점은 전체 2위를 차지한 최동원(1958~2011) 한 명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전체 3위 이종범(52)과 4위 이승엽(46)은 각각 전문가 7명이 외면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올스타 투표니까 누구를 찍든 자유지만 이 둘을 찍지 않은 분들은 과연 누가 더 잘했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등 한 명을 뽑으라는 게 아니라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40명을 뽑으라는 거였으니까요.

전문가 투표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의 선수 시절 모습(왼쪽). 팬 투표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코치. [동아DB]

전문가 투표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의 선수 시절 모습(왼쪽). 팬 투표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코치. [동아DB]

전문가 투표에서 40위(33.85점)로 겨우 세이프 판정을 받은 건 박진만(46)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이었습니다. 박 감독대행은 팬 투표에서는 20위(8.46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체 순위는 39위. 팬 투표 40위(3.61점)는 전준호(53) 롯데자이언츠 2군 코치였고, 전문가 투표에서는 31위(42.56점)로 전체 순위는 34위였습니다. 그리고 두 선수는 나란히 ‘근성의 야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순철, 박진만, 전준호와 함께 이 부문에 이름을 올린 정근우(40)는 현역 시설 소속한 세 팀 모두 시상식 일정을 잡기를 꺼린다고 하니 뭔가 기구한 선수가 여기 이름을 올린 건 아닌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펜심과 팬심이 크게 엇갈린 케이스가 많은 이유는 너무 간단합니다. ‘레전드 올스타’를 너무 많이 뽑았거든요. ‘레전드’라는 타이틀을 붙이려면 마지노선(이번에는 40위)과 그 마지노선 다음 순위(41위) 사이에 ‘넘사벽’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프로야구에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이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니 이 선수가 다 들어가는 공간이 생긴다면 과연 그 공간을 ‘명예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동아 2022년 10월호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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